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6월19일 제 162호

다마고치의 힘겨운 생존게임

(사진/다마고치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컴퓨터 통신 등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수업방해와 생명경시 풍조를 이유로 학교반입을 금지시켰다.)

이번엔 다마고치다. 일제 게임기 다마고치에 대한 찬반양론이 비등하다. ‘다마고’(달걀)와 ‘워치’(시계)의 합성어인 이 사이버 애완동물(Cybe r Pet)인 다마고치는 액정화면과 3개의 버튼만으로 구성된 간단한 게임기 다. 크기는 달걀만하다. 우주에서 온 가상동물 다마고치가 알에서 부화하 면서 게임은 시작된다. 버튼을 조작해 먹이를 주고 똥도 치워주고, 예방 접종도 잊지 말아야 닭으로 성장할 수 있다. 다마고치는 배가 고프면 ‘ 삐삐’라는 전자음을 발신해 떼를 쓰다가 먹이를 제때 주지 않거나 온도 등이 맞지 않으면 죽게 된다. 지난해 11월 말 일본 완구업체 반다이사가 개발, 출시한 다마고치는 발매 6개월 만에 무려 5백만개나 팔렸고 6월말 이면 1천만개 출하기록을 달성할 전망이다. 백화점들은 물량을 조달하지 못해 예약, 추첨제로 다마고치를 팔았는데 경쟁률이 무려 2백 대 1에 이 르렀다. 미야자키 전 수상이 손자에게 다마고치를 사주기 위해 3번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구해줬다는 일화도 있다. 한때 중고품인데도 판매 가(2천엔·약 1만5천원)의 15배인 3만엔(약 23만원)에 암매된 적도 있다. 다마고치는 일본에선 이젠 좀 뜸해졌지만 바다 건너 미국, 유럽, 동남아, 한국 등에서 또 한차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 5월 초 대 원동화(주)가 3만여개를 수입해 시중에 출시하자 3시간 만에 동이 났다. 대원동화는 6월 말까지 20만개를 수입할 계획이다. 다마고치 외에도 헬로 마미(공룡), 드래고치(공룡), 다메도치 등 비슷한 종류의 사이버 팻이 등 장해 국내에서 지금까지 30여종, 50만개 이상이 팔려나갔다.

다마고치가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됐다 . “어린이들에겐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봄철이 되면 초등 학교 앞에 줄을 서는 병아리 행상들을 보라. 도시화가 급속화되면서 가축 을 키울 공간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사이버 애완동물로 그 대리만족을 얻 으려는 거다”가 맛깔스럽게 들렸다. 그러나 다마고치는 한반도 상륙 몇 주 만에 당연한 수순으로 서서히 부작용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교육부는 지난 5월30일 수업방해와 생명경시 풍조를 이유로 전국 15개 시·도 교육 청에 공문을 보내 초·중·고교생들의 다마고치 학교반입을 금지시켰다. 이 조치가 내려진 직후 PC통신에선 다마고치 논쟁이 활발했다. 처음에는 생명경시와 존중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나누다가 나중에는 일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중엔 욕설이 오가는 등 난장판으로 변하기도 했다.

“다마고치는 병아리를 키우는 게임이지, 죽이는 게임이 아니다. 오락실 에 깔려있는 사람죽이고 패는 게임은 생명존중 사상을 반영한 것인가? ‘ 다마고치는 나쁘다’는 생각을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한다면 10년 뒤에도 일본에서 그런 게임이 히트 칠 때마다 우린 계속 수입해야 될 것”(ACT62 51)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며칠 밤을 울며 밥도 안 먹고 슬퍼하던 꼬마의 감정이 과연 기계 쪼가리와 같을 수 있을까? 그 다음은? 가상 친구, 가상 부모?”(VERISM) “어린이들은 단순히 가상게임을 즐기 는 거다. 내가 선생님이나 어머니라면 ‘어머, 이쁜 병아리구나, 병아리 도 너와 똑같단다. 밥도 먹고, 응아도 하고’라고 말하겠다”(DNB4) “거 애들이 얼마나 심심하면 그런걸 가지구 다니겠어요. 암튼 어른들은 지네 취향에 안 맞으니까 괜히 애들 장난감 가지구 X랄이야. 아 그게 일본거면 어때. 잘 만들었네. 선진국이랑 후진국이랑 거기서 차이가 나는 거요. 거 애들 장난감 갖고 자꾸 뭐라구 그러지 맙시다. 애들이 욕해요”(TVLEE). 통신에서도 일부 지적했듯이 최근 다마고치 신드롬의 진행과정을 보면 철 저하게 언론이 북치고 장구친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마고치가 처음 국내 에 전해진 것은 과학면에 “일본에 이런 게임기도 있다”는 식의 소개기 사였다. 대부분 “치고 부수는 형태의 게임기에 비해 어린이들의 정서함 양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4월 말~5월 초엔 경제 면에서 다마고치 수입을 예고하면서 수입량과 매출액 등이 보도됐다. 그 러다가 5월 중순 국제면을 통해 뉴욕 일부 초등학교의 다마고치 학교반입 금지 보도가 나갔고, 곧이어 사회면에 다마고치 부작용이 대서특필됐다. 그리고 며칠 뒤 교육부의 반입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특히 언론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논설위원들은 점잖은 문체와 목소리로 “생명경시”를 심히 걱정했는데, 구하기 힘든 그 다마고치한테 단 한번이라도 먹이를 주 고 그런 말씀을 하는건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다마고치의 등장은 물론 예삿일은 아니다. 그리고 교육부의 학교반입 금 지조처에 이의를 달 사람도 그리 많진 않다. 그러나 매번 신드롬을 스스 로 불러일으키고 그 다음엔 어설픈 잣대를 들이대 호들갑을 떠는 사이클 은 한, 두번만으로 족하다. 어릴적 아이들의 놀이인 ‘오징어가생’에서 금을 밟으면 죽는다. 그것도 생명경시 풍조 조장인가?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