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1.10.24(수) 제381호 |
[표지이야기] 물먹고 폭탄주 먹는다? 정치권 입김에 따른 편중인사… 힘없고 빽없고 줄없는 검사들이 느껴야 하는 좌절감
조선시대에 능참봉(陵參奉)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왕릉 등을 지키던 임무를 맡았던 관리였다. 검찰조직에서는 이를 빗대어 대통령의 고향을 관할하는 지청장을 ‘능참봉’이라고 부른다. 능참봉은 시쳇말로 ‘잘 나가는’ 검사들 몫이다. 이 때문에 능참봉 얘기는 권력교체의 빛과 그림자가 검찰에 어떤 방식으로 투영되는지를 보여준다. 5공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합천을 관할하는 거창지청장이, 문민정부 때는 거제도를 관할하는 통영지청장이 능참봉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그 자리를 해남지청장이 대신했다.
탄탄대로 걸은 ‘능참봉’들
1982년 처음 문을 연 전남 해남지청의 초대지청장은 신광옥 법무부 차관이다. 신 차관은 동기생 가운데 공안과 특수를 두루 섭렵한 선두그룹에 속하는 검사였다. 그러나 문민정부 말기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교체 뒤 1순위로 검사장에 승진하면서 다른 초임 검사장들처럼 고등검찰청 차장으로 가는 대신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맡았다. 파격적이었다. 2대 지청장은 대검 강력부장과 중수부장을 거친 김대웅 서울지검장이다. 그 이후 해남지청장을 거친 검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능참봉들이 얼마나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승규 광주고검장(3대)→김규섭 대검 강력부장(5대)→박주선 민주당 의원(6대)→명동성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9대)→문성우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차장(10대)→이귀남 서울지검 형사1부장(11대)→최진안 수원지검 평택지청장(12대)→박철준 서울지검 공안2부장(13대) 등은 현 정부 들어 가장 잘 나가는 검사들이다. 한 호남 출신 검찰 간부는 “해남지청장은 호남 출신들 가운데 능력이 뛰어난 검사들이 발령나는 곳이었던 만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신승남 현 검찰총장은 현 정부 들어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검 차장 등을 거치면서 경쟁상대가 없는 검찰총장 후보였다. 그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가끔 자신이 고검 검사로 있을 때를 회상하곤 했다. “서울고검에 있으면서 승진에서 연속 누락됐을 때 참지 못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었겠는가.” 고검은 항고 여부를 가려 지검 검사들에게 재기수사명령을 내리는 등 검찰권의 균형있는 행사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사에서 밀려난 이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면 과연 고검에 있는 검사들의 출신지역별 분포는 어떤가.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전국 5개 고검 검사 70여명 가운데 지난 6월 정기인사에서 전보된 검사들을 포함해 절반이 넘는 검사들이 영남 출신이다. 호남 출신은 10명 미만이다. 6월 인사에서 고검으로 전보된 52명만을 놓고봐도 그렇다. 국정원·헌법재판소·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국가기관에 파견된 5명을 뺀 47명의 출신지역을 살펴보면 영남 출신은 21명인 데 비해 호남 출신은 5명, 충청 출신은 9명, 기타 지역은 12명이다. 누가 봐도 편중인사의 혐의를 쉽게 벗을 수 없는 결과다.
검찰의 독특한 ‘전진인사’방식
검찰 안에서는 “인사 앞에 장사 없다”거나 “인사는 검사에게 쥐약과 같다”는 식의 내부 격언이 있다. 인사가 검사를 평가하는 유일무이하고도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인사는 ‘전진인사’라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요직과 한직이 따로 정해져 있고, 모든 보직에 나름대로의 엄격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예를 들어 소규모 지청 중에는 여주지청장이나 서산지청장을 가장 우선순위로 친다. 동기들 가운데 가장 선두그룹이 그곳을 거쳐가는 방식으로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이 형성된다. 그런 식의 분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검사장 승진할 인물들을 간추리는 방식이다. 한두번 인사에서 밀리면 다시 회복하기 힘든 것이 바로 이 전진인사의 특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인사시스템을 망치는 것은, 바로 정치권의 인사 입김에 의한 원칙없는 편중인사라고 검사들은 입을 모은다. 고위간부급 보직 역시 요직이 정해져 있다. 가장 전통적 요직으로 우선 ‘빅4’가 있다. 서울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 그것이다. 검사장이 된 검찰 간부들이 반드시 거치고 싶어하는 보직들이다. 검찰총장이 되려면 이 4개 보직 가운데 한두개는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한 등급 아래의 요직들로는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1과장, 특수 수사통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검 수사기획관과 중수부 1·2·3과장, 서울지검 특수1·2·3부장, 공안통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검 공안기획관 공안 1·2·3과장 및 서울지검 공안 1·2부장 등이 있다. <한겨레21>은 김대중 정부 출범 뒤 27개의 검찰 요직을 거쳐간 검사 116명의 출신지역별 비율을 살펴봤다(그래픽 참조). 호남이 압도적으로 많은 36.2%를 차지했고, 서울·경기 21.6%, 충청 16.4%, 대구·경북 15.5%, 부산·경남 7.8%순이었다. 전체 검사들의 출신지역별 분포비율은 법무부가 공개하지 않아 비교할 수 없지만, 전체 검사 수와 요직을 차지한 비율은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력풀이 많지 않은 호남 검사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그만큼 편중이 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난 정권들에서 행해진 편중인사를 시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검사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정권이 자기 사람만을 믿을 수 있다고 보고 요직 중의 요직에는 반드시 우리 지역 사람만을 앉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래된 피해의식도 인사왜곡의 중요한 원인이다. 현 정부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공안검사라는 한 부장검사는 이번 정권 들어 공안의 요직을 다 거쳐갔다. 서울지검 공안1부 부부장 검사→대검 공안2과장→서울지검 공안2부장 등을 거쳤다. 그는 대선 시기 서울지검 공안1부장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공안요직 가운데 특히 대검 공안2과장과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선거 담당 주무검사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높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와 사법연수원 동기이며 이전 정권의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는 새 정부 들어 고검쪽으로 ‘날아다니고’ 있다. 이들과 같은 공안검사들이 정권의 향배에 따라 소모품으로 쓰인다는 비아냥섞인 분석도 나오는 것은 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한편 지난 정권에서는 같은 지역이라도 능력을 가려 요직에 보냈는데 그 정도의 검증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검찰 관계자들도 있다. 즉, TK시대에는 진골-6두품 논쟁이 있었고, 문민정부 시절에는 광어·도다리 논쟁이 있을 정도로 특정 지역 안에서도 요직에 진출하는 검사와 그렇지 못한 검사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 ‘노’하면 못되는 거야”
이와 관련해 99년 6월 김정길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검사인사에 대해 “분에 넘치는 자리에 가는 것은 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일부 검사들이 자신의 능력과 경력을 생각하지 않고 요직을 탐내는 상황을 빗댄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용호 게이트에서 검찰 간부들이 문제된 것이 결국은 검사인사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지검 한 평검사의 분석이다. “특수부 수사라는 것은 경험이 있는 검사가 해야 뒤탈이 없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2부장이었던 이덕선 부장이나 임양운 3차장 검사 둘 다 특수수사 경험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도대체 3차장 검사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대검 중수부도 몸을 사리는 최근의 세태에 비춰보면 대한민국에서 불거지는 굵직굵직한 비리사건이나 의혹사건은 모두 3차장 검사를 거치게 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중심을 잡아주는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여당의 한 실세가 그를 밀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바람에 휘둘린 검찰인사의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난 셈이다.” 검찰인사의 정치적 성격은 진정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진태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의 진정인과의 전화통화 녹취록에서도 일부 드러난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 지금 지청장하고 나는 다음 인사란 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거기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잖아. 그지? 맞지. 정치권에서 끝까지 ‘노’ 하면 검사장 못 되는 거야.” 현 정부가 검찰인사에서 그나마 긍정적 평가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신공안정책을 추진하면서 구공안 검사들이 구축해놓은 인맥을 일부 해체한 데 있다. 그나마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 사건 이후 구공안 검사들이 상당히 복귀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특수수사 분야 등 검사들의 전문보직을 꾸준히 이어주게 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역편중 인사경향에 밀려버린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검증된 특수수사통인 안대희 서울고검 형사부장은 대검 수사기획관이나 서울지검 3차장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검사 청와대 파견문제도 해결돼야
검찰인사는 앞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체제로 돌입했다. 올해 부부장에 승진한 사법시험 28회(연수원 18기)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검사로 남아 있는 동기생 54명 가운데 직전 인사에서 단독지청장으로 나간 이는 16명뿐이다. 단독지청장 임명 여부는 검사 임관 11년차인 이들에게 검사생활에 대한 중간평가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3∼4년 뒤 대검이나 법무부 과장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또 절반에 해당하는 10명 안팎의 검사들만이 검사장 승진 교두보인 서울지검 부장에 입성할 수 있다. 또 4∼5년이 지나면 불과 5∼6명만이 ‘검찰의 별’이라고 하는 검사장 자리에 오른다. 대략 10명 가운데 한명만이 별을 다는 셈이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인사의 주된 요인이 출신지역이나 정치권 인사와의 연줄, 또는 검찰 수뇌부와의 인연 등이라면 평검사들이 느끼는 불만은 상상하기 어렵다. 초고속 승진의 배경이 검찰 고위간부와 종교적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라거나, 같이 근무할 당시 극진히 모신 이후로 승승장구한다는 식의 얘기는 실력으로 승부하려는 평검사들의 마음에 멍을 남긴다.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힘없고 빽없고 줄없는 검사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사실상 3번만 물먹으면 아웃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집권세력과 검찰의 인적 유대를 구조화시키는 구실을 하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문제도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이와 함께 1년마다 실시돼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인사속도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몇년을 한 분야 수사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승진에는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또 검찰조직 관료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검사들의 지적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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