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10월04일 제679호
“역사표론 바람이 분다”

이번엔 300만표에서 출발한다는 권영길 후보…눈물 흘릴 사람들은 범여권, 언론이 문국현처럼 나를 띄웠으면…

▣ 진행 성한용 한겨레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 정리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권영길. 민주노동당은 다시 한 번 그에게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후보 혼자 대선을 치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선에 나선 그를 통해 당이 평가되고, 당은 성장하거나 퇴보 또는 정체한다. 그는 띠동갑이자 자신이 “맞수”라고 얘기하는 이명박과 경쟁하겠다고 했다.

더 불편하고 어려운 경쟁자는 따로 있다. 아직 안갯속인 범여권 후보다. 그는 “역(逆)사표론과 역비판적 지지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괴롭힌 사표 심리와 비판적 지지가 이번 대선에선 작동하지 않거나 역으로 작용할 거라는 말이다. 그래서 최소 300만 표 이상 얻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문 밖으로 나서는 기자들에게 ‘소외감’을 내비쳤다.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범여권 후보의 균형 배치를 고려할 뿐 자신을 배제한다는 섭섭함이었다. 순전히 언론의 탓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지만, 권영길 후보 앞엔 아직도 자신을 대중에게 쉽사리 알리지 못하는 높은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는 지난 9월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이제 권영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성한용(이하 성):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어, 저분이 또 나왔네’라고 말하는 국민들도 있다. ‘왜 또 권영길인가?’

권영길(이하 권): 질문을 바로잡고 싶다. ‘왜 또 권영길인가’가 아니라, ‘역시 권영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다수다.

성: 지난번 대선에서 95만 표, 1997년엔 30만 표를 얻었다. 이번 대선의 예상 득표수는?

권: 이번엔 300만 표에서 출발한다. 97년이나 2002년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내가 (각 당의 대선 후보 간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10% 안팎의 지지를 받고 있다. 표로 환산하면 대략 300만 표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권영길이란 인물을 알리느라 바빴지만, 국민들이 실제 권영길을 모르는 상태로 선거가 끝났다. 97년은 진보정당 창당을 위한 출마였고, 2002년엔 민주노동당이 원내(국회)에 진입하는 토대 구축을 위한 출마였다. 이젠 민주노동당과 권영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성: 상황을 말씀해주었는데, 예상 득표수가 궁금하다.

권: 민주노동당은 선거 때마다 세 배씩 성장해왔다. 2002년 득표수는 97년의 세 배치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도 그렇다. 지금은 10%대에서 출발한다.

성: 출발이 300만 표이니, 세 배(900만 표)로 뛸 거라는 말인가.

권: 그렇다. ‘메달권’(대통령 당선) 안에 들어가 있다.

성: 2002년 유시민 전 장관은 ‘민주노동당을 찍으면 사표가 된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돕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른바 ‘비판적 지지’(사표 심리)층을 설득하는 게 당의 중요한 대선 전략 중 하나인 듯한데?

권: (사표 심리 때문에) 97년과 2002년 뼈아픈 눈물을 흘렸다. 당시 선거운동을 하면서 “권 후보에게 찍어야 하는데, 이번엔 눈물을 머금고 노무현을 찍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정몽준씨가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철회한 선거 막판에만 사표 심리 때문에 우리를 떠난 표가 70만~100만은 될 것이다.

이제 눈물을 흘릴 사람들은 ‘범여권’이다. 이젠 ‘역사표론’과 ‘역비판적 지지’가 국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지금은 범여권을 찍는 게 무의미한 표가 됐고, 권영길을 찍는 표가 의미 있는 표다. 열린우리당은 몰락했다.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았다. 누구나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얘기한다.

성: 범여권이 대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집권 가능성을 높인다면 어떨까?

권: 말꼬리를 잡자는 건 아니다. 사표 심리를 발동시킨 유시민씨가 참여정부 들어 장관이 된 뒤 공식적으로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99.9%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뭘 뜻하나? 범여권의 집권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100만 민중대회, 발로 뛰는 사람과 함께

성: 다수 국민들은 아직 민주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을 선뜻 믿지 못한다.

권: 이번엔 다르다는 걸 보여주겠다. 민주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을 믿는 이들이 절대다수가 아니란 걸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몰락하고 심판받은 범여권의 재집권 욕망보다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훨씬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닌가?

성: 당 안팎에서 비판적 지지론에 문국현이란 인물이 다시 불을 지필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문국현이란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나?

권: 그분의 실체, 정체성을 잘 모르겠다. 용어는 민주노동당의 내가 쓰는 용어와 비슷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용어가 같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건지는 모르겠다. 문국현씨는 이명박의 경제를 가짜 경제라고 얘기하고, 진짜 경제, 사람 경제를 얘기하지만, 이 부분도 내가 지난해부터 외쳐왔던 거다. 문국현씨는 정책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한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내용적으로 문제다. 또 형식적으론 문국현이 어쨌든 범여권 후보라는 점이다.

성: ‘문국현 바람’과 같은 현상은 어떻게 보나?

권: (작심한 듯) 불평불만을 하려는 건 아니다. 객관적인 비판을 해야겠다. 문국현 후보가 어떤 정치공학적 상상 속에서 등장했는지, 웬만한 정치부 기자라면 다 알 거다. 문 후보는 범여권 구도 속에서 등장했다. 이걸 만든 언론들이 권영길을 어떻게 다루나? 다 제쳐두고 추석 연휴가 아주 중요한 시기 중 하나였다. 그런데 권영길은 닷새 동안 YTN에 딱 한 번 나왔다. 권영길이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국현처럼 언론이 나를 띄웠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있진 않았을 거다.


성: 언론사들이 그렇다(권 후보를 소홀히 다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 시각도 이대로 가다간 이명박씨가 집권할 거 같고, 범여권에 지지할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신상품’(문국현)에 관심을 갖게 된 측면도 있지 않겠나?

권: 그런 측면과 언론의 띄워주기가 맞닿아 있다.

성: 권 후보 하면 2002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는 나아지셨습니까?”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선 구호랄까, 캐치프레이즈가 뭔가?

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국민들이 참 많다.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다. (웃음) 거기에 몰두하다간 정책을 못 만들어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엔 ‘권영길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권영길이 서민의 빈 지갑을 채워주겠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성: ‘100만 민중대회’를 경선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런 방식에 대한 우려도 있다.

권: 안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과 2004년 미디어 선거의 맛을 봤다. 하지만 나는 당이 미디어 선거 틀에만 갇혀 있어선 안 된다고 본다. 새로운 선거 방식은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발로 뛰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움직여야 할 진보 진영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체념에 빠져 있다. 민중운동 진영이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걸로 본다.

정치 연대의 다섯가지 기준에 동의

성: 당내에서조차 지적되고 있는 문제지만 ‘민주노총당’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수긍할 점이 있다고 보나?

권: 반성해야 할 대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을 수긍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귀족 노조가 아니다. 밥그릇 지키려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하려면, 민주노총도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잠시 추진이 중단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민주노총 등의 분담을 통한 사회연대 전략은 중요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대선의 공약으로도 제시하겠다.

성: 모두 이번 대선의 화두가 ‘경제’라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층과 호감층에서조차 ‘경제 성장’을 대선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꼽는다.

권: 경제가 화두인 건 맞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50%를 웃도는 국민적 지지를 받는 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체념 상태에서 우러나는 막연한 기대 심리 아니냐? (사는 게) 너무 어려우니 (이 후보가) 부동산 투기를 했든, 도덕적 하자가 있든 문제 삼지 않는다. 아무래도 현대건설 회장 출신이니 경제를 낫게 해줄 거라는 기대 심리다. 그런데 과연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나? 그가 내세운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대기업 규제 완화 등은 ‘부자를 위한 경제’다. 권영길은 ‘서민을 위한 경제’다.

성: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부유세 등의 공약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이 볼 때 너무 이상적이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비쳐진다.

권: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 얘기를 한다. 하지만 세금 제대로 걷고 제대로 쓰는 거 하나만 잘해도 된다. 그 상징적 용어가 부유세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운 스리랑카도 무상 교육을 한다. 왜 우리가 못하나? 실천이나 의지의 문제이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대학 등록금 반값 정책을 제시했는데, 이는 우리 당이 얘기하는 무상 교육 토대의 절반에 해당된다.

성: 당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당 안팎의 요구가 크다.

권: 민주노동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 건 잘 안다. ‘민주노총당, 반대당, 친북당, 데모당’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급진적 이미지를 털고 신뢰와 안정을 주어야 한다.

성: 다른 정치 세력과의 연대가 가능한가. 연대가 가능하다면 어떤 기준을 갖고 있나?

권: 다섯 가지 기준이 있다. 당에서 제시하고 나도 동의한 부분이다. 기준은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사회 양극화 해소, 진정한 평화통일 정책, 국가보안법 철폐 등에 대한 태도다. 김근태나 천정배는 한-미 FTA에 반대하지만 나머지 문제들에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관된 진보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 되기를

성: 다섯 가지 기준을 다 충족할 세력과 개인은 많지 않을 거 같다.

권: 의견 표명들을 명확히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법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 짧게 노무현 대통령을 평가해달라.

권: 노 대통령이 완벽하게 무너진 상태로 임기를 마치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한-미 FTA와 비정규직, 진정한 평화통일 문제에서 안타까운 길로 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성과를 통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성: 끝으로 못다 한 말이 있다면.

권: 평화와 통일에서 이명박 후보와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얘기하는 나는 완전히 대립된다. 이 후보는 북한을 값싼 노동력의 공급처이자 투자의 대상으로만 보지만, 난 이명박식 대북 정책이 자칫 분단을 고착시킬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