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5월17일 제610호
열아홉, 너희 능력을 보여줘!

5·31 지방선거, 반세기만에 그들이 첫 투표를 한다…낮은 투표율 예상되지만 정치 참여와 개혁의 목소리 드높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만 19세?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20~21세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거세된 나이였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 2등 국민이었다. 3·1운동과 4·19혁명의 역사에 주역으로 있었지만 열아홉의 권리는 무시돼왔다.

촛불 시위가 보여준 폭발력

지난해에야 비로소 권리를 찾았다. 한 살을 낮추는 데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만 19세 청소년들은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생에 첫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0월26일 열린 재·보궐 선거부터 투표권이 주어졌지만 전국적인 차원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10대 62만 명이 투표장 출입증을 얻은 셈이다. 19세에 한정되긴 했지만 10대들의 정치 참여 통로가 열렸다. 10대들도 자신의 첫 권리에 대한 자리매김에 나섰다.

“헌정 사상 만 19세가 첫 투표를 하게 됐어요. 만 19세가 몇 명인지 아는 사람? 50만? 60만? 정확하게 아시는 분…. 약 62만 명이에요. 전체 유권자의 1.7%입니다. 이게 어느 만큼인지 실감이 안 나죠? 아주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도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57만 표 차이로 이겼다고 하는데, 만 19세가 모두 단결해 한 사람을 밀면 정권을 바꿀 수도 있는 숫자예요.”

지난 5월10일 경희대 문과대 308호실. 대학 1, 2학년 새내기 티를 물씬 풍기는 30여 명의 만 19세들이 한자리에 모여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김진숙 이사의 말에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 희망과 동아리 ‘대학희망’이 공동으로 주관한 ‘5·31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파워 19세 실천단 발대식’은 강의실을 뜨겁게 달궜다. 현실성은 떨어지겠지만 열아홉의 힘에 으쓱했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실 왼쪽 벽면엔 “19세 첫 투표로, 정치를 바꾸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더 이상 머릿속에만 가둘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당당해 보였다. 열아홉들은 사회자가 “사과상자 부패정치” “성추행 비상식 정치” “진부한 색깔정치” “네 편 내 편 지역정치” “권위주의 낡은 정치” “치고박고 싸움정치”를 차례대로 선창할 때마다 “바꿔~ 바꿔~” 후렴구를 외쳤다. 조혜진(19·동덕여대)씨는 “지연과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층의 선거 참여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주변인이 아니라 참다운 주인으로 자리매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아홉은 자신의 첫 정치 무대 등장의 의미를 변화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했다. 38개 청소년 단체와 대학 단체가 5월2일 뜻을 모아 결성한 ‘5·31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청소년운동본부’의 모토가 이를 잘 말해준다. “청소년의 참여는 지역의 희망, 10대가 투표하면 깨끗한 선거.” 김진숙 이사는 “19세는 기존의 구태의연한 생각과 학연·지연, 어른들의 논리나 권력에 친화적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민감한 또래적 특성을 갖고 있다. 무관심하다가도 중요성을 깨닫고 자기 확신이 생기면 정치적 폭발력과 확산력이 크다”고 말했다.

열아홉은 정치 참여의 의지나 변화의 주체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오랫동안 의심받아왔다. 하지만 2002년 효순·미선이 사건이 터졌을 때 촛불을 들고 조용히 거리에 나서 19~24세의 정치 참여 능력과 힘을 보여줬다. ‘촛불 세대’인 이들은 ‘386’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 참여를 경험했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김종민 간사는 “지난해 내신과 두발 관련 촛불시위가 있었던 것도 청소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학교부터 문제

청소년들이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다고 해서 열아홉을 중심으로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을 낼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청소년들을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보는 어른들의 편견도 두텁지만 실제 정치 참여율이 높지 않은 탓이다. 전문가들은 5·31 지방선거에서 열아홉의 투표율이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겨레21>이 5월9~12일 수도권 내 만 19세 대학생과 재수생 300명을 대상으로 이번 지방선거에 만 19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은 결과 “모르고 있었다”는 응답이 무려 34%에 달했다. 또 응답자의 52%가 “투표하겠다”고 답했지만, 2002년 20~24세의 투표율이 전체 평균 48.9%에 못 미치는 31.2%에 불과한 점을 고려할 때 실제 투표율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 19세 응답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어서”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정치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난다”가 뒤를 이었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느냐는 물음엔 “없다”는 응답자가 무려 54%에 달했다. 지지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투표장으로 가는 발길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표율이 낮은 정치적 무관심층이라는 말엔 청소년들도 할 말이 많다. 김선경(21·경희대) 대학희망 대표는 “12년 동안 입시 위주의 학교 틀 안에 갇혀 지내면서 정치 참여를 통해 뭔가 바꿔낼 수 있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정치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부모 세대로부터 정치에 대한 불신을 배우고,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정치 참여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것이다. 특히 학교에서는 정치활동을 금기시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 처벌을 각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도봉정보산업고등학교 학생회 회칙을 보면 “이 회의의 회원(학생)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 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다른 학교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18세 선거권 낮추기 운동을 편 학생에게 학교가 퇴학 경고를 내리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 참여 통로를 일찍부터 차단하면서 사회가 나서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 19세가 나서면 세상이 바뀐다? 지난 5월2일 38개 청소년 및 대학 단체가 모여 ‘5·31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청소년운동본부’를 꾸린 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위).

젊은 층을 위한 공약과 정책의 부재도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채질해왔다. 젊은 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젊은 층의 정치 진출의 길이 좁은데다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젊은 층의 유권자를 위해 정치인들은 굳이 공약과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한겨레21>의 설문조사에서 만 19세의 유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후보자의 공약은 “일자리 창출”(34%)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치 현장에서 20대의 가장 큰 고민인 청년실업이나 등록금 문제에 대한 공약을 찾기 어려웠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학 교수는 “나의 적극적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낮다”는 것에서 청소년층의 투표율이 낮은 원인을 찾았다.

이같은 환경에서 ‘5·31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청소년 운동본부’가 꾸려진 것은 청소년 정치 참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청소년들 스스로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 19세의 힘은 투표율에서 나온다. 경희대 캠퍼스에서 만 19세가 된 한 학생이 5·31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투표용지에 서명을 한 뒤 모형 투표함에 넣고 있다

청소년운동본부는 만 19세를 대상으로 이번 5·31 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서명받기 운동에 돌입했다. 19세를 상징하는 1만9천 명의 서명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투표율을 끌어올려야 청소년의 정치적 발언을 키울 수 있다는 발상에서다.

투표권은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

투표율을 높이려면 근본적으로 청소년들의 건전한 정치적 관심과 교육의 기회를 일찍부터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윤진 중앙대 청소년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이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고 어떻게 사회가 달라지는가를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방법으로 ‘청소년교육전략21’의 청소년 옴부즈맨팀을 통한 지역정치 참여나 청소년특별회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동아리, 문화공간 확보 등 청소년들이 활동활 수 있는 공간 마련 등이 필요하다. 이동수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의장은 “청소년들이 흥미를 느끼고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치 참여 기회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만 19세의 첫 정치 참여는 단순히 그만큼의 청소년 유권자가 더 늘어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19세를 비롯해 만 24세까지 청소년을 바라보는 각 당의 시선과 대접이 달라졌다. 여야 각 당의 원내 정책위의장들은 청소년운동본부의 공동대표단을 경쟁적으로 만나고 있다.


△ 헌정 사상 10대에게 첫 투표권이 부여된 것을 계기로 정치권은 청소년들의 요구에 더욱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두발 규제에 항의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과거에 어림도 없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젊은 층의 표심을 잡으려 등록금 정책 등 청소년 삶과 관련된 공약도 내놓고 있다.

19세의 투표율은 선거권 연령의 18세 인하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피선거권 진출 확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른들은 19세의 투표율을 보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을 판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의 투표권은 권리이자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19세

2005년 한나라당 반발로 18세에서 밀려나, 피선거권 25세도 비합리적

45년이 걸렸다. 선거권 연령이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한 살 낮아지는 데 반세기의 노력이 필요했다. 1948년 건국 당시 만 21세이던 선거권 연령은 1960년 20세에서 지난해 여야의 줄다리기 끝에 가까스로 19세로 낮아졌다.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민주당의 18세로 낮추기 ‘약속’과 여야 의원 130여 명의 서명도 한나라당의 반발에 19세로 밀려났다.

지난 2004년 기준으로 선거권 부여 연령이 18세인 나라는 167개국 가운데 143개로 85%에 이른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카메룬·튀니지·모로코·나우르·리히텐슈타인 등 다른 6개국과 함께 20세를 고집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19세를 선거권의 기준으로 삼는 나라는 이제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됐다. 북한은 인도네시아·이란·수단 등과 함께 17세를 기준으로, 쿠바·브라질·니카라과 등은 16세를 선거 연령 기준으로 한다.

선거권과 마찬가지로 피선거권도 국제 표준에서 한참 떨어진다. 유럽 지역의 피선거권 연령은 터키·키프로스 등 몇몇 나라를 빼곤 대체로 만 18세다. 따라서 만 18세가 되면 누구든 공직에 나설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만 25세 이상인 경우에만 출마할 수 있다. 또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대부분 동일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엔 무려 6살의 차이가 난다. 능력이 있고 준비가 돼 있다고 하더라도 만 25세 미만은 공직에 나설 기회를 갖지 못한다. 김선경 대학희망 회장은 “40세라 하더라도 39세부터 1년 정도 준비를 하다가 공직에 나서는 것보다 5년 정도 활동을 하면서 준비한 18세짜리가 전문성에서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 25세로 정해지는 과정은 선거 연령이 만 19세로 되는 과정만큼이나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이혜정 한국YMCA 청소년팀 간사는 “피선거권의 연령 제한을 왜 스물다섯으로 했는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며 “나이 든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관습 아니냐”고 되물었다. 애초 1990년 지방자치의 단체장 선거법에서 시도지사는 35세, 기초단체장은 30세이던 것이 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25세로 통일됐다. 25세의 연원을 굳이 찾자면 재헌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의 입후보 자격이 만 25세 이상이었다.



이런 공약 내놓으라

청소년 운동본부가 제시한 정책과제들, 후보 판단 기준으로

‘골라찍자!’

5·31 지방선거에서 만 19세 유권자는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뽑을까? 기준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한겨레21>의 조사에서는 만 19세 응답자의 52%가 후보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보고 뽑겠다고 답했다. 여기에 보탠다면 ‘5·31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청소년 운동본부’가 제시한 정책들이 있다. 청소년 운동본부는 “청소년들이 자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동네가 누구나 살 만한 지역사회”라는 모토로 아래의 정책과제들을 제시했다. 청소년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도 활용해볼 만한 기준들이다.

① 18세 참정권과 피선거권의 확대

② 청소년의 행복추구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청소년 육성계획의 조례 제정

③ 청소년의 삶과 관련된 정책 의사결정 사항에 청소년의 참여 제도화

④ 지역 청소년 동아리 활성화 기반 마련

⑤ 결식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무료 급식 상시화와 학교 급식에 대한 기준 제시

⑥ 청소년증을 발급해 지역사회의 청소년 현황과 인권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⑦ 인턴활동 프로그램 실시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실업 극복

⑧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청소년 고용업소에 대한 교육 실시

⑨ 청소년들의 학교 운영 참여를 위한 학생회의 법제화와 자율적인 학교생활 규정안 제정

⑩ 두발규제와 강제적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 등 학교 내 비평화적 반인권적 문화의 타파

이러한 내용은 청소년단체들이 그동안 꾸준히 내놓은 정책과제를 모아놓은 것이기도 하다. 전성민 청소년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의 선택기준으로 정책과제들을 활용하는 것은 그동안 지역사회의 구성원에서 사실상 소외된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 정책과제들에 가장 근접한 공약과 정책을 내놓은 후보자를 골라찍는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