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조계종 사형제도폐지위원장인 진관 스님이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참혹한 범행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사형제도를 지지하고, 끔찍한 사형집행 장면을 본 사람은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교정업무 관계자들이 사형제도 관련해 하는 이야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일반인들은 피가 흐르고 처참한 범행 모습과 독기가 바짝 오른 범인들의 살벌한 모습만을 기억한다. 이들이 재판을 받고 수형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바뀌었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사형수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니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여길 뿐이다”고 말했다.

전혀 다르게 기억되는 ‘지존파’

사형수들은 처음에는 절망감에 빠지지만 대부분 종교에 귀의해 가장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 9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지존파 사건만 해도 그렇다. 서울구치소 기독교 책임목사를 맡아 20년째 사형수들을 교화하고 있는 문장식 목사가 기억하는 지존파 두목 김기환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김기환은 부하들이 모두 종교에 귀의한 뒤에도 스스로 악마라고 부르다가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름 앞두고 영세를 받았다. 그는 깊게 참회했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영치금을 맡겼고 자신의 장기는 물론 시체를 의과대 해부실습용으로 기증했다.”

문 목사는 당시 지존파의 사형집행을 지켜본 검사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지존파였나’며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지금까지 71명의 사형수 집행을 지켜봤고 유언들도 모아뒀다. 이런 문 목사가 내린 결론은 사형제도는 ‘관제살인’이란 것이다.

교정사목 활동을 펴온 조성애 수녀도 “누가 죄를 저질렀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그를 비난하고 저주한다. 비록 죄를 범하긴 했지만 그들이 짐승이 아닌 회개와 개선의 가능성을 지닌 인간이란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죄인에게 사형선고나 집행 사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조 수녀는 “종교에 귀의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고 새롭게 변화되어 살아가는 사형수들이 교수형이란 제도적 관행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씩 생명이 박탈될 때 허탈감과 가슴저림이 엄습했다”며 “종교 교육과 상담을 해온 게 ‘결국 사형수들에게 곱게 잘 죽었다는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하는 회한이 일었다”고 말했다.

사형폐지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감정과 여론이다. 지난 10월30일 민주당 정대철 의원을 대표로 여야 의원 155명이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형법 등 각종 법에서 규정한 형벌 중 사형을 없애는 것을 뼈대로 하는 이 법안은 사형 대신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를 선고할 경우 범죄의 종류나 죄질 등에 따라 복역 뒤 15년이 지나지 않으면 가석방이나 사면, 감형 등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선고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재적 과반수인 137명을 휠씬 넘긴 이 법률안은 상식적으로 본회의를 곧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국회 법사위 심의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강력범죄 예방 효능 입증 안 돼

검사 출신이 대부분이 법사위 위원들이 사형제 폐지에 부정적이고 국민의 법 감정 역시 사형제 폐지에 호의적이지 않는 편이다. 국회 법사위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미흡하다”며 심의를 미루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00년 실시한 사형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3%가 존속을 바란 반면 45.3%가 폐지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형폐지운동은 1989년 5월30일에 창립된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와 기독교·불교·천주교 등에서 주도하고 있다. 사형폐지운동을 벌이는 쪽은 ‘사형수들을 풀어주자는 것이냐’는 식의 국민의 감정적인 반발에 부딪혀 힘들어한다.

이영우 신부는 “죄는 죄대로 처벌하되 사람은 죽이지 말자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무기징역을 받아 10년 정도 살고 나올 수 있다고 불안해하는데 15년이나 20년 이상 복역한 사람들에게만 감형의 기회를 주면 충분한 처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사형지지론자는 이 같은 무기징역이나 종신형이 사형수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차라리 사형으로 이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다음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강력범죄의 예방책으로 사형제의 효능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지난 4월 보고서를 내어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에 대한 가장 최근의 조사는 1988년과 1996년 두 차례 유엔에 의해 실시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형집행이 종신형보다 더욱 뛰어난 예방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데 실패하였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와 범죄율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형제도의 폐지가 범죄율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캐나다의 경우 살인율이 가장 높았던 1975년,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전 살인이 인구 10만명당 3.09명이었던 게 1980년에 2.41명으로 감소했다. 캐나다의 사형제도는 1976년 폐지됐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뒤 23년이 지난 1999년에는 1.76명으로 낮아졌는데 이는 1975년에 비하면 43%나 줄어든 것이다.

사형집행 는다고 살인건수 안 준다

미국의 사형집행건수와 살인건수를 비교해도, 집행건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인구 10만명당 살인건수는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쪽이 제기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재판부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 가능성이다. 교정활동에 참여하는 성직자들에 따르면 사형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억울하다’거나 ‘지은 죄에 비해 무거운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면위에 따르면 197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서 99명의 사형수가 나중에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다. 이 가운데는 일부는 사형을 선고받고 수년이 지난 집행이 임박해 풀려나기도 했다. 이들은 검찰이나 경찰의 실수, 믿을 수 없는 목격자의 진술이나 자백, 그리고 변론의 부족으로 오판을 받았다. 미국 일리노이주는 2000년 1월에 사형집행에 대한 모라토리엄(유보)을 선언했는데, 이는 사형수에 대한 재판이 오판이었음이 밝혀짐에 따른 조처였다.

지난 4월 현재 사형제도 폐지국이 111개국이고,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84개국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법률로 사형이 존재하더라도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본다.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은 “김대중 정부가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사형제도를 폐지하지는 않되 집행은 미루는 식으로 타협을 했다”며 “다음 정부가 사형제도를 폐지하든가 최소한 임기 중에 집행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 국가 반열에 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