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정권퇴진” 재야의 북소리

(사진/`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재야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대선자금 공개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는 전국연합 회원들.)

김영삼 대통령 퇴진 운동이 재야에서 발화됐다.

재야운동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깃발을 든 곳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 국교수협의회)이다. 대학교수들의 모임인 민교협은 지난 5월27일 기자회 견을 갖고 김 대통령의 퇴진운동 시작을 공식 선언했다. 민교협은 “우리 교수들은 이제 국민들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와 표류의 중심에 다름 아닌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 다”며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에 대해 김 대통령은 스 스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정 문란을 줄이는 길

민교협이 내건 김 대통령 퇴진론의 근거는 첫째 최근 정치·경제·사회 등 총체적인 국정위기와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보 문제와 현철씨 문제, 92년 대선자금 등에 대해 국민 여론을 제대로 반영 하지 않고 사실을 은폐, 호도한 것에 대해 대통령은 권력의 최고 책임자 로서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을 그냥 두고갈 경우 김 대통령은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차기 정권 재창출에 간여하 게 될 것이며, 그럴 경우 국민들의 의사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중도 퇴진은 헌정 공백이 아니라 오히려 헌정 문란을 줄이는 길 이라는 것이다. 민교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김상곤 교수(한신대)는 “ 일부에서는 중도 퇴진시 국정 공백이나 헌정 중단 사태 등을 우려하고 있 으나,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퇴진했을 경우 60일 이내에 새로운 임기 5년 의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돼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김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만큼 참자고 하는 것은 앞으로 9개월 동안을 현재 와 같은 헌정 문란 상황을 지속시키자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민교협은 각 지부별로 논의를 거쳐 지역별이나 학교별로 김 대통령 퇴진 서명 운동에 돌입할 방침이다. 대학교수의 집단행동은 4·19 혁명 때의 거리행진과 87년 직선제 개헌 운동에서 드러났듯 그 상징성으로 인해 역 사적인 주요 고비마다 중요한 구실을 담당해왔다. 특히 지난해 5·18 특 별법 제정 때는 민교협의 대학별 서명운동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또한 재야운동단체에서도 민교협은 회원들의 숫자 등 물리적인 부분을 넘어서 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쨌든 지식인 집단인 민교협이 대통령 퇴진 운동에 본격 나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전체 지식인 사회의 일부라고는 하지 만, 지식인들이 현정권을 단지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반대 투 쟁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민교협 외에 김 대통령의 퇴진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움직이는 단체는 ‘ 전국연합’(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의 약칭)이다. 전국연합(이창복 상임의장)은 지난 5월19일 상임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대선자금의 전면적 인 진상공개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 사회 에 만연한 혼란과 국정난맥을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밑거름” 이라며 ‘대선자금 규명과 부패정권 심판 투쟁’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 ‘심판’과 ‘퇴진’은 의미가 다르지만, 전국연합이 현 정권에 대한 압박작전에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국연합은 이에 따라 5월24일 종묘공원에서 가진 1차 국민대회에 이어 6 월2일부터 광화문 등지에서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또 6월7일에는 서울 종묘공원을 비롯해 전국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 로 2차 국민대회를 갖기로 했다.


민주연대도 범국민운동 돌입

전국연합과 참여연대, 민주노총, 민교협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된 ‘민주 개혁사회단체연대회의’(약칭 민주연대)도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 민주연대는 6월1일 긴급대책회의에서 대선자금 공개와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민주연대는 민교협처럼 ‘정권퇴진’이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전국연합의 조양익 기획국장은 “현재 전국연합이나 민주연 대의 입장은 대선자금 공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김 대통령의 퇴진 운동에 들어간다라는 것으로 아직은 전제조건이 붙어 있는 상태”라고 말 했다. 그러나 대선자금 공개 투쟁이 벽에 부딪히고 현 정권에 대한 여론 이 악화될 경우 재야의 정권퇴진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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