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17년 만의 취재수첩! `5.18특파원리포트' 햇빛

80년 광주의 5월은 폭도들의 무법천지였다. 적어도 한국언론의 당시 보도 에 따르면 그렇다. 거기에 학살자는 없었다. 물론 취재기자들은 항변한다 . 얼마나 살벌했던 계엄군의 언론통제 상황이었던가 라고….

그 5월에 기자들은 광주에 있었다.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을 두눈으 로 보면서 취재했다. 그러나 취재수첩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유폐 되어왔던 그 취재수첩이 5월을 맞아 한권의 책(`5.18특파원 리포트', 풀 빛)으로 묶여 나왔다.


“예쁘장한 여자일수록 잔인하게 다뤘다”

한국기자협회와 무등일보, 시민연대모임이 함께 엮은 이 책은 ‘17년 만 에 공개된 내외신 기자들의 광주 5월민중항쟁 취재수첩’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9명의 내신기자와 함께 8명의 외신기자들도 당시의 기억과 기 록을 더듬어 생생한 취재기를 실었다.

물론 17년 전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 나왔던 내용과는 정반대이다. 특히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 김충근 기자의 현장묘사는 적나라하다. “젊은 여 자, 예쁘장한 여자일수록 가해지는 (계엄군의)폭력은 더 심했고 옷을 찢 어발긴다든지 가격하는 신체부위가 여체의 특정부위에 집중되었을 때 그 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되겠는가? 백주겁탈, 폭력만행, 성도착적 무력진압 등의 표현들이 떠올랐다.”

국제신문 김양우 기자도 5월27일 계엄군의 도청진입이 끝난 직후 도청 안 마당에서 포로로 잡힌 시민군을 계엄군 병사가 때려죽이는 충격적인 장면 을 목격했다고 쓰고 있다. 80년 5월31일 휴교가 풀리는 광주의 초등학교 를 찾아갔다는 중앙일보 장재열 기자의 글도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오 랜만에 등교하는 2학년 학생에게 선생님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 냐고 물었다. 어린이는 이렇게 말했다. ‘군인 아저씨가 사람 죽인 이야 기요.’”

말단의 가해자인 공수부대 사병들도 피해자였다. 김충근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맨 뒷줄은 헌병 완장을 찬 군인이 저격용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 총구는 바로 자신들의 대열을 향했다. 만약 이탈자가 있다면 배후의 헌병이 처단하겠다는 그런 의사표시가 담겨 있었다.”

외신기자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참극은 처음이었다”고 쓰고 있다. <볼 티모어 선>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블레들리 마틴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내가 겪은 여러 국제적 대사건 중에 광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 토로했다. `뉴욕타임스'의 서울 특파원 헨리 스코트 스톡스는 “취 재결과 광주의 심각성과 비교해 미 대사관의 식견은 형편없었다”고 회상 하고 있다.


신문을 보내지 말라는 ‘아이러니’

국내기자들은 ‘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한국일보 기자였던 조성호씨가 전하는 일화. “(진실을 왜곡한 신문들이)광주에 거의 배달되지 않아 기 자들이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본사에 ‘제발 신문을 보내지 말라’고 호소해야만 했다.”

자괴와 무참한 반성도 빠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한 채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서청원·조선일보). “제대로 사실을 알리지 못한 기자의 한 사람으로 광주 시민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장재열·중앙일보).

전두환씨는 지금 사법적 심판을 받고 있다. 한국언론은 이제 그에게 돌맹 이를 실컷 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17년 전 전두환씨에 충성했던 그 치욕 의 증거들이 지워질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5.18특파원 리포트'는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될 회고록인지도 모른다.

고경태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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