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고요한 네팔 사람들의 삶…공정무역이 극빈층의 삶에 스며들기를
▣ 카트만두·치트완(네팔)=사진·글 임종진 사진작가 stepano0301@gmail.com
언뜻 보아 사람 키의 두 배쯤 될 만한 수풀 더미가 마치 공 구르듯이 다가왔다.
그대로 멍하니 시선이 머문다. 깜박거림도 없는 두 눈이 그 수풀 아래로 보이는 삐쩍 마른 발목에 꽂힌 것이다. 몇 시간째 덜컹이는 버스에 지쳐 잠시 쉬던 한적한 시골 들녘이었다. 몸의 고단함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자근거리는 발자욱 소리가 이내 귓속을 파고들더니, 같은 박자의 쿵쿵대는 굉음이 가슴에 울린다. 꼭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 수풀 속에 세월 가득한 얼굴이 드러난다. 눈높이만큼 키를 낮추니 겨우 150cm 정도나 될까. 세월이 누른 것인지 등에 한가득 짊어진 짐의 무게가 누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아직 취학 전인 손자를 안고 길거리에 앉아 있는 한 네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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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방인의 관심을 알았는지 잠시 걸음을 멈춰 고개를 들고는 웃음을 던져준다. 형언하기 어려운 고요다. 네팔 하늘의 따가운 태양빛에 찌든, 흙에 치대며 살아온, 그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고요가 저릿하게 흐른다. 홀리듯 카메라를 들어 올리니 가만히 왼손을 들어 헝클어진 회색빛 머리를 쓸어올리며 옷매무새를 고친다. 그 모습이 고우면서도 괜스레 시리다.
간신히 어깨를 가린 윗옷 틈새로 아이 몇은 키워냈을 쭈글쭈글한 젖무덤이 고스란히 보인다. 콧등이 시큰하게 붉어지는 사이 그녀는 지팡이를 앞세워 가던 길을 나섰다. 다시 수풀 아래로 발목만 보이는데 그제야 맨발인 것을 알아챘다. 이름도 묻지 못한 그녀의 뒷모습에서 고단했을 삶의 궤적이 진하게 흘러나왔다. 마주 선 시간이라야 고작 2~3초 남짓. 우연히 스친 것이라 하기엔 그 여운이 아득하게 짙다.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야생동물 구역인 치트완 국립공원과 카트만두 사이 도로에 있는 한 노점 상가. 과일과 여러 먹을거리를 파는 이들 역시 대부분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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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시내 서쪽으로 2km 떨어진 한 시골 마을 홀쪼크.
땔감을 잔뜩 진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던 아말라(32)는 “농사일 외에는 할 만한 일이 별로 없다”면서 맑게 웃는다. 집을 살펴보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옹색한 살림이다. 구석에 있던 낡고 작은 물레를 끌어안고 실을 잣기 시작하는 아말라를 보면서 무엇이라도 살림에 보태려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 마을 안쪽에 있는 마하구티센터에는 수십여 명의 여성이 ‘공정무역’(Fair Trade)에 쓰일 전통수공예품을 만들어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월 평균 3천~5천루피(약 4만5천~7만5천원)의 고수입(?)이 보장된 그 일은 아말라처럼 몇 평의 땅에 농사라도 지을 수 있는 사람에겐 좀처럼 열리기 어렵다. 조금은 형편이 낫다는 이유 때문이다. 빈민을 위해 시작된 공정무역이 네팔 극빈층의 삶에 좀더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그래서 현실이기도 하다.
카스트 제도와 성차별이 여전히 두터운 네팔에서 여성의 삶의 지위는 어떤 가치로 증명될 수 있을까.

△ 이름 모를 시골길에서 만난 그녀의 눈빛은 짙고 고요했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옥수숫대 더미에 묻혀가다가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미소 하나 남기고 마치 시간이 흐르듯 표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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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낡고 허름한 집에서 물레질을 하고 있는 아말라. 그녀는 익숙한 물레질 솜씨로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싶어하지만 그런 일이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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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부터 조성된 고대도시 박타푸르의 한 광장에서 한 네팔 여성이 지나가는 관광객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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