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에 나선 1500여명의 유신과 5 · 6공 핵심인사들, 그들을 정말 국가원로로 대접할 것인가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원로들이 역사적으로 참 큰일을 하셨다. 일치단결하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 이번 원로의 시국성명을 계기로 친북·반미 세력들이 더 장성하지 못하도록 활동을 강화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원로들이 계속 투쟁해달라”
9월1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702-2번지 삼성제일빌딩 18층. 경호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는 각종 보수단체들의 상설협의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운영위원장 서정갑)의 대표, 운영위원, 자문위원 20여명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른바 ‘원로’의 이름으로 결행된 ‘9월9일 시국선언’을 발전시켜 대한민국 곳곳에 퍼져 있는 친북·반미주의자들과 당당하게 맞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 지난 9월9일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거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구호를 외치는 이른바 ‘원로’들(맨위,박항구기자). 이틀 뒤 서울 강남에서 열린 ‘반핵반김국민협의회’에 참석한 보수단체 대표자들(위,김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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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미 공산화됐다?
이보다 앞선 9월10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 주요당직자회의장. ‘원로 시국성명’을 근거로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드라이브에 반격을 가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국보법 폐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1천여명의 원로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비판했지만 (여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면서 “국민의 80%를 반민주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라고 성토했다. 한나라당은 결국 9월13일 당에 ‘국가수호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이규택 의원)를 결성하고, 보수단체 및 원로들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장외투쟁을 벌이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벼르고 나섰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원로들’과 연계해 여권을 상대로 전면적인 이념투쟁을 벌일 기세다.
잘못 가고 있는 나라 꼴을 보다 못한 분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전직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군 장성 등 무려 1500여명이 지난 9월9일 ‘원로’라는 이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온 나라가 그 파문에 휩싸인 듯 어수선하다.
이들의 주장과 요구는 시국성명이라는 형식보다 더 파격적인 만큼 어느 정도 파장은 예상됐던 일이다. 이들은 “지금 이 나라는 ‘386 세대라고 명명한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며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생각하는 국민들은 대열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사람들 사이에는 ‘대한민국은 이미 공산화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수도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 등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등의 일방적 추진 중단 △‘6·15 남북공동선언’ 파기 등을 요구했다.
‘보수언론’은 이들의 주장과 활동상을 연일 대서특필하며 “건국 후 최대 규모의 원로 시국선언”이라고 잔뜩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9월13일치 사설을 통해 이들의 시국선언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향해 “누구 땀으로 밥을 먹고 자라나고 누가 애써 일한 덕에 10여년씩 무위도식하며 정가를 배회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물으며 “원로를 비웃는 막된 행동거지 어디서 배웠나”라고 맹렬히 꾸짖었다.
하지만 이들이 왜 현 시점에서 시국선언을 했는지, 유신 정권과 군사독재 시절 양심적 지식인의 저항 수단이던 ‘시국선언’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사회적 존경과 신망의 상징어인 ‘원로’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만으로 주장을 정당화할 정도로 참가자들이 떳떳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시국선언은 한나라당이 원내 다수를 점한 16대 국회에서 통과된 탄핵의 고비를 넘어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몇몇 보수 원로들의 절망과 정서적 반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시국선언의 도화선은 지난 5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이었다. 노 대통령은 5월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기각 결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회복한 지 13일 만에 이뤄진 이 특강에서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합리적 보수, 따듯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갖다놔도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고, 기득권의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탄핵과 하야를 갈구했던 보수 진영 전체에 맹공을 퍼부었다.

△ 보수언론은 시국선언에 참여한 ‘원로’들의 주장과 활동상을 연일 대서특필하며 “건국 후 최대 규모의 원로 시국선언”이라고 잔뜩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진/ 박항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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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 핵심인사 9명이 첫 회동
이 발언은 자유시민연대, 주권찾기시민모임,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30여개 보수 시민단체들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촉구 국민연대’를 만들어 탄핵 가결을 촉구했던 보수 인사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헌재의 기각 판결로 상실감에 빠져 있던 이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보수세력 전체를 죽이려는 조직적 음모로 받아들였고, 이동복 전 의원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 전 의원은 “노 대통령의 인식이 젊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며 주변 인사들을 상대로 대응책 마련을 촉구한 것이다. 공감하는 인사들이 하나둘 늘었고, 6월23일 드디어 9명의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동복 전 의원을 비롯해 김동길 교수, 김성은·이종구 전 국방장관, 채명신 전 파월한국군사령관, 이상훈 재향군인회장, 오자복 성우회장, 안응모 전 내무장관, 유기남 참전단체연합회장이었다.

△ ‘반핵반김국민협의회’에 힘을 보태준 황장엽씨와 이 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서정갑 예비역 대령(왼쪽부터). (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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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인사는 “대중집회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새로운 투쟁 방향이 모색됐다”고 전했다. 몇몇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이제야말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대주주로서 ‘주주권’을 발동할 때가 된 것 아니냐” “이제라도 사회의 어른들이 바른 얘기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고, 결국 원로 시국성명을 추진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들이 본격적인 세 규합에 나선 것은 8월 초로 알려졌다. 이동복 전 의원이 작성한 시국선언 취지문 초안을 놓고 10여 차례 내부 회의와 토론을 거쳐 문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안이 완성되자 전직 총리, 국회의장, 장관 등 6천여명의 보수인사들을 상대로 자필서명 작업에 들어갔다. 취지문 발송, 서명자 확보 등의 실무는 유기남 참전단체연합회장이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자유시민연대가 도맡았다. 자유시민연대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1일 각계에 흩어진 보수단체를 반핵반김국민협의회라는 상설기구로 결집할 것을 주창했고, 이후 6·25 한국전쟁 기념일과 8·15 광복절 때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집회를 주도해온 대표적인 보수단체다. 이 단체의 김구부 사무총장은 “시국이 심상찮다고 느낀 원로들이 8월 초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고 결론을 냈고, 자유시민연대는 그분들의 심부름을 받아 시국선언 동참자들의 자필서명을 받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명 동참자가 1천여명을 넘어서고, 국보법 폐지 논쟁이 거세지자 이동복 전 의원 주도로 시국선언문을 최종 작성해 지난 9월9일 시국성명을 전격 발표했다.
서명에 참여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번 선언에는 주도자나 핵심 조직도 없으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원로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충정에서 모였다고 주장했다. 서명에 참석한 김현욱 전 의원은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훼손하고, 사회 곳곳에 친북좌파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보다 못한 원로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언 참석자들의 인적 구성을 분석해보면 사실상 유신 정권과 5·6공 군사독재에 조력했던 핵심 인사들의 집단적·조직적 총궐기 성격이 강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데…
일단 9월9일 선언에 동참한 ‘원로’의 리더 격인 7명의 전직 국무총리 가운데 강영훈·남덕우·노재봉·신현확·현승종 전 총리 등 5명이 유신 정권과 5·6공 정권의 총리였다. 특히 남덕우 전 총리는 1969∼78년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면서 유신 정권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그는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모태가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위원을 맡은 데 이어, 1980년 9월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첫 총리로 기용된 인물이다. 노재봉 전 총리는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거쳐, 총리에 기용된 정권의 실세였다. 그가 총리로 있던 1991년 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해 공권력을 동원한 진압이 횡횡한 ‘공안 정국’이 조성됐고, 결국 사복경찰진압조(일명 백골단) 4명이 명지대 학생 강경대씨를 쇠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장관급 인사들도 유신 정권과 5·6공의 핵심들이 주축이다. 59명의 전직 장관 출신 서명자들 중 무려 49명이 이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장관직을 수행했다. 구체적으로 유신 정권 17명, 전두환 정권 15명, 노태우 정권 17명이다.
국회의장 5명을 포함한 136명의 전직 국회의원들도 선언에 이름 석자를 올렸지만 역시 그 성격이 다르지 않다. 유신 정권을 떠받친 공화당과 유정회 출신 의원들이 30명이다. 특히 유신헌법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유정회’ 출신 의원도 14명이나 서명에 참여했다. 유정회는 사실상 박정희의 영구 집권을 위해 의회정치의 기본을 무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역시 쿠테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창당한 민주정의당 출신은 37명, 노태우 정권 당시 ‘3당 합당’으로 생겨난 민자당 출신은 11명이다.
독재 정권 출신이라는 정치 이력도 이력이지만, “대한민국을 위기로부터 구출하겠다”고 나서기에는 도덕적 흠결이 많은 상당수 인물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고위 공직자 재산 파동 때 부동산 투기와 호화 별장 구입이 문제가 돼 정계를 떠났다. 정내혁 전 국회의장도 민정당 대표이던 1984년 6월 부정 축재 의혹으로 공직을 사퇴했고, 35억원의 거액을 국가에 헌납하면서 사법처리를 피했다.
비리의 주역, 쿠데타의 주역
시국선언을 주도해온 이상훈·이종구 두 전직 국방장관도 직무와 관련한 비리로 구속됐다. 노태우 정권 초반(1988~90)의 이상훈 전 장관은 군납과 관련해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노 정권 말기(1990~91)의 이종구 전 장관은 율곡사업과 관련해 진로건설 등 업체로부터 1억8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 김영삼 정권 초반(1994~96)의 이양호 전 국방장관도 경전투 헬기사업과 관련해 대우중공업에서 1억5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장관으로 재직 당시 군 통신감청 정찰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납품업체 선정 로비를 벌이던 린다 김에게 연애편지를 보낸 게 뒤늦게 드러나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력형 비리의 주역들도 있다. 6·10 항쟁이 한창인 1987년 전두환 정권을 유지하는 핵심 권부였던 안무혁 전 안기부장은 전 대통령이 재벌 총수로부터 6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특히 1982년 국세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이원조 전 의원과 함께 재벌 명단을 작성해 돈을 수금했다고 당시 수사기관이 밝혔다.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도 동서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6공 경제계의 대부’로 불리는 실세로 군림했다. 그 역시 1996년 노태우 대통령의 수천억원 비자금 사건에 개입한 혐의(뇌물방조)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 외에도 많은 인사들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 막강한 권력을 남용해 문제를 일으켰다<상자기사 참조>.
신망과 존경의 대상인 ‘원로’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인사들이 서명에 참여하는 문제는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도 옥석을 가리자는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인 한 보수단체 대표는 “과거 권력기관에서 권력을 남용했거나 각종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서명에 동참하는 문제를 두고 보수단체 일각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다”면서 “순수하고 존경받는 원로들만으로 서명을 이끌었다면 386들에게 시빗거리도 주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명을 주도한 원로들은 권위주의 정권 핵심 인사들의 편중, 상당수 서명 참석자의 도덕성 결여 등 문제제기에 개의치 않고 시국선언의 열기를 확산해가겠다는 태도다. 서정갑 국민협의회 위원장은 “시국선언 참석자 가운데 순수성이 결여된 사람이 있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지만, 친북·좌익 세력과 일대 결전을 벌이는 중대한 국면인 만큼 과거는 덮고 모든 자유 진영이 대동단결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오자복 · 채명신 · 이철승씨 의장단에 추가
일단 지난 9월11일 열린 반핵반김국민협의회에 참여한 보수단체의 대표자 20여명은 9월9일 원로 성명 발표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온 오자복 성우회 회장,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이철승 자유민주총연맹 총재를 새로 의장단에 추대해 힘을 보태줬다. 10월3일에는 보수단체들이 총궐기해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기로 했다. 또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을 중심으로 인터넷 공간을 근거지로 9월18일 보수세력의 총궐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번지고 있는 만큼 이 집회에 결집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보수단체의 이런 지원 및 결집 움직임과 별도로 시국성명을 주도한 보수 인사들은 앞으로 국보법 폐지 반대 길거리 서명 등으로 활동폭을 확대하고, 모든 국민이 참여해 시간 제한 없이 구국의 방안을 모색하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로 했다. 또 서명자 중심의 별도 단체를 결성하고, 지방순회 강연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원로’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에 나선 이들을 정말 국가의 원로로 대접할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족쇄를 채우려는 낡은 세력의 총궐기로 볼 것인가. 그 판단과 선택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