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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양민학살 현지조사, 불발로 끝나” 미군쪽 비밀보고서에 등장하는 한국군과 한국 정부관계자들의 기억
먼저 70년 1월 당시 육군 합참 작전참모부장 김여림 준장(74·38사단장 역임). 주한미국대사관이 1월23일 윌리엄 로저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는, 그가 1월22일 한국해병의 잔혹행위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출발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는 “출국하려 했으나 불발로 끝났다”고 말했다. “당시 임충식 국방부 장관이 월남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양민학살’ 문제 때문이라는 걸 짐작했다. 사흘 뒤쯤 여권수속을 밟고 있는데 취소명령이 떨어졌다. 한-미간에 문제가 해결됐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문제가 국회에서 논란이 됐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에 앞서 70년 1월13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또 하나의 전문에는 ‘외무부 김 국장’이 등장한다. 이 전문에 따르면 ‘김 국장’은 “한국정부의 고위관료들이 (한국군의 잔혹행위) 의혹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지만 상세한 정보를 입수하기 전에는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이 확인한 그의 실명은 김정태(74·주포르투갈, 인도 대사 등 역임)씨. 그러나 그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68년 8월5일부터 70년 1월21일까지 베트남에서 해병제2여단장을 역임했던 이동호 준장(74·금오공대 학장 역임)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쪽 보고서에는 그가 69년 4월15일 푹미사건에 대한 한-미-월 합동조사반의 조사결과에 직접 사인한 서류까지 나온다. 하지만 그는 한-미-월 합동조사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부인했다. 당시 합동조사반에 직접 참여했던 해병제2여단 민사참모 이영주(70) 소령은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냈다. “합동조사반이 구성된 건 사실이었다. 헬기를 타고 미군·월남군 장교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가 함께 조사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고 좋게 끝났다.” 그는 “당시 피해를 당한 마을이 미군 기갑부대의 자매마을이었으며, 마을이 공격당하자 미군들이 흥분해서 찾아와 따졌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4명 사망, 12명 부상’의 보고서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이 몇 군데 파손됐던 것으로 안다.” 책임자를 징계하기로 한 ‘권고사항’과 관련해, 구체적인 징계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68년 2월12일 퐁니·퐁넛사건 당시 해병제2여단장이었던 김연상 준장(74·해병대 사령관 역임). 미군은 보고서에서, 그가 이 사건 때문에 해임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후임 이동호 여단장은 이 부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코멘트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 체류중이라 접촉은 불가능했다. 지난 봄 그는 <한겨레21>이 퐁니·퐁넛사건을 취재할 당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말할 가치를 못 느낀다. 군인은 말이 없다.” 고경태 기자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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