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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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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경기여상 사태의 도화선이 됐던 열악한 교육환경도 그대로다. 조명이 어두운 데다 교단과 책상 사이가 바짝 붙어 있어 양쪽 구석에선 칠판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서울 중구 만리동 경기여자상업고등학교.
지난 3월 초부터 계속됐던 학내분규로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교정에 두달 여 만에 다시 여학생들의 재잘거림 소리가 가득하다. 그동안 주인을 잃었 던 교실과 실습실에 학생들이 돌아오고 닫혔던 매점도 문을 열었다. 타자 실습실은 학생들이 부지런히 타자연습을 하는 소리로 요란하다.
여전히 한반에 10여명 결석
지난 3월10일 시작된 수업·등교거부, 휴교조치, 파행수업 등을 끝내고 7 0여일만에 5월19일부터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교생 2 천2백여명 학생들의 출석률도 수업재개 이후 85% 정도로 회복되고 있다. 수업복귀를 결의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생회장과 학부모수습대책위원장 공동 명의의 결의문을 내걸고 수업에 복귀했다. 또 매일 20여명의 학부모 들이 학교에 나와 정문과 후문을 지키면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아이들 의 학교이탈을 막고 있다. 겉보기에 경기여상은 이제 긴 악몽의 터널을 지나 정상수업의 궤도에 올라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있었던 학내 분규의 상처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수업 재개 이후에도 아직 학교에 나오지 않은 학생들은 두달여 동안 계속된 파 행운영 과정에서 대부분 무단 결석하거나 가출한 아이들이다. 특히 입학 하자마자 학내 사태를 겪은 1학년 학생들의 경우 한반에 10여명 안팎이 아직도 등교하지 않고 있다.
현재 학교에 나오고 있는 학생들도 진급과 졸업에 필요한 수업일수를 채 우기 위해서는 방학기간 내내 보충수업을 받아야 할 처지다. 지난 3월10 일부터 4월3일까지 22일간은 학생들의 등교거부와 학교쪽의 사상 전례없 는 휴업조처(3월22∼27일) 등으로 출결상황마저 기록이 안 돼 수업결손일 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또 교육청의 장학지도가 시작된 4월4일부터 5월17 일까지 학교에 나온 학생들도 20% 정도에 불과해 장기간 결석한 일부 학 생들의 경우 수업일수를 채울 수 없어 유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유증도 후유증이지만 학내사태가 재연될 수 있는 불씨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학교쪽은 지난 95년 양심선언 이후 그 동안 재단비리 척결을 주장해온 양철원 교사 등 5명을 교장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해 놓고 있다. 또 분규과정에서 학생 2명과 학부모 3명, 동창회장 등이 폭행이나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학생회장인 윤아 무개(18)양 등 학생 두명은 그동안 수차례 경찰과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또 관선이사 파견을 둘러싼 학생·학부모 및 일부 교사들과 재단쪽의 갈 등도 변수로 남아 있다.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지난 4월16일부터 한달간 경기여상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를 벌인 결과 조속한 학교정상화를 위해 임시이사진 파견이 불가피하 다고 판단하고 이를 시교육청에 요청했다. 시교육위는 이와 함께 “재단 쪽이 정규학교 인가를 받을 당시 약속한 17억여원의 출연금을 제대로 내 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재단쪽이 약속한 기부금 출연, 공정성있는 보직 교사 임명 등을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와 관련해 지난 5월17일 경기여상쪽에 계고장을 보내 보름간의 시정계고기간이 끝나는 6월3일까지 설립인가조건을 이행하고 5 일까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시교육청은 경기여상의 시정지시 사항 이행여부에 따라 관선이사 파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재단쪽 “임시이사 파견에 법적 대응”
(사진/지난 4월15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경기여상 학부모들의 학교정상화 촉구대회. )
현재 학생회의실에 대책위 사무실을 꾸려놓고 있는 학부모들은 “관선이 사 파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학생들이 수업에 복귀했다”면서 “이 런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 또다른 사태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고 우려하고 있다.
학부모대책위원장 서순석(55)씨는 “관선이사 파견 문제 이외에도 학교쪽 에서 정상수업이 될 경우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재단쪽 교사들로 이뤄진 주임 교사들을 보직해임하기로 약속했으나 아직 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수업에 복귀한 학생들 이 학교쪽 조처에 실망해 또다시 동요하는 일이 생길까 우려된다”면서 “재단과 학교, 시교육청 등 어른들의 잘못으로 한참 공부할 아이들이 애 꿎은 희생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단쪽은 “시교육위원회의 사립학교에 대한 감사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임시이사를 파견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 혀 사태가 재연될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한 학교 관계자는 “ 재단이 부도가 났다거나 설립자가 도망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 서 관선이사를 파견하는 것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 했다. 그는 또 “고소고발건의 경우 검찰조사가 진행중이므로 결과를 지 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열악한 교육환경의 개선은 더욱 난망한 실 정이다. 재단인 경흥학원이 수익용 기본재산도 변변히 갖추지 못해 설립 인가 조건마저 이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운동장은 허가기 준인 7천9백㎡의 33%인 1천7백80여㎡, 교사대지는 3천6백여㎡의 67%인 2 천50여㎡에 불과하다. 재단쪽은 오히려 지난해까지 학교비, 육성회비, 장 학금 등을 9백89차례에 걸쳐 법인이 부담해야할 교지매입 명목의 사채상 환 따위에 13억여원을 불법 지출한 것으로 시교육위 감사 결과 드러났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환경개선에 투자해야할 재단이 학생들의 돈을 치부하 는데 이용해온 셈이다. 이번 사태도 학기초 깨진 유리창 때문에 추위에 떨던 학생들이 유리창 보수를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업을 거부하 면서 시작됐다.
“화장실은 더럽고, 운동장은 비좁고…”
“조명이 어두운데다 교단과 책상 사이가 바짝 붙어 있어 양쪽 구석에서 는 칠판이 잘 보이지도 않아요. 화장실은 더럽기 짝이 없고 운동장도 비 좁고, 무너질 것 같은 축대도 무서워요.” 한 학생은 “처음에는 너무나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실망했으나 이런 원인이 재단의 비리 때문임을 알게 된 뒤 더욱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여상의 감사에 참여한 고승증 교육위원은 “지난해 교육청에서 환경 개선 지원비로 6억원을 지원했으나 현장 감사결과 난방시설 개선 등이 형 식적으로 이뤄져온 것으로 지적됐다”면서 “사학재단이 전입금을 늘리려 는 노력을 하고 사학을 지원하는 교육청도 지도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