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1년7개월 만에 입을 열었다. “너무 답답해서 지금의 내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그가 장관 퇴임 이후 처음으로 <한겨레21>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이유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퇴임 이후의 생활과 최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서울시장 후보 논란, 본격적인 정치 입문에 대한 생각 등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서울시장 후보 문제와 관련해 그는 “존경하고 신뢰하는 이들의 진지한 권유로 시작한 고민”이 이제 막바지 결정 단계에 와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결정을 위해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는 과정이 “‘훌륭한 학습의 경험’이었고 스스로 여러 문제를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후보가 되는 것을 ‘공적인 영역으로의 진입’이라고 느끼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투신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의 고민은 선거운동 과정이나 서울시장 직무의 성격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까지를 포괄하고 있었다. 결정을 위한 등정은 이미 8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보인 첫 반응은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개인 강금실’로 재충전

법무부 장관을 그만두고 1년7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의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미디어를 극구 피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일종의 사회적 ‘은둔생활’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사진/ 박승화 기자)

= 쉴 필요가 있었다. 장관 시절 내게 주어진 과제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긴장된 상황을 많이 겪은 것도 사실이다. 쉬기 시작해서 1년쯤 지나니까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적인 영역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는 철저히 개인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 강금실로서 삶을 추스르고 재충전하는 기간이었다. 장관일 때는 공인이니까 필요에 따라 미디어에 개인의 삶까지도 공개했지만, 개인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매스컴을 멀리한 것이다. 외부 강연이나 방송 출연, 인터뷰 요청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거기에 나가서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경험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회적 관계에서 나오는 역할이나 위치에 따라서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여성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기록이 개인 강금실에게 귀속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인가.

= 현실적으로는 분리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내 자신이 공직에 대한 까다로운 태도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관직에 대한 정리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또 바로 다시 드러나야 한다면 ‘너의 새로운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으로서 한없이 자유스럽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해야 했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웃음)

= 너무 어려운가. (웃음) 쉽게 말하면 공사 분간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얘기다. 나에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법무부 장관과 개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문제는 공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퇴임 뒤에도 자기가 맡았던 공직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부적절한 언행이나 자세를 보일 때 개인 강금실뿐만 아니라 내가 맡았던 직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1년7개월이 지났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 아닌가.

=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로펌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퍼블릭 페이스’로 얼굴이 너무 알려진 상황이라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었다. 그런데 퇴임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시인) 김정환 선배님 덕분에 좀 나아졌다. 소모임에서 초대해서 간 적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처음 만나는 이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다. 그게 계기가 돼 그 뒤로는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법무부 장관 시절의 일을 따로 정리하고 있는가.

= 책을 준비하는 게 있다. 1차 자료정리를 마친 상태다. 체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1월4일 오후 2시, “내 역할을 놓치고 있나”

한국에서는 호칭을 부를 때 가장 높게 올라갔던 공직을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장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나.

= 그냥 ‘변호사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장관님’이라고 하기도 한다. 호칭에는 별로 신경 안 쓴다. ‘금실아’ 해도 상관없다. (웃음) ‘금실씨’ ‘언니’ ‘누님’도 자주 불리는 호칭이다. 그런 호칭 가운데 하나가 더 생겼는데 그게 ‘장관님’이다. 그런 정도다.

대한민국 여성인권대사로 활동했던 것은 공적인 영역의 일 아닌가.

△ (사진/ 박승화 기자)

= 정부 영역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정부 일은 아니다. ‘퍼블릭 디플로머시’(public diplomacy) 라고 부르는데 제3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여성 문제는 현실적으로 빈곤 문제와 맞닿아 있다. 빈곤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동·노인들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지 않나. 우리나라 빈곤층에 ‘독거 여성노인’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서남아시아의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아시안개발은행(ADB)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모든 정책의 입안-집행-사후관리까지 ‘성 인지적 관점’을 적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도로공사를 할 때 공사 전에 교육을 하고 여성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동일하게 주고, 공사가 끝난 뒤 도로 관리를 여성에게 맡기고, 일하는 여성이 임금 중 일부를 저축하고 그것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하게 하는 식이다. 그래야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지가 관심사다. 본인의 정확한 얘기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돌고 있다. 정확한 과정을 소개해줄 수 있는가.

= 솔직하게 얘기하겠다. 지난해에도 몇 번 주변 분들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았다. 한명숙·조배숙 의원도 만났고, 김두관 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도 만났다. 그때부터 출마 얘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국회와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현실정치에는 간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얘기를 들어도 당연히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말과 연초에 비로소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내 뜻과는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분위기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친하고 신뢰하고 존경하는 분들께서 무척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다. 우리가 같이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당신이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도 같이 하겠다는 식의 권유를 할 때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꼭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혹시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할 수도 있는 역할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초에 1월4일 오후 2시였다. (웃음)

김근태·정동영쪽과 접촉한 적 없어

그분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는 어렵나.

= 그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들의 얘기였고 마음에 걸렸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같이 해보자는 것은 선거운동을 같이 해준다는 것인가.

= 그냥 동참의 의미로 봐야 하지 않겠나. 서울시에 따라가겠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웃음) 할 것이냐 말 것이냐보다는 한다면 왜 해야 하나, 안 한다면 왜 안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적인 이유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랬기 때문에 1월9일 김혁규 의원을 만났을 때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는데 그걸 공개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고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정치권에서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예스’로 생각하더라. (웃음)

그 뒤로는 특별한 만남이나 의견 조율이 없었나.

=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전당대회가 2월18일이었는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당과 연관돼 내 얘기가 자꾸 기사화되어 곤란했다. 그사이에 출마 여부에 관한 의사 표시를 하는 것도 어색한 상황이 돼버렸다. 처음에는 1월 말까지 고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길어지고 있다. 내가 여자 후배 변호사들한테 이런 농담을 했다. 요즘에 내 주제가가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와가는데,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고 했다. (웃음) 그러니까 다 웃더라. 정말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을 마냥 끌 수는 없다.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강심’이 어디로 향했는지가 관심거리였다. 당 의장 후보였던 두 사람이 “강금실은 내 편”이라고 서로 우겼는데.

= 정치인들이 전화를 해오면 거절하지 않는다. 예의상 전화도 받고 만나기도 한다. 전당대회 전에 내 이름이 거론되면서 입장이 부담스러워졌다. 이미 공개가 된 얘기이지만, 김한길 대표도 만났고, 김부겸·문희상 의원도 만났다. 전당대회 초기였는데 과열돼서 접촉을 끊었다.

어제 정동영 의장이 보낸 인사와 만났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 2월10일께 만나기로 한 약속인데 일주일 미뤘다가 그것도 안 될 것 같아 다시 미룬 것이었다.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성격이다. 다만,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당에 여유를 달라는 의사는 밝혔다. 당에서도 내가 출마한다고 전제하지 말고 다각도로 모색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함께 전했다.

나를 비우고 마음을 낸다

마음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절대 안 한다’에서 출발해서 ‘생각해보겠다’로 바뀌고,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는가.

= 생각해보는 상황인데 훨씬 더 구체적인 고민이 됐다. 두 달째 고민하면서 많은 것을 체험했다. 문제들을 많이 정리했고, 알게 됐다. 선거에 관한 얘기, 서울시장직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꼭 나가서 서울을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들었다. 찬반 양론을 들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학습을 많이 한 것 같다. 학습효과가 있었다. 내 자신에 대한 고민도 숙성됐다.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이미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마음을 낸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어떤 후배가 그런 조언을 해줬다. 서울시장을 하겠다는 마음을 낼 것이냐의 문제가 핵심이다. 환경을 안다, 선거 치를 준비가 됐다, 정책을 만든다는 등에 앞서 내 마음을 사심 없고 가벼운 상태로 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다. 내 자신이 아직 그것을 못하고 있다.

△ 강금실 전 장관이 퇴임 1년7개월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인터뷰는 2월24일 서울 남대문 상공회의소 건물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강 전 장관은 지평의 대표변호사다. (사진/ 류우종 기자 )

‘잘할 수 있다’고 조언한 이들과 ‘서울시장 일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얘기했나.

= 여러 의견을 듣다 보니 의견을 말한 이들의 세계관과 철학,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른 것 같더라. 세상 공부하는 느낌도 들었다. 인생과 일상이 모두 선택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이건 좀 어려운 선택이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1년7개월 동안 쉬면서 저 깊숙이 물러나 있었다. 주요 공직에 나설 때는 ‘투신’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투신하면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실망을 주고, 일의 투명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법무부 갈 때도 그런 정신상태였던 것 같다. 마치 ‘출가’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막상 가서는 좋은 사람들 만나서 재미있게 지냈지만. 그것을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큰 문제로 선택을 강요당하니까 힘들다.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출마를 하느냐 말고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상당한 결단이 필요하게 돼버렸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문제제기가 되어버렸고, 나 자신도 공적인 영역에서 답을 해야 한다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로움이 없어졌다. 상황은 좀 심각하다. (웃음)

이미 결심을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지 않나.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보다는 이미 한 번 경험한 사람이 다시 결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쉽지 않은가.

= 그렇지 않더라. 힘든 걸 알기 때문에 공직에 간다고 했을 때는 공직자의 심리 상태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삶의 연장선상에서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러면 권력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그 역할에 충실하려면 자기를 버려야 할 것 같다.

‘투신’이나 ‘출가’라는 단어까지 쓰는 것을 보면 무척 실존적인 고민의 수준인 것 같다.

= 많은 분들을 만나서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어떤 분의 얘기를 들을 때는 불출마를 결심했고, 또 어떤 분의 얘기를 들으면 흔들렸다.

선거 과정도 즐겁고 아름다워야

저 깊숙이 들어가 있던 마음이 조금씩 나오는 상황인데 당신을 설득하는 논리를 정리해봤다. 이 가운데 어떤 것에 가장 마음이 나왔는지를 선택할 수 있나. ‘한때 몸을 담았던 참여정부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구국의 결단 차원에서 잔다르크(또는 ‘강다르크’)가 되어달라’ ‘한나라당에 서울시장 자리가 가면 절대 안 된다’ ‘(생물학적 여성일 뿐 정치적으로 남성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여성 정치인으로 지지할 수 없고) 따라서 명실상부한 여성 정치인을 가지고 싶다’ ‘공동체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달라’ 등이다.

=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한 얘기들이 있었다. 뜻밖에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마음이 안 움직인다’고 고민을 털어놨더니 그 친구가 “네가 서울시장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굉장히 재미있고 잘할 것 같은데 왜 안 해”라고 말했다. 그답지 않게 적극적이었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 옥탑방에서 사는 시인 친구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친구다. 지혜롭고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도 강한 그런 친구가 그렇게 말하니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 친구가 다음날 또 찾아왔다. (웃음) 또 한 명은 원로이신데 “기존 정치가 아닌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간곡한 얘기였다. 현실정치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어떤 정치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 하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접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다.

선거 과정과 서울시장 직무에 대한 실무기술적인 고민과 함께 정치 분야에 본격적으로 참여해야 하느냐는 실존적·근본적 고민도 함께 겹쳐져 있는 것 같다. 혹시 실무기술적 고민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실존적 고민이 끝났기 때문이 아닌가.

=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현실정치라는 대상을 두고 거기에 내가 들어간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이 뭐냐는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계산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장의 역할과 그것에 필요한 전문성 측면에서 내가 적합한지의 문제 아닐까. 선거의 후보라고 한다면 그게 요체라고 본다. 그것이 어떤 자리이고 그 자리를 위해 내가 마음을 낼 것인가로 요약된다.

출마 결심을 하게 된다면 선거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선거를 한다면 이겨야 의미를 지니는 것 아닌가.

= 선거와 관련한 고민은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사회활동에서 내가 드러냈던 철학·성격·언행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게 흔들리면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패배라고 본다. 아름답지 못한 패배다. 그러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일 수 있다. 삶이란 승리보다는 패배의 축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빼앗거나 더럽히는 방식으로는 아름다운 승리가 될 수 없다. 그런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큰 선거를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다. 좋은 서울시장을 뽑자는 것도 우리가 한 번 살다 가는 이 공간을 함께 나누면서 즐겁게 살자는 것인데, 선거 과정도 즐겁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나. 당선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과대포장하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하는 추한 꼴을 보이면 안 될 것이다. 새로운 영역에서, 그것도 매우 위험한 영역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가. 마음을 내야 하는 문제다.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다. 미쳐서. (웃음)

현실정치 영역에 들어서진 않을 것

미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총선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이 2004년이었다. 내가 무척 시달렸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권 인사들을) 10번 정도 만났고 3번 정도 마음이 흔들렸다. 흔들렸을 때 나의 결론은 당시 법무부에서 하던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 후임으로 온다면 나가서 선거운동을 한 뒤에 집에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보니까 선거라는 게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고 눈을 멀게 하는, 매우 강렬한 바람이었다. 사실 정치라는 게 선거의 연속이다. 선거가 정치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그런데 선거는 목표가 분명한 승부의 세계다. 이성에 의한 호소보다는 감성·열정에 호소하게 된다. 선거가 끝나면 이성에 의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딜레마다. 그것이 선거가 가지는 모순적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나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에서 정책 대결로 가고 이성적 선거로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2005년 9월21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1돌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강금실 전 장관. 그는 지금 자기를 버리는 투신을 고민한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조화시키는 문제나 외적 요구와 내적 요구를 조화시키는 문제에 대해 고민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삶을 보면 외부의 요구가 있을 때 ‘나는 자유로운 개인이니까 내 식대로 살겠다’고 매몰차게 대응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현직 판사 시절에 우리법연구회를 주도했던 일이며, 판사를 그만두고 민변 활동을 한 일, 로펌 대표를 맡고 있을 때 법무부 장관의 요구에 응한 것 등이 그렇지 않나.

= 대학 1학년 때 종교학과를 가려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신학 책도 많이 읽었다. 결국 사람의 삶은 어떤 영역에 있더라도 하나가 아닌가. 영역의 특수성은 있지만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무엇이 될 것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서울시장도 내가 시장이 될 것이냐 하고 접근하는 것과 내가 시장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접근하는 것은 다르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편안하고 좋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13년 동안 판사를 했지만 공직자로서의 윤리나 자세를 유지하는 건 자부심은 있었지만 무척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7년 동안 변호사를 할 때 사적인 영역을 즐기는 자유를 가졌다. 그 뒤에 다시 1년 반 동안 법무부 장관을 할 때 힘들었고, 이제 1년7개월 동안 자유롭게 있다가 다시 이렇게 버겁고 힘들다.

법무부 장관 초기 “장관도 정무직이지만, 행정관료 쪽이지 정치인은 아닌다. 국회 정치하고는 다르다. 앞으로도 정치할 마음은 없다”고 했는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서울시장은 정치인인가, 행정관료인가.

=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어리석었다고 할까, 순진했다고 할까. 법무부 장관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장관 초기에만 해도 이것은 정치가 아니고 행정이라고 우겼는데, 지금 보면 넓은 의미에서 현실정치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정치적인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자리다. 장관 재직 때 깊이 고민했던 것이 정치와 권력의 문제였다. 정치와 권력이 진실·진리 문제와 관련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인가 하는 문제다.

법무장관 시절의 업적, 사법개혁의 시발점

국회의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 서울시장을 보면 선거는 정치적 행위이지만, 시장직 자체는 매우 독립된 행정전문직에 가까워서 조금 자유롭다고 본다. 그런 면 때문에 “공익적인 일도 많이 할 수 있고, 현실정치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은데 왜 안 하려고 하느냐”고 설득한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정당 입당이나 선거 문제가 마음에 걸려 있다.

마음을 내는 문제에서 더 걸리는 것이 시장직 수행보다는 선거를 치르는 문제라는 뜻인가.

= 내가 망설리는 이유는 내 삶이 바뀐다는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공직으로 산다는 것은 내 인생이 달라지는 문제다.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느낌이다. 로펌 대표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삶 전체의 나침반을 재조정하는 문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망가질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망가질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도 망가질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은 망가지지 않는 자리인가.

= 그때는 정치인지 몰라서 휩쓸리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보니까 정치였다. 정치의 논리와 게임의 법칙을 내가 몰랐기 때문에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됐다. 상대방은 예측하고 찔렀는데 내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으니까 게임이 안 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게임의 법칙을 안다.

검증이 안 된 인물이라는 일각의 비판이 있다. 법무부 장관 시절은 본격적인 검증 대상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떠한가.

= 검찰이 준사법기관인데 지금까지 권력의 영향력에 따라 운영한 데 문제가 있었다. 권력이 강한데 운영까지 권력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문제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모든 조직원들이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핵심 문제에 접근하기는 했는데 다 하지 못하고 나왔다. 최선은 다했지만 검사들과 국민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천정배 현 법무장관이 하는 개혁 작업이 가능한 것은 그나마 당시에 그런 구조와 분위기를 만들어놓았기 때문 아닌가.

= 개혁작업의 시발점이 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때 내가 만들었던 정책위원회와 정책기획단은 활발하게 그 맥을 이어 유지되고 있더라.

검증에서 결함 드러나면 물러나야

마음을 아직 완전히 내지도 않았는데 외부에서는 ‘강풍’이 불고 있다.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바람의 주된 요인인데, 이는 정치적으로 훌륭한 자산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자산이 주로 이미지에서 나온다는 지적이 있다. 즉, 오늘날의 강금실을 만든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것이다. 새 정치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나의 콘텐츠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 콘텐츠나 비전에 대해서 얘기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법무부 장관을 그만두고 나와서 보니 한국 정치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이 실패한 탓이기에 앞서 현대정치의 시스템이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 정당정치, 시장경제 원리 등 기본 골격이 아직 흔들린다. 법치주의 운영도 아직 잘 안 된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잘 구비됐는데 실질적 법치주의, 즉 인간적인 가치나 규범, 공정성, 형평성, 상식이 보장되는 법치주의, 적법절차의 문제 등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근본이 여러 이해당사자들에게 의견 제출의 기회를 공정하게 주고, 싸움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런 기본틀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진보냐 보수냐, 개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선거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선거 과정에서의 검증, 즉 재산·도덕성·능력 등 온갖 방면에서 진이 빠질 정도로 엄청난 검증이 시도된다는 점도 포함되나. 검증을 최소화하려고 발표를 늦춘다는 시각도 있다.

= 법무부 때도 한 번 겪었다. 자기를 버리는 투신을 한다면 이미 버려진 자기에 대한 공격이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겠지만, 자기 자신을 비우고 극복한 상태에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변명하고, 호도하고, 업적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흔들림이 없는 지경까지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공격이 얼마나 드세냐, 검증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냐는 둘째 문제다. 검증 과정에서 정말 치명적인 것이나 결정적인 결함이 드러나면 죄송하다고 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선거는 현실이다. 개인이 아닌 조직이 필요하다. 당신을 도울 네트워크가 있다고 보나.

= 그런 것도 포함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도와줄 사람은 별로 없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