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1997년07월10일 제 165호 한겨레21

UFO, 환상인가 진실인가

UFO(미확인 비행물체)는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자극한다. “수만광년 떨어진 아득한 우주 저쪽에서 외계인들이 빛을 앞질러 달리는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를 찾아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기하급 수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UFO에 대한 ‘믿음’과 관계없이 주류 과학계는 UFO의 존재를 인정치 않고 있다. 자연현상에 대한 착각이거나 집단무의식 에서 비롯된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외계인으로 보이는’ 시체의 진상

지난 6월24일 미 공군은 전세계적으로 UFO현상을 확산시킨 결정적 계기였 던 ‘로스웰사건’에 대한 최종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로스웰 보고서: 사건 종결>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지난 1947년 7월 미국 뉴멕시코 주의 작은 마을 로스웰 부근에 비행접시가 추락했으며, 외계인 사체 4구 를 미 공군이 수거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다”는 UFO연구가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미 공군은 워싱턴의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한 뒤 “UFO가 존재한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 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UFO는 없다’는 것이다.

UFO현상의 진원지가 된 로스웰 사건은 꼭 50년 전인 1947년 7월7일 로스 웰의 한 목장주인이 굉음과 함께 추락한 비행물체와 “외계인으로 보이는 ” 시체 4구를 ‘목격’한 데서 비롯됐다. 신고를 받은 인근의 미 육군 항공기지는 현장에서 비행물체의 잔해를 수습하고 사체를 군병원으로 옮 긴 뒤 추락물체가 “비행접시(flying disc)”라고 발표했으나 수시간 뒤 공군에 의해 “기상관측용 기구”로 정정했다. 이후 이 사건은 해프닝으 로 끝난 듯했다. 그러나 1987년 6월 영국의 UFO전문가 티모시 굿이 “해 리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MJ-12’라는 암호명으로 극비리에 설 치된 정부 고위 위원회가 로스웰의 외계인 시체 조사를 지시한 뒤 이를 은폐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어 19 95년 8월에는 영국인 영화제작자 레이 산틸리가 로스웰 사건 당시 외계인 사체를 해부하는 장면이라며 낡은 필름을 공개해 전세계인을 경악시켰다. 이 필름은 한국방송공사를 통해 방영돼 국내에도 UFO에 대한 관심을 증폭 시켰다.

미 공군의 이번 보고서는 한마디로 이 모든 것이 착각에 의한 오해이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미 공군은 우선 당시 로스웰 인근의 사막지역에서는 소련의 미사일 발사 와 핵실험을 탐지하려는 극비군사계획인 ‘모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상관측 기구(氣球)를 이용한 음향탐지 실험이 진행됐던 사실을 처음으 로 공식 확인했다. 이때 사용된 장비는 1백85미터 상공을 비행하는 기구 와 은빛의 반사레이더,기타 음향탐지 기구들이었다.

미 공군은 또 이 기구에는 공중 추락시 사람의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를 실험하기 위해 사람 크기의 인체 모형을 탑재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지난 30여년 동안 이런 기구가 약 2천5백 개 이상 띄워졌는데, 그중 상당수가 일반인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물체들인 실험장비들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많은 수의 모형인간이 실험통 제구역 밖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공군은 바로 이런 “은빛”의 물체들 과 추락한 모형인간의 잔해들이 UFO와 외계인에 대한 상상력을 부추겼다 고 단정했다.


공군 발표, 시청자 80%가 불신

한편 외계인 사체를 미 공군이 인수해 극비리에 해부한 뒤 보관중이라는 주장에 대해 미 공군은 “실제 발생한 별개의 두 비행사고가 짜맞추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1956년 KC-97 비행기가 이 지역에 추락해 11명의 미 공군이 사망한 사건과 1959년 유인 기구가 추락해 2명의 조종사가 부 상한 사건이 교묘하게 “조합돼” 비행접시 추락과 외계인 사체 목격담으 로 둔갑했다는 요지다.

미 공군은 이로써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의혹도 남지 않게 됐으며, 이 보고서가 이 사건의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못박았다. ‘모글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예비역 공군대령 앨버트 트라코프스키(75)도 지난해 극비문서 가 보안해제된 뒤 “로스웰사건은 냉전시대가 남긴 웃지못할 해프닝”이 라며 외계인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UFO연구가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들과 미국의 언론 들은 특히 보고서의 내용과 관련해 1950년대 중후반에 일어난 두 건의 비 행사고와 10년 이상 전인 1947년의 로스웰사건이 어떻게 혼동되어 하나의 목격담이 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미 공군 역시 “시간이 흐르 면 헷갈릴 수도 있다”는 설명 외에 이렇다할 ‘혼동’의 근거를 제시하 지 못했다.

UFO 전문가들은 이밖에 이처럼 불충분한 내용의 보고서를 50년만에 발표 한데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즉 미 공군의 발표가 “사건을 은폐 하려는 지난 반 세기에 걸친 음모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분위기다. 로스 웰에 있는 국제 UFO연구센터 및 박물관 책임자 디온 크로스비는 “미 공 군은 사람과 마네킹을 구분할 줄도 모른다는 말인가”라며 코웃음쳤고, 또다른 연구가는 “미국인의 지성을 모독하는 행위”라고까지 비난했다. 이들은 특히 이번 발표가 7월 초 전세계 10만여명의 UFO 연구가·신봉자 들이 로스웰에 모여 대대적으로 가질 예정인 ‘외계인 지구방문 50주년 기념행사’를 방해하려는 술책으로 해석했다.

한국UFO연구협회 허영식 회장도 “이번 발표는 지난 50년 동안 계속해온 주장을 되풀이한데 불과하다”며 “해명보다는 오히려 의혹을 더욱 증폭 시켰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미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베이컨은 이런 반응을 예상한 듯 “이것으로 UF O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종식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물론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CNN>에따르면 미 공군 발표 보도 이후 시청자 여 론조사에서 미국 시청자의 80% 이상이 공군발표를 믿지 않은 것으로 나타 났다.

결국 전세계 UFO신화에 일격을 가하고자 한 미 공군의 의도는 특별한 성 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그만큼 UFO는 이제 실재하느냐 아니냐의 차원 을 넘어선 문제로 보인다. ‘국가안보’란 미명 아래 사건진상이 즉각 공 개되지 않음으로써 로스웰사건은 불과 반세기 만에 ‘실제로 벌어진 진실 ’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또 하나의 진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 은 과학을 신비화시키고 UFO관련산업을 번창케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로스웰사건이 남긴 진짜 진상인지도 모른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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