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8월16일 제673호
점점 달아오르는 북방한계선

정상회담 예상 의제 가운데 논란의 중심…국민적 공론화 없는 상태에서 풀 수 있을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회담 의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 가능한 의제 가운데 단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건 북방한계선(NLL) 문제다. <조선일보>는 8월9일치에 실린 ‘노 대통령이 평양에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NLL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북측도 인정한 남북 간의 움직일 수 없는 경계선”이라고 썼다. 이 신문은 “일부 인사들이 ‘절대 불변의 선은 아니다’는 식의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만약 이번 회담에서 NLL을 건드려 사실상 북측에 영토를 넘겨주는 결과를 만든다면 그 후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는 노 대통령 스스로가 잘 알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북방한계선, 그 ‘터부’를 둘러싼 논쟁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 극복의 출발점”


△ ‘북방한계선 논의, 끝없는 제자리걸음,’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6차 남북 장성급 회담 마지막 날인 지난 7월26일 오전 남쪽 대표 정승조 소장(왼쪽)과 북쪽 대표 김영철 중장(남쪽의 소장급)이 회담 종결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 사진공동취재단)

북방한계선은 1953년 8월30일 유엔군사령관이 해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했다. 육상분계선을 해상으로 연장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후 남북 양쪽은 이를 ‘사실상’의 해상군사분계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북방한계선이 남과 북의 국제법적 영토경계선이 아닌 ‘임시방편’일 뿐임을 남도 북도 잘 알고 있다.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와 그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에서 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명문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또 1992년 9월17일 발효된 기본합의서 제2장 부속합의서 9조에선 “남과 북의 지상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10조에선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북방한계선 대체를 위한 논의는 남북 관계의 진전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7월24~26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6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파행을 거듭한 것도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당시 남북은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 방지와 공동어로 실현, 경제협력·교류의 군사적 보장 문제에 대해 중점 협의했으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회담을 마쳤다. 남쪽은 “지난 50여 년간 실질적인 해상 군사분계선 역할을 해온 북방한계선을 존중·준수하는 가운데, 이미 남북 간 합의한 충돌 방지 관련 합의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개선이 필요한 실질적 조치들을 합의해나갈 것“을 제의했다. 반면 북쪽에선 북방한계선을 ‘불법·무법의 선’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협의할 것을 고집했다. 남이나 북이나 이전의 논쟁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방한계선 문제는 군사적 신뢰 구축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 북방한계선의 태동 자체가 남쪽 어선의 북상을 막는 ‘한계선’이었지,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니었다는 게다. 구 교수는 “북방한계선 자체가 한반도 분단체제의 여러 가지 성격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다”며 “때문에 분단체제 극복의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군사적 신뢰 구축의 한 형태로 북방한계선 문제를 적극 풀어 공동어로 구역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분쟁의 바다가 군사적 긴장 완화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게다.


△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교전 사태 때 우리 해군 고속정(왼쪽)이 북한 경비정을 향해 차단 기동을 하고 있다. 서해상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서라도 북방한계선에 대한 논의가 긴요하다.(사진/ 국방부 제공)

북방한계선은 남북 경제협력 확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북 철도 상시 운행과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관 문제 해결, 한강 하구 공동 개발은 모두 군사적 안전 보장이 전제가 돼야 한다. 이들 지역이 모두 군사분계선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 전문가들이 “북한이 군사적 보장이 필요한 경제협력 사업을 해상경계선 문제와 연계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평화도 경제협력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방한계선 문제가 남북 관계의 질적 도약을 가로막고 선 셈이란 게다.

현재로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이번 정상회담은 두 지도자가 폭넓은 주제를 굉장히 솔직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사전에 나름대로 조율하겠지만,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논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이미 1차 정상회담에서 한 번 걸러진 문제로, 심각하게 거론될 것으론 보지 않는다”며 “국가보안법 문제도 서로 나름의 논리가 서 있는 상태여서, 결국 걸리는 문제는 북방한계선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담의 무게중심은 군사적 긴장 완화·신뢰 구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남북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취임 초기부터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강조해온 노 대통령도 이 문제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참여정부가 일찌감치 서해상에서 신호체계를 만들어 남북 함정 간 충돌 방지대책을 마련하는가 하면, 비무장지대에서 상호 비방선전판도 철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노 대통령이 군사적 긴장 완화·군비 통제 등을 제안할 경우, 김 위원장은 북방한계선이란 ‘근본 문제’부터 풀자고 할 공산이 크다.

사실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영토경계선이므로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는 남쪽의 주장과 “임시방편이므로 당장 재설정해야 한다”는 북쪽의 주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내면 된다. 결국 남북 관계 발전 방향의 기본틀로 자리매김한 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우리 정부로선 그간의 원칙이 있고, 이를 고스란히 북쪽이 받아들이긴 어렵다. 논의가 ‘합의’로 결말을 짓기 위해선 남쪽의 ‘양보’가 선행돼야 하는 구조다.

벼락치기로 숙제 풀 수 있나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일단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공론화 등 사전 정지작업이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 교수는 “남북 관계가 소강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불쑥 정상회담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고 당위적으로 올바른 일임에도 성과가 거꾸로 역작용을 낼 수 있는 딜레마가 있다”며 “해결해야 할 과제임엔 분명하지만 불쑥 꺼내들기엔 그 부담을 고스란히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남쪽 내부의 합의 수준이 취약한 상태에서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북과 일정한 합의를 하거나, 기존 입장에서 바뀐 방향으로 섣불리 나아갔다간 되레 남남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국민적 공론화란 ‘숙제’를 게을리했던 노무현 정부가, 정상회담이란 ‘시험’을 맞아, 북방한계선이란 ‘난제’를 벼락치기로 풀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