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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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중남미 대륙 혁명’이란 야심을 품고 쿠바를 떠났던 혁명가 에르네스 토 체 게바라가 지난 7월12일 31년 만에 유골이 되어 쿠바 수도 아바나로 돌아왔다.
1967년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활동 도중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시신은 지난 6월28일 볼리비아 수도 산타크루스에서 2백40㎞ 떨어진 발레그란데 공항 주변에서 7구의 다른 유골과 함께 발굴됐다. 70년대 이 후 일본 적군파 등 세계 극좌 테러단체 청년들로부터 우상으로 추앙받던 체 게바라의 유골은 곧 비상한 관심을 끌면서 아르헨티나·쿠바·볼리비 아 전문가들에 의해 정밀 감식됐다. 그 결과 쿠바 출신 게릴라로 신원이 밝혀진 다른 3구의 유해와 함께 쿠바로 송환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의사로 중남미 일대를 방랑하던 체 게바라는 멕시코에 망명중이던 피델 카스트로와 의기투합해 1958년 쿠바 혁명에 가담하면서 게릴라로 혁명에 몸을 던졌다.
쿠바혁명 성공 직후 그는 카스트로의 천거로 산업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등 요직에 앉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의식 개혁’을 도모한다며 장관 의 몸으로 카메라 앞에서 손수레를 끄는 등의 무리한 사회주의 정책 때문 에 체 게바라는 쿠바 지도부 내에서 잦은 논쟁을 일으켰으며, 오늘날 “ 쿠바 경제를 망친 장본인 중 하나”란 비판도 받고 있다.
결국 그는 쿠바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엮은 자신의 ‘게릴라 전술’ 이 론을 중남미에 퍼뜨려 좌익운동의 새로운 일가를 이루겠다는 야심을 품고 쿠바를 떠났다. 그러나 1966년 볼리비아에 도착한 체 게바라는 그곳에서 도 “조건이 성숙지 않았다”는 현지 공산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게릴라 전술을 고집하다가, 67년 서부 산악지대에서 토벌군에게 포로로 잡혀 11월9일 총살됐다. 당시 토벌군은 체 게바라가 사살됐다는 증거로 시신에서 손을 잘라 쿠바로 보냈는데, 이 덕분에 지난 6월 발굴된 손뼈 없는 유해가 그의 것으로 쉽게 판명될 수 있었다.
13일 아바나에서 거행된 체 게바라의 유해 송환 기념식에서 그의 딸 알리 에다는 “오늘 우린 그들의 시신을 맞이하지만, 그들은 패배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원히 젊음을 간직한 영웅으로 돌아왔다”고 말했 다.
임민 기자/ 한겨레 국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