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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22일 제 158호 한겨레21

북한돕기 이제 직접 나서겠다

(사진/북한동포를 돕기위한 민간모금운동. 정부의 우려에도 북한돕기에 나서는 민간단체들은 `현물 구매뒤 전달' 방식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5월4~6일 베이징 남북적십자회담이 결렬된 뒤 각 사회단체의 ‘식량 직접 구매 뒤 전달’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2일 기독교계 후 원연합회-식량은행이 처음 시행한 이 방식은 민간단체가 북한원조 때 물 품 선정에서 구매 수송까지를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금까지 민간 단체가 대한적십자사(한적)에 현금을 전달하고 한적이 나머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하던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현물기부 운송비와 구입비 절약에도 도움

우선 현황부터 살펴보자. ‘옥수수 10만t 보내기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 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1차모금분 1만5천t을 ‘직접 구매 뒤 전달’ 방식으로 5월15일부터 북한 신의주로 들여보낸다고 밝혔다. 우리민족서로 돕기운동의 한 관계자는 “이번 1차분 전달은 무엇을 살 것인지, 운송업 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 다 결정하고 형식적으로 적십자사를 이용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서로돕기운동은 현재 2차 지원분을 이 방식으로 보내기 위해 업자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이 주축이 된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운동도 이 달말쯤 이런 방식으로 옥수술를 북한쪽에 보낼 예정이다. 통일원의 한 관 계자는 “이들 외에도 현재 옥수수를 직접 사겠다는 업체가 많이 늘고 있 다”면서 “이 방식이 앞으로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각종 민간단체가 ‘직접 구매 뒤 전달’ 방식을 택하는 바탕에는 한적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즉 한적이 초기 원조물품 선정에서 식용유와 양말 등 식량난과 동떨어진 물품을 선택하는 등 “정치권의 눈 치를 너무 본다”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한적의 물품구매 과정도 투명 하지 못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적의 ‘물품 구매과정 의혹’ 에 대해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한적은 정부투자기관이 아니어서 정부가 감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그런 의혹이 있다면 자체 감사를 벌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단체가 ‘직접 구매 뒤 전달’ 방식을 택하는 또다른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지난 4월2일 최초로 이 방식으로 강원도 평창 감자와 씨앗을 북한에 보낸 후원연합회-식량은행의 경험은 그 좋은 사례다. 당시 후원연 합회-식량은행의 실무기구인 남북나눔운동은 1억2천만원어치 봄무 봄배추 씨앗을 북송 물품으로 선정하고 여러 업체에 견적서를 받았다. 그리고 남 북나눔운동은 그중 1억2천만원어치를 기증하겠다는 업체를 선정했다. 1억 2천만원으로 2억4천만원어치의 물품을 산 것이다. 한마디로 이 단체에 1 만원을 기부한 사람은 2만원을 기부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물론 이런 결 과는 지난 92년부터 북한돕기 업무를 준비해온 남북나눔운동의 노하우 덕 이 크다. 하지만 민간단체들은 업체들끼리 입찰경쟁을 붙일 수 있는 ‘직 접 구매 뒤 전달’ 방식이 운송비와 옥수수구입비도 낮출 가능성이 높다 고 지적한다.


창구단일화로는 북한 전지역에 도움 못줘

그러나 통일원 관계자는 ‘직접 구매 뒤 전달’ 방식이 기존 방식과 다를 것 없는 것이며 이는 ‘현물 기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간단체가 북한에 도와줄 품목을 직접 선택하고 직접 구입해 수송까지 책임지는 것은 분명 큰 변화지만, 이 역시 한적이나 통일원과 협의 아래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금기부를 하든 현물기부를 하든 정부가 어떤 것을 하라고 강요하진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어차 피 ‘창구단일화원칙’을 어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현 물기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북한주민과의 불법접촉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다”고 말해 정부가 아직까지는 현금기부를 선호함 을 내비쳤다.

그러나 ‘직접 접촉 뒤 전달’ 방식을 택하는 민간단체들은 오히려 이 가 능성을 높이 사고 있다. 정부의 ‘창구단일화원칙’이 대북 지원의 효율 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창구단일화원칙’에 따라 기탁된 현금 현물은 한적-국제적십자사( 국적)-조선적십자연맹(북적)을 통해 북한에 전달된다. 이 기부금은 모두 국적이 북적과 협의해 선정한 13만9천명의 구호대상자에게 전달된다. 따 라서 국내에서 모금된 돈이 창구단일화에 묶여 있으면 원칙적으로는 아무 리 많은 돈을 모금해도 이들 13만9천명에게만 가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통일원 관계자는 “이들이 수해피해를 가장 크게 당한 사람들”이라면서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원조가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민간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한 관계자는 “식량배급체계가 무너진 북한에서 어렵고 어렵지 않은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창구단일화 원칙만 아니라면 황해도 자강도 등 손길이 잘 안 닿는 지역에 식량을 공급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간단체들은 또 창구단일화원칙을 풀어 남북 민간단체끼리의 교류 확대 가 이뤄지면 이는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남북나눔운동의 지난 4월2일 ‘감자 씨앗 북송’은 시민단체들 사이에 하나의 전범처럼 얘기된다.

지난 4월2일 정오 남북나눔운동은 북송 감자와 씨앗을 배에 싣고 그 물품 인도증을 한적에 넘겨줬다. 그런데 그동안 남북나눔운동과 ‘신뢰관계’ 를 형성하고 있던 조선기독교도연맹이 국제기구를 통해 물품하역과 분배 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려왔고, 뒤에 조선기독교도연맹은 북적과 함께 물품인수·분배에 참여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나눔운 동은 명목상으로는 ‘한적-국적-북적’ 선을 이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기독교 공동체’인 조선기독교도연맹에 물품 하역 배분권을 준 셈이다.


식량 전달, 공동체 의식 높이는 방법 택하자

남북나눔운동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방식이 ‘창구단일화원칙’에 위 배되는지 논란은 있지만 앞으로 통일과정에서 매우 긍정적 구실을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즉 남쪽의 불교도가 북쪽의 불교도에게, 남쪽의 가톨 릭교도가 북의 가톨릭교도에게 식량을 전달했을 때 이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고 이는 결국 사회통합에 기여할 것이란 지적이다. 하지 만 남북나눔운동은 이 방식이 가능하려면 북쪽 정부에 일정한 신뢰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직접 구매 뒤 전달’ 방식이 과연 남북나 눔운동의 전범 수준에 이를 수 있을지 혹은 그 이상으로 영역을 확대해나 갈지 주목된다.

김보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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