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힘든 중소 컨텐츠 업체에 횡포 부리며 인터넷 생태계 위협…공정위 불공정 행위 조사를 계기로 공멸의 위기 벗어날 방안 마련돼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한국방송, 문화방송, SBS 등 방송 3사와 인터넷 자회사인 KBS인터넷, iMBC, SBSi 등이 공동으로 NHN(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 SK커뮤니케이션즈(네이트) 등 대형 포털 사이트 운영업체 대표들에게 우편 경고장을 보낸 건 지난 2월20일이었다.
방송 3사와의 법적 분쟁 시작되나
법무법인 ‘두우’ 명의의 ‘저작권 침해 행위 금지 등 요구’라는 제목을 단 경고장은 방송 콘텐츠를 포털 업체들이 불법으로 무단 이용하고 있는 실태를 비난하며 법적 조처에 나서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방송사 쪽은 3월7일(우편소인 기준)을 시한으로 회신을 받아 분석 중이다. 방송 3사와 인터넷 자회사 3사 쪽은 “이번 공문은 최종 경고이며, 3월 중 소송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은 올 2월 ‘2007년 업무계획’ 발표 때 대형 포털 업체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조사할 뜻을 밝혔다. 국회 출석 모습.(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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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은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각종 프로그램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돼 저작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3월6일 종영 때까지 방송 내내 화제를 뿌렸던 문화방송 드라마 <주몽>의 예를 들어보자. 네이버 ‘통합검색’에서 ‘주몽 다시보기’를 치면 지나간 방송분(동영상)을 무료로 보여주는 블로그 사이트 4군데가 앞자리에 뜬다. 그 바로 아래 ‘주몽 다시보기’와 관련된 정보를 담은 ‘지식iN’ 검색이 자리잡고 있으며 뒤이어 iMBC에서 정식으로 제공하는 ‘주몽 다시보기’가 나타난다. iMBC에서 다시 보려면 ‘국내 500~1천원’, ‘해외 1천원’의 요금을 물도록 돼 있다. 무료로 제공되는 블로그 서비스들 탓에 정작 iMBC 사이트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난감한 처지다.
네이버와 함께 국내 포털 시장에서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는 네이트, 다음 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몽’을 비롯한 드라마는 물론, 방송사가 독점 중계권을 갖고 있는 영화, 스포츠 등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예외 없이 포털 사이트 여기저기에 불법으로 퍼져 소비되고 있다. 누리꾼(네티즌)들로선 지나간 TV 프로그램을 공짜로 즐길 수 있으니 마냥 좋은 일일까? 방송사 쪽은 돈과 사람, 시간을 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의욕을 점점 잃어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방송 3사와 인터넷 자회사 3사가 이미 지난해 10월에도 인터넷 포털 업체들에 저작권 위반 행위의 시정을 촉구하는 1차 경고장을 보냈던 데서 볼 수 있듯 저작권 다툼은 곪을 대로 곪은 사안이다. 그 과정에서 쌓인 앙금이 이제 법적 분쟁의 형태로 폭발할 비등점에 이르렀다. 이는 음악 파일 사용을 둘러싼 ‘소리바다 사태’ 때처럼 줄소송의 파열음을 내며 인터넷 이용 환경에 격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무단 도용해놓고 ‘법적 책임’운운
방송사들은 그나마 저작권 문제를 이슈화할 통로와 힘을 갖고 있어 이렇게 한바탕 싸움을 벌일 수 있지만, 중소 규모의 전문 콘텐츠 업체는 인터넷 공간의 무소불위 ‘권력’인 대형 포털에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품지 못한다. 포털 시장 상위 3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80~90%에 이르는 현실에서 이들 눈밖에 났다간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 뉴스 매체를 설립해 운영하다 올해 회사를 떠났다는 이아무개씨의 경험담이다.
“(대형 포털 업체가) 처음에는 3개월의 ‘트라이얼’(시범 서비스) 기간을 갖고 그 뒤 정식 계약을 맺자고 하더라. 콘텐츠 사용 부분도 그때 협의해서 결정하자며 월정액도 얘기한다. 트라이얼이 끝날 때쯤 다시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콘텐츠 사용료는 지불할 수 없다고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3개월 정도 운영하다가 포털 서비스에서 사라지면 매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무료 공급을 할 수밖에 없다.” 포털에 헐값 또는 무료로 제공할 것이냐, 알려질 기회 없이 도태될 것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한 토론회에서 공개된 포털 업체와 인터넷 뉴스 제공 업체의 콘텐츠 공급계약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본 계약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항으로서 ‘갑’(포털 업체)의 정보 서비스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당사자들이 상호 협의하는 바에 따라 ‘을’(콘텐츠 업체)에게 추가적으로 제공하기로 함. ‘을’이 제공하는 정보의 페이지뷰가 3개월 연속 3천 미만일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함.”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첨부 사항을 따로 붙이고 일방적인 해지권을 둔 대목에서 힘의 우열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터넷에서 콘텐츠가 유포되는 독특한 방식 탓에 콘텐츠 제공업체 쪽에서 저작권 침해에 적절히 대응하기란 법적·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블로그 전문 사이트를 표방하며 출발한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의 시사 패러디 동영상 서비스인 ‘헤딩라인 뉴스’의 예를 보자. 헤딩라인 뉴스는 2004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한국방송 <생방송 시사투나잇>을 통해 정기적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3월8일 오후 네이버 사이트의 ‘동영상’ 검색에서 ‘헤딩라인 뉴스’를 입력해보면 모두 108건이 검색된다. 여기에는 ‘판도라 TV’ ‘엠엔캐스트’ 등 동영상을 만들어 제공한 업체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누군가 콘텐츠의 원천인 미디어몹 사이트에서 내려받아 동영상 업체로 퍼나른 게 포털로 옮아간 결과다.
‘미디어몹 → 누리꾼 → 동영상 업체 → 포털 사이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금 거래가 이뤄지는 곳은 딱 한 군데, ‘동영상 업체 → 포털 사이트’ 부분이다. ‘헤딩라인 뉴스’를 만드는 데 4명의 인력과 시간을 투입한 미디어몹은 콘텐츠의 대가를 받을 데가 없다. 포털 사이트는 동영상 업체에 돈을 지불했다고 발뺌하며, 동영상 업체 쪽은 (누리꾼이 올린 게) 다른 콘텐츠들에 묶여 포털 사이트로 덩달아 팔려나갔을 뿐이라고 답한다. 콘텐츠 업체 쪽은 동영상 또는 포털 업체의 직원들이 누리꾼으로 가장해 콘텐츠를 퍼나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네이트 사이트에선 더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똑같이 동영상 검색에서 ‘헤딩라인 뉴스’를 써넣으면 불법 도용된 93건(3월8일 오후)이 검색된다. 아무 콘텐츠나 클릭해 들어가보면, 동영상을 보여주는 작은 화면 아래 ‘알림’이란 글귀와 함께 이런 문구가 나타난다. “위 동영상의 원본은 http://××××.××××××.com/×××××××입니다. 해당 저작권자와 협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질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의심을 받는 쪽이 ‘저작권… 민·형사상 책임…’을 운운하는 걸 지켜보는 원저작자의 기분은 어떨까.

△ 국내 포털 시장의 주역들인 이해진 NHN 이사,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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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몹 편집장을 지내고 지금은 온·오프 잡지 <드라마틱>의 발행인으로 일하고 있는 최내현 인터넷콘텐츠협회 회장은 “(콘텐츠 생산 업체의) 게시판에서 개인 블로거가 퍼간 게 포털 사이트에 실린 걸 보고 삭제 요청을 하면, 저작권자 맞느냐고 확인 절차를 까다롭게 요구한다”며 “퍼가는 건 쉽게, 지우는 건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무단으로 도용된 콘텐츠들이) 다 나온다. 콘텐츠 사이트 방문자는 점점 줄어드는 기형적인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선 콘텐츠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없고, 인터넷 환경은 점점 황폐해진다는 설명이다.
중소 콘텐츠 업체들이 뭉쳐 대항한다
콘텐츠 업체들이 생산비를 건지기도 어려운 종속 구조에 빠진 걸 전적으로 포털 사이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에 널리 퍼지면 홍보 효과와 그에 따른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아래 적절한 대응을 미뤄온 데서 빚어진 문제 또한 크다. 중소 콘텐츠 업체는 물론 공중파 방송사, 중앙 일간지들 또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송경재 경희대 연구교수는 “초창기 포털에 콘텐츠를 제공할 때부터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근시안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썩혀놓으면 뭐하나, 소액이라도 받고 팔자’는 안이한 생각이 지금 같은 비정상적인 힘의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포털 시장은 대형 업체 3군데로 집중돼 있는 반면, 콘텐츠를 제공할 업체들은 수도 없이 몰려 난립하고 있는 극심한 비대칭 구조여서 콘텐츠의 제값을 못 받는 불평등 거래는 피하기 어렵게 돼 있다. 인터넷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업체들은 콘텐츠의 대가를 받는 것에 앞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우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이는 대형 포털 업체들의 독과점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굳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휴대전화 사용자 모임 사이트인 세티즌(www.cetizen.com)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세티즌에 게재되는 휴대전화 기기의 특징, 장단점은 회원들의 사용기가 아니라 5명 안팎의 직원들의 작업 결과다. 엄연히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창작물이지만, 세티즌의 콘텐츠는 포털 사이트의 카페, 블로그 등에 공공연히 게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황규원 세티즌 대표는 “포털 업체들에 항의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초창기엔 그것도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 여겼다. 포털 업체 쪽에서 유료로 사주면 좋지만, 내부적으로 갖고 있기만 할 수도 없으니….” 이런 상태에서 세티즌의 수익원은 자체 사이트에 광고를 유치하는 것뿐이다. 포털을 매개(길 안내자)로 삼아 누리꾼에게 콘텐츠를 팔아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다시 양질의 콘텐츠를 마련하는 재생산의 순환 고리가 끊겨 있다. 초원의 생태계에서 ‘사자와 풀’만 남고 ‘토끼와 여우’는 사라질 위기에 내몰리는 격이다.
포털 시장의 독과점 구조에서 비롯되는 폐해는 인터넷 업계 안팎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조짐이다. 법적 분쟁으로 번지기 직전인 방송 3사와 대형 포털 업체들 사이의 저작권 다툼이 한 예다. 중소 콘텐츠 업체들끼리 뭉쳐 대항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10월의 인터넷콘텐츠협회 결성이다. 회원사 140개 규모의 콘텐츠협회는 공동으로 광고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개별 회사로선 엄두를 내기 어려운 저작권 소송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비친다. 회원사들의 포털 구실을 할 ‘허브 사이트’를 만드는 방안도 콘텐츠협회의 주요 과제다. 최내현 회장은 “허브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비 명목의 정부 지원을 약속받은 상태이며, 한 대기업과 사이트를 공동 제작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 NHN은 지난해 검색 벤처기업 첫눈을 인수함으로써 덩치를 더욱 불렸다. NHN 최휘영 사장(오른쪽)과 첫눈의 장병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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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업계 내부의 포털과 콘텐츠 업체 간 긴장은 밖으로 불거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에서 주요 이슈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포털 시장의 극심한 독과점 구조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부작용이 자율적으로 정화되기 어려워 일정한 ‘공적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의 반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월12일 ‘2007년 업무 계획’에서 인터넷 포털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할 뜻을 밝힌 데 이어 4~5명 규모의 전담팀을 꾸려 예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이뤄진 문제 제기가 공정위의 첫 조사로 이어진 것이다.
규제하면 이용자들이 반발할 수도
공정위의 조사 결과 포털과 콘텐츠 업체들 사이의 불공정거래가 구체적인 물증으로 드러날 경우 법규를 정해 포털에 적절한 통제 장치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가칭 ‘인터넷 포털 사업자 법안’을 마련 중인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 쪽에서 크게 기대하는 바다. 진 의원 쪽은 올 2월 대형 포털 업체의 불공정거래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외부 전문가들과 법안을 준비 중이다. 대형 포털 사업자들의 점유율을 일정한 수준으로 묶거나, 주요 검색 콘텐츠의 일정 비율을 포털 밖으로 연결하도록 유도해 콘텐츠 업체와 포털 사이트들의 공존을 꾀하자는 게 목적이다.
인터넷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자는 이런 취지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여정은 아직 험난해 보인다. 대형 포털 업체들의 대항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뜻하지 않게 싸움의 상대가 누리꾼이 될 수도 있다. 콘텐츠 업체들의 공존을 꾀하기 위한 일정한 통제 탓에 단기적으로 인터넷 사용이 불편해지면 이용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열쇠는 어쩌면 누리꾼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 모른다.
송경재 교수는 “(포털과 콘텐츠 업체들 사이의) 비대칭적 정보 시장이 형성돼 내부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며 “법적인 제재 이전에 우선은 자율적인 정화 장치로 해결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한다. “중소 콘텐츠 업체들이 죽어가는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포털 업체들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포털 쪽에서 얻는 광고 수익의 일정 비율을 기여도가 높은 콘텐츠 업체들에 배분한다든가 하는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인터넷 생태계의 ‘토끼와 여우’가 ‘사자와 풀’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