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달동네 놀이방의 외로운 헌신

(사진/`봉천동 애기방' 교사 정은진씨가 꼬마들의 이를 닦아주고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9동 산102번지. 한창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산동네의 좁은 골목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귀에 따갑다. 까치가 놓은 오작교를 딛고 상봉하는 견우와 직녀의 그림이 그려진 ‘봉천동 애기방’이다. 만2 살부터 7살까지 어린이 16명이 모여 ‘이모’ ‘삼촌’들, 그리고 친구들 과 재밌게 놀고 배우는 곳이다. 2살 미만의 영아들은 시설과 사람이 부족 해 받지 못하고 있다. 큰방과 작은방 그리고 부엌 등이 전부인 10여평 남짓의 공간이 애기방의 전부다. 이 좁은 공간은 장난감 블럭을 짜맞췄다 부수기도 하고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기도 하는 어린이들로 씨끌벅적하다 .


하루 4∼5명씩 도와주는‘이모·삼촌’들

“지난해 미술, 피아노 학원에 다녔을 때는 애들과 잘 놀지 않았는데 애 기방에선 서로 사이좋게 놀고 지내 재밌어요.” 아빠와 엄마가 일하러 나 가시기 때문에 애기방에 온 민선(6)이는 틈만 나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 는 원직(4)이를 제 동생처럼 보살핀다. 장남감을 놓고 싸우기도 하던 어 린이들도 간식시간이 되면 “잘먹겠습니다. 이모 먼저 드세요”하며 어른 스레 양보도 한다.

이곳 애기방에는 정은진(30)씨와 이경녀(27)씨 등 2명의 선생님이 보육교 사로 있다. 서강대 숭실대 숭의여전 등 대학생 30여명이 하루 4∼5명씩 들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선생님과 자원봉사 학생들은 모두 ‘이모, 삼촌’으로 통한다.

원비는 나이에 상관없이 10만원. 그외에 따로 걷는 것은 없다. 다만 두어 달에 한번씩 엄마들이 반찬을 해오고 소풍이나 인형극을 보러갈 때 입장 료를 내는 정도다. 때문에 원비만으로는 도저히 애기방을 꾸려나갈 수 없 다. 개인과 단체 등이 후원하는 한달 20만원 정도의 돈이 큰 보탬이다. 또 1년에 한두번씩 하는 수익사업도 선생님들로서는 가뭄에 단비같다. 올 해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후원회원들의 도움으로 지난 3월30일 일일호프 집을 열어 2백75만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다.

봉천동 애기방에 대한 자치단체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구청에서 나 오는 교재교구지원비가 전부다. 지난해의 경우 약 1백10만원의 교재교구 지원비를 책정받았는데 애기방 부담 22여만원을 빼면 약 88만원 정도다. 이것으로 이불장과 책장, 놀이블럭과 퍼즐, 책 등을 장만했다. 그것도 애 기방이 문을 닫을 경우 모두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이경녀씨 는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원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부모의 대부분 이 일용직 등 고정적 수입이 없는 경우여서 증빙서류 제출이 어려워 지원 대상인데도 헤택을 받지못하는 아이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가 대부분이다. 종일 집을 비우기 때문에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종일제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보다 일찍 나와 아이들보다 늦게 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점심과 간식을 먹이고 하다보면 파김치가 되지만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 리로 피로를 달랜다. 이렇게 헌신한 대가는 월 40만원이다. 여기에 상여 금 2백%와 퇴직금으로 월 2만원씩 정립하는게 전부다.

정은진씨는 “전세 2천만원에 세들어 있는 애기방 집이 재개발에서 제외 돼 당장 철거는 되지 않겠지만 주민들 대부분이 이사를 가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형편”이라면서 “그러나 새 동네의 애기방 임대료 등 이전 비용 마련이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산동네의 많은 집이 철거돼 골목에 방치된 채 노는 아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2∼3명의 아이들이 애기방에 들어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간식비라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사진/봉천동 산동네의 철거는 아직도 한창 진행중이다. )

서울 구로구 가리봉2동 온누리어린이집에는 24개월부터 6살까지 어린이 1 5명이 있다. 정원은 22명이지만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 도 인근 공단의 맞벌이 노동자 자녀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른바 닭장집이 없어지고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면서 서비스나 자영업을 하는 부 모들이 반 정도 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종일제로 운영되는 이 어린이집의 원비는 5살미만이 18만원, 5살이상이 16만원이다. 3층건물 꼭 대기에 20평정도의 공간에 방3개와 거실 부엌을 갖춘 이 집은 보증금 1천 만원에 월세 40만원을 주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부담 30만원을 빼고 교재교구비 1백20만원을 지원받았지 만 부족하긴 매한가지다. 모자가정 자녀 1명이 원비를 면제받고 있다. 놀 이방운동에 관심있는 선후배들의 후원금이 한달 10만원 안팎이다. 과거 일일호프과 바자회 등 수익사업을 할때는 1백만∼2백만원씩 될 때도 있었 으나 지금은 후원금이나 수익금이 부쩍 줄었다. 지난해의 경우 이곳에서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이 일일호프를 해 모은 돈 30만원, 바자회 20만원, 연말 달력판매 15만원, 지역단오제 음식바자회 5만원이 원비외 수익의 전 부였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후 보육교사양성기관을 거쳐 1급 자 격증을 갖고 있는 경력 9년째의 정성희(38)씨의 보수는 40만원에서 60만 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매달 수입과 지출을 하고 남은 부분을 쪼개다 보니 일정하지 않다. 연보너스 100%에 퇴직금으로 1년에 월급의 50%가량 이 적립된다.

정씨는 “서울의 경우 올해부터 0세부터 3세까지 영아반을 3개 이상 운영 할 경우 운영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했으나, 우리처럼 소규모 보육시설에는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며 “정부가 보육시설을 자유경쟁 논리에 맡 길게 아니라 소규모 보육시설에 대해 교사 1명의 인건비와 간식비만이라 도 지원하면 단기적이나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창은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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