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2월15일 제547호
그대,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에서 졸고 있는가

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는 한국의 대공장 노동조합운동, 그들은 ‘진짜 진보세력’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민주노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16대 집행부는 도덕적 책임과 기아차노조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총사퇴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취업비리 사건이 터진 기아자동차노조가 2년 전인 2003년 3월에 낸 성명서다. 기아차노조는 이번 사태로 17대 집행부(박홍귀 전 노조위원장)가 사퇴했지만, 이전 16대 집행부(하상수 전 노조위원장) 역시 노조간부의 금품 수수 사건으로 총사퇴한 ‘전력’이 있다. 17대 집행부는 16대 집행부 총사퇴 뒤 “우리는 한번도 (노조 집행부를) 해보지 않아서 깨끗하다”며 ‘깨끗함과 투명성을 담보하고 정정당당!’을 구호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17대 집행부조차 2003년 말 판매지부 노조간부의 조합비 횡령 사건이 터져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취업비리 사건이 터진 것이다.


△ 노동조합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하지만 한국의 대공장노조는 권력화하면서 ‘진정성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2월1일 서울 영들포 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진/ 김진수 기자)

오래전부터 ‘위기’가 닥쳤지만 노조는 항상 “개인 비리가 터질 때마다 집행부가 사퇴한다면 노조는 회사가 장악하고 말 것”이라거나 “노조를 회유하고 길들이기 위한 자본의 음모·기획”이라고 강변하며 사태를 피해가기 바빴다. 비장한 각오와 자기 성찰 대신 회사쪽의 노무 관리에 책임을 돌리면서 조직을 옹호하는 사이에 노동조합운동은 더욱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하부영씨는 “국민들이 ‘이게 아니다’라고 지적할 때도 노동운동이 옛날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해왔다”며 “국가의 탄압으로 촉발된 과거의 노동운동 위기와 달리, 지금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스스로 위기가 폭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위기가 폭발한다

기아차 사태는 특히 비정규직 채용 과정에서 노조간부가 돈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비정규직 팔아먹는 정규직 대공장노조’라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기아자동차 노조 안팎의 5개 현장조직 정파들이 제각각 채용과 관련해 회사쪽으로부터 ‘후배들 데려오라’는 명분으로 일정한 채용 몫을 할당받아왔는데, 박홍귀 집행부가 들어선 뒤 현장 계파들의 몫까지 노조로 단일화하면서 문제가 제기돼 결국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사실 대공장에서는 파업이 발생하거나 노사 관계가 불편해지면 막대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사쪽이 알아서 임금 인상 등 물질적 이익을 챙겨주고 노조에 양보해주는 관행이 형성돼 있다. 따라서 노조에는 납품과 관련한 각종 이권 개입 등 유혹이 늘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울산노동자신문 양준석 대표는 “과거의 노조 간부 금품 비리 등 뼈아픈 경험을 쇄신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채 노조가 알량한 권력에 취해서 놀다가 이번 기아차 사태가 터진 것”이라며 “노조가 회사쪽과의 관계에서 위험한 수위를 넘나들어온 게 누적돼 결국 도덕성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하부영씨는 “이미 여러 노조에서 부정부패와 타락의 문제가 불거졌으나 노동운동이 미봉책으로 묻어두고 칼을 대지 못했다”며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건 그만큼 도덕적 우월성이 있을 때 가능한데, 노조가 87년 대투쟁 이후 또 다른 권력으로 등장했지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일은 회피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 1월28일 기아차 노조 광주공장 사무실에서 노조간부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연합)

지난 2월1일 폭력으로 얼룩졌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비정규직 팔아먹지 말라’는 말을 경쟁적으로 외쳐댔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찬성하는 한 대의원이 “비정규직·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가 필요하다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자 당장 여기저기서 “너, 이 새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정규직 양보가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실제로는 말뿐인 구호에 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부영씨는 “일부 정규직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회사와 담합해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공동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 속에는 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위해 여차하면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하자는 묵시적 합의가 숨어 있다”며 노동운동이 집단적 도덕불감증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정규직 임금 인상으로 노동비용이 증가하면 비정규직 활용으로 보상하도록 노동조합이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비정규직을 고용 안정의 방패막이로 활용하면서 비정규직 도입을 묵인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노동운동이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또 다른 가진 자’의 기득권 운동으로 전락할 때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놓치게 되고, 자연히 투쟁의 힘도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하지만, 과연 한국의 대공장 노동조합운동은 ‘진짜 진보세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금속노동조합연맹 조건준 국장은 “힘있는 노조에서 항상 투쟁의 구호는 요란하지만 늘 결과는 조합원만의 임금·복지 향상으로 끝난다. 한국 노동운동이 점차 이익집단 운동으로 협소화되고 있다”며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복지 향상은 다수의 주변부 노동자들의 희생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사업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노동조합 ‘내부’에서는 비정규직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연맹 관계자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노동조합 안으로 받아들일 경우 점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노조를 장악하고 기득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1월27일 취업 비리와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기아차 직원 박아무개씨. (사진. 연합)

노동운동의 조직적·물질적 토대였던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과거에 노조 민주화 세력이었으나, 이제는 ‘배부른 투쟁’ 또는 ‘집단 이기주의에 젖은 운동’이라는 사회적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는 노동운동”이라고 비판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인적·물적 자원을 밀어주고 조직화하고 싸울 수 있게 도와야 하는데, 실제로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비정규직 지원은커녕)명절 때 정규직 조합원들한테 선물 하나 더 주고 잘 봐달라고 아부하고 있다”며 “노조가 노동운동의 지향을 진보적 가치로 결합시키려는 노력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운동은 198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놀랄 정도의 조직력과 전투성을 과시했다. 그러나 투쟁의 성과는 대공장 조직노동자들만의 물질적 이익으로 축적됐고, 노동자 내부의 임금 격차 등 ‘분단’은 더욱 심화됐다. 때로 노동자들이 승리하기도 했으나, 연대가 허물어지고 노동자층도 최상층부와 상층부, 저임금 중소영세 노동자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남대 임영일 교수는 “성장하는 핵심 산업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기 때문에 지표로는 노동운동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듯하지만, 거꾸로 보면 소수 대공장 노동자들만 대표하고 있는 양상”이라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조합원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는 조직노동자가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 파급효과를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소득을 증가시켰으나 지금은 오히려 노동조합이 분배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소득 불평등 개선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득 격차를 낳고 있다는 것인데, 대공장 조합원들이 향유하는 ‘독점적 지대’가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암묵적 착취로 형성되고 이익 배분에서 비정규직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공장 중심의 노동운동은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구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조합원 수 5천명 이상 대규모 노조는 34개(전체 노동조합 수의 0.5%)에 불과하지만, 소속 조합원은 68만명으로 전체 조합원(154만명)의 44%에 달한다. 또 조합원 수 1천명 이상 노동조합은 174개(전체 노동조합 수의 2.8%)이지만, 소속 조합원은 95만5천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무려 61.6%에 달한다.


△ 2004년 6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파업 집회. (사진/ 연합)

노동조합 조직률은 1989년 19.8%를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데 2003년 10.8%로 1965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 중 노동조합조차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2004년 8월 76.4%에 달한다. 정말로 노조가 필요한 다수의 주변부 노동자들은 기득권 운운하기 이전에 노동조합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노조가 있더라도 중소기업은 파업이라도 한번 하면 당장 회사가 문 닫아야 할 판이고, 아예 회사의 지급 능력이 없기 때문에 ‘투쟁’을 외치기조차 어렵다.

정의의 대공장 노조? 착각하지 말라

이렇듯 교섭권과 쟁의권이 소수 대공장 조직노동자들에게 철저하게 독점되고, 이것이 ‘그들만의 기득권’으로 변질되면서 이른바 ‘정의의 칼’이라는 대중운동 상식이 어긋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싸움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노조가 권력화하면서 노동운동이 ‘진정성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대공장 중심 노동조합운동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대공장 노조에 대한 비판이 자칫 ‘더러운 물에 애를 씻다가 애까지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논리로 대공장노조를 여전히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금속노동조합연맹 조건준 국장은 “노동계 내부가 분할된 시대에서 대공장노조가 과거처럼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선봉대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완전한 착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 노조 활동가들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자기 성찰하기보다는 ‘기득권도 투쟁으로 따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적 이익집단의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은 400여명인데 노조 전임자가 아닌데도 일부 대의원들은 작업장에서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 조합원들은 빨간 조끼를 걸친 대의원들이 놀고 먹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한다. 울산노동자신문 양준석 대표는 “현대자동차 대의원들이 초창기 대의원대회 등으로 바쁠 때 노조활동을 위해 작업에서 제외해주곤 했는데, 이것이 관행화돼 아예 일을 안 하는 것으로 굳어지고 회사쪽도 이를 눈감아주고 있다”며 “노조 대의원들은 이것도 투쟁으로 따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2004년 부분파업으로 텅 빈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사진/ 연합)

노동조합의 권력다툼은 선거 과정에서 항상 극적으로 나타난다. 민주노조운동에도 사회 각 영역에 퍼진 줄 세우기와 표를 앞세운 흥정 양상이 그대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 관계자는 “노조 임원선거 때 노동조합을 장악하려고 서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고 줄 세우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선거 몇번 거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정파가 형성돼 조합원들이 서로 분열하고, 선거에서 떨어진 쪽은 칼을 갈고 3년 뒤에 또다시 선거에 나오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사회적 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의 대의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당장의 ‘실리주의’만 판치게 된다. 하부영씨는 “선거에서 조합원이 후보에게 사택 조기 입주를 부탁하고 조·반장 승진까지 개입하는 일도 있다. 아들을 입사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대의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다. 노동계 내부가 얼마나 썩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정치와 똑같은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권력 나눠먹기에서 한치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노동운동이 당면한 위기는 공장 울타리에 갇힌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산별 노조로의 전환이 지체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민주노총 이수봉 교육선전실장은 “총연맹이 운동의 기조를 비정규직 사업으로 잡고 있지만,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사업장마다 회사쪽과 유착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조합원들도 자신들의 물질직 이익만 좇는 ‘전투적 경제주의’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뿌리 깊이 형성된 개별 대공장 노조의 과도한 권력이 기아차의 극단적 취업 비리로 나타난 것”이라며 “현장에 쏠려 있는 권력을 총연맹 등 상급 단체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대기업노조는 특정한 동토의 영역에 웅크리고 앉아 기득권을 붙잡고 있는 노조 할거주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이 고립의 위기를 맞아왔지만 물리적 파괴력이 있어서 그런대로 지금껏 버텨왔으나 이제 내부 개혁을 못하면 망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투쟁력을 어디에 쓸 것이냐

물론 현장 개별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추구 성향이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기는 하다. 경남대 임영일 교수는 “구조조정이 언제 닥칠지 모르고 노조도 방어막이 못 된다는 것을 조합원들이 경험적으로 터득했기 때문에 회사가 잘 돌아갈 때 임금 인상을 따내 최대한 벌어먹고 보자는 의식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조 활동가들도 오직 임금 인상 투쟁에 매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도 조합원 이익이 다른 노동자들의 이익과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할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오히려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에 편승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임금 인상 성과를 따내는 데 매달리고 있다.

노동운동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중요한 동력’이라고 볼 때 노동조합의 힘은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 대기업노조가 그동안 강고한 투쟁 동력을 바탕으로 과거의 정치·경제적 노동자 무권리 상태에서 노동기본권을 쟁취해낸 것도 인정해야 하고, 노동조합의 투쟁력과 힘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또 파업 없이 ‘산업평화’만 추구하는 노동운동 세력이 오히려 노동귀족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투쟁력과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느냐다. 노동조합운동은 갈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된 외로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대공장 조직노동자들만의 운동에 갇힌 채, 비정규직을 포함해 노동자 자신들의 지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쓴소리 더 필요하다”

‘민주냐 어용이냐’가 아니라 ‘연대냐 이권이냐’로 구별할 때

[인터뷰 |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50)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젠 민주냐 어용이냐가 아니라 연대냐 이권이냐로 구별할 때가 됐다”며 “노-노 차별을 없애는 게 노동운동이 갈 길이자 살길”이라고 말했다.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몰매 맞고 있다는 주장이 많은데.

쓴소리는 더 필요하다. 친노조쪽인 한 언론매체도 ‘지금 두들겨맞고 있으니까 우리는 좀 가만있자’고 한다는데, 갑갑하다. 자본과 정부가 더 나쁘다는 논리만 반복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끝내 극복하기 어렵다.

기아차 채용 비리 사태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과거에는 노조가 무슨 말을 해도 사회 정의였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명분과 도덕성이 자동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반민주 정권과 신자유주의와 싸우면서도 너무 깊이 길들여지고 물들어버렸다. 기아차 문제도 돈이면 다, 권력이면 다라는 ‘성찰 없는’ 태도가 어디까지 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 아닌가. 대가로 받은 돈으로 선거자금에 쓰려고 했다던데 돈 쓰면서 정치가 썩어빠지게 된 것과 뭐가 다른가.

회사쪽 매수 놀음이 근본적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본질을 피하는 논리다. 노조는 솔직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조합원과 국민 앞에 ‘우리가 돈과 권력에 눈이 멀었다. 정말 잘못했다’라는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민주노조 정신이 뭐냐. 도덕성, 정의, 약자에 대한 보호 아니냐. 이데올로기 차별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실천으로도 보였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 노동운동이 경제투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사회·정치적으로 일정하게 민주화됐다면 노동운동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노조 지도자들도 우후죽순 노조를 만들기만 했지 내부를 제대로 추스리고 이끌어가는 노하우를 쌓지 못했다. 오죽하면 지부장, 위원장 더 하려고 ‘빠다’(흥정) 짓까지 했겠는가. 조합원에게는 임금 2% 올려주겠으니 날 뽑아달라고 하고, 사용자들과 타협해 2% 올려주면 무분규 선언할 수 있다고 하겠다는 식의 협상을 말한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노동조합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다. 정규직이 가장 윗자리에서 온갖 권리를 누리는데 그것이 어디서 오나. 비정규직이 창출한 이익이 가는 거다. 그런데 자기들은 최고 대우 받는 것에 매달리면서 정작 비정규직을 외면한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지나. 정규직이 파업에 들어가면 하청업체의 파견노동자를 통해서 라인을 돌릴 수 있다. 눈앞의 이익을 끌어올리는 데 매달려 더 크고 심각해질 문제를 못 보는 거다. 정규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과 같이 가야 한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그들만의 단협!

병원비·장학제도에서 각종 혜택 보는 대공장노조 조합원들, 무상의료·교육에 관심 생길까?

프랑스는 노조조직률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10%에 불과해도 조직화되지 못한 대다수 사업장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이하 단협)을 적용받는다. 노동조합의 포괄 범위가 산업별·지역별로 돼 있고 노사간에 맺어진 협약이 교섭 당사자 이외의 동종 업종과 지역으로 확장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직노동자들에게만 단협이 적용된다. 단협 내용이 복잡하고 포괄적이지만 모두 ‘그들만의 단협’ 조항들이다.

대공장노조의 2004년 단협을 보면, 병원비 항목의 경우 기아차는 조합원과 가족의 입원진료비가 50만원 초과시 초과분 전액을 지원하고 외래진료는 월 10만원을 초과하는 본인 부담금 중 본인은 전액, 가족은 반액을 지원한다. 현대차는 입원진료시 월 10만원을 초과하면 본인은 초과 금액 전액을, 가족은 반액을 지원하고 외래진료는 본인은 전액, 가족은 반액을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학제도 항목을 보면 현대차는 3년 이상 근속 조합원의 자녀에게 중·고교 전 자녀, 대학교는 2자녀에게 재학 중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고 취학 전 조합원 자녀에게는 1년간 분기별로 10만원씩 유아교육비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또 현대차는 조합원의 노후 안정을 위해 개인연금 월 2만원을 10년간 납부하도록 하고 있고, 현대중공업도 개인연금을 월 2만원씩 퇴직시까지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핵심사업으로 결의하더라도 대공장 노조는 이미 단협으로 의료와 교육을 전폭적으로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의제에 총력을 기울일 리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