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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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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현대적 이미지를 벗어난 청순가련형 순애보적 사랑을 갈구할 뿐이다. 사진은 `신데렐라')
미니시리즈 `별은 내 가슴에'가 민이(안재욱)와 연이(최진실)의 감동적(? )인 콘서트장 포옹으로 화려한 막을 내렸다. 만화영화 `캔디'를 모방했네 ,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네 등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별은 …'는 마치 ‘그래, 그랬다. 어쩔래’라는 식의 정면돌파로 사태를 마무 리졌다. 이날 시청률은 48.9%로 주간시청률 1위였다. 또 4월 첫주에 주제 가 음반이 음반판매 순위 1위로 등극한 이후 5주째 1위를 지키고 있다. ` 별은…'의 성공은 디자이너·록가수라는 첨단 직업, 서른살(68년생) 최진 실의 변치 않은 청순함, CF를 연상시키는 블루·옐로·레드톤 등 현란한 빛감의 적절한 사용, 스피디한 극전개, 조연들의 살신성인, 주제가 등 인 기요소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트렌디 드라마 역시 `질 투' 이후 하나둘이 아니었는데.
`별은…'는 마지막까지 연이가 민과 준희(차인표) 둘 중에 누구 품에 안 길 건가 하는 게 초미의 관심이었다. 이처럼 최근 인기드라마 대부분이 삼각관계를 끝까지 이어가는 게 때늦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장 대표 적인 효경(이승연)-찬혁(최수종)-신자(이혜영)의 `첫사랑', 석환(이훈)- 정민(김지호)-민상(이승우)의 `꿈의 궁전', 재민(정보석)-채연(박상아)- 형철(김병세)의 `세번째 남자', 혜진(황신혜)-준석(김승우)-혜원(이승연) 의 `신데렐라'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주요 삼각관계 주변에 얼기설 기 가지를 쳐 6각~8각까지 나가기도 한다. 온통 ‘사랑의 작대기’ 맞추 기 판이다.
왜? 재미있으니까.
끝도 없는 불황, 한보사태 등으로 골머리가 쑤시는데 드라마에서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싶은 소박한 소시민들의 안쓰런 반영이다. 호화판 드라마, 위화감 조성이라고 욕들 하지만, 어차피 ‘내 팔자에 언감생심’인 상류 사회의 화려함을 아이쇼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디자이너, 파리유 학, 프랑스 식당, 여기에 제주의 탁트인 전원풍경에 이르기까지. 이제 머 리 쓰게 만드는 드라마가 이 사랑이야기 틈새에 끼어들 여지는 당분간 없 어 보인다. 지난해 여름 시청률 30%대를 오르내리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 던 `X파일'도 지금은 그 절반인 15~16%대로 떨어져 일부 마니아들만의 장 으로 축소됐다. `모래시계'가 다시 등장한데도 지금 추세를 거스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첫사랑' 은퇴 이후 공석중인 타이틀을 놓고 결정 전을 치르는 2편의 주말극, 서민들을 다룬 `파랑새는 있다'와 사랑이야기 를 다룬 `신데렐라' 중 누구 손이 올라갈지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 이기도 하다.
여기에 드라마의 또 한 흐름은 여주인공들이 대부분 지금 시대와는 좀 맞 지 않은 듯한 청순가련형에 순애보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 이는 70년대 드라마 주인공이었는데 말이다.
80년대 말~90년대 초 안방극장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존심 강하고 도회적인, 그리고 자기 일에 충실한 단독 자로서의 여성이어다. 배종옥, 채시라, 김혜수, 신은경 등이 그런 이미지 를 주로 맡아왔다. 그런데 지금 드라마 주인공들은 화려함은 예전보다 더 하더라도,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타나 평범한 주부들의 기를 죽이지 않는 다. ‘외형은 최대한 화려하게, 그러나 내용은 단순·소박하게’라는 불 협화음이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게 작금의 드라마 속 요지경이다. 그리고 결말은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 는 시청자는 텔레비전 공간에서마저 또한번의 좌절을 맛보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사랑'과 `별은…'가 시청자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파트너 선정 등 극의 상당 부분이 뒤바뀌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여하간 우린 시청률 높은,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난 드라마들에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50분 동안만이라도 세상사를 잊고 그 화려한 빛에 젖어, 사랑이야기에 젖어 환상의 나래를 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행여 아 편이 되진 말아야 할 텐데.
화려한 드라마와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시청자들의 여유없는 마 음이 연이의 눈 밑에 드리워진 그늘처럼 자꾸만 눈에 밟힌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