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한겨레21

검찰 드림팀, 갈채 없는 승리

(사진/수사기간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던 검찰청사.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대선자금에도 손을 대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보 특혜의혹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새로 짜여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드림팀’으로 불린다. 이 별칭은 심재륜 중수부장이 “전 국에서 다들 알 만한 검사들로 수사진을 보강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서 울지검 등지에서 5명의 특수통 검사를 뽑아온 것을 두고, NBA 최고의 스 타들로 구성되는 미국 올림픽 농구 대표팀에 빗대어 붙여준 것이다.

1차 수사를 지휘한 중수부장이 문책성 인사조처를 당하는 치욕을 겪은 검 찰쪽에서 보면, 나락으로 떨어진 검찰의 명예와 위신을 회복시켜줄`‘희 망의 팀’이기도 했다.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이들의 경기 내용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관전평은 어떨까.


조세포탈죄 적용은 적극적 처벌의지의 반영

서울지검 특수부를 거친 한 소장 검사는 “그만하면 잘한 것 아니냐”는 한마디로 관전평을 대신했다. 그는 검찰의 재수사 착수가 사실상 김현철 씨 비리의혹에 대한 전면수사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못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상대로 싸 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특수부 경험을 통해 짐작했던 것이다. 무수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딱히 범죄가 될 만한 것이 없었고 증거는 더더 욱 없었던 데다, 현철씨의 비리를 알고 있을 측근 인사들이 쉽게 입을 열 지 않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핵심 인물인 이성호 전 대호건설 사장은 미 국에 머물고 있었고 껄끄러운 기관인 안기부의 전직 차장도 연루돼 있었 다. 이런 어려운 수사여건 속에서 현철씨가 이권개입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을 입증한 것은 수사팀의 개가라는 게 검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번 수사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비교하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후자는 정권의 뜻에 따라 검찰 결정 을 번복하면서 진행된 수사였고 상대방도 이미 권좌에서 물러앉은 과거의 대통령이었던 반면 이번 수사는 살아있는 권력의 수족을 자르는 일이었다 는 점에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 한발 다가선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다른 부장검사는 “검찰 수사가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을 여전히 해 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의혹만 가지고 처벌할 수 없으며 분명한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검찰의 어려움을 알아달라”고 주문하고 “ 국민 감정과 현실적인 법적용 사이의 간극을 이해해야 한다”고 검찰의 입장을 변호했다. 또 현철씨가 대가성 없이 받은 활동비에 대해 조세포탈 죄를 적용한 것은 적극적인 처벌의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라고 높 이 평가했다.

그러나 ‘드림팀’이 공격에서는 성공을 거뒀을지 몰라도 수비에서까지 완벽한 기술을 발휘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일선 검사들의 시각이 모두 긍 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지검의 한 중견검사는 “현철씨는 언론이 구속시킨 것 아니냐”고 되 물었다.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도록 추동한 힘은 언론의 폭로기사에 있었 지 검찰 내부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로, 현철씨 구속을 검찰의 중립 성 확보의 증거로 보기에는 이른감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많은 검사들이 이번 수사를 현철씨를 겨냥한 ‘표적수사’로 선뜻 단정짓 는 데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중수부 바깥의 검사들 표정에서는 이번 수사결과에 대한 자 랑스러움 따위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수사는 잘했다. 그러나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는 심드렁한 반응을 자주 접할 수 있 다. 이런 분위기는 대선자금 문제로 여론의 무게중심이 옮아가면서 두드 러지고 있다.


대선자금에도 손대야 신뢰 회복될 것

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은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한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시비는 얼마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이 번 수사를 통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하나의 성역을 무너뜨린 것은 틀림없지만, ‘오로지 법과 양심만을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는 신뢰를 쌓을 만큼 큰 산을 넘지는 못한 듯하다.

한 검사는 현철씨 구속에 대한 평가를 묻자 “수사하고 나서 칭찬 듣는 일은 없다”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그는 “수사결과를 내놓으면 자기한 테 유리한 쪽으로만 따져 축소니 은폐니, 지나치느니 모자라느니 욕들을 한다”고 여론을 향한 불만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현실을 체념하 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역력했다.

`‘드림팀’도 검찰의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지는 못하고 있는 셈 이다. 일선 검사들은 아직 경기를 끝내지 않은 `‘드림팀’에게 소리없는 응원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박용현 기자/ 한겨레 사회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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