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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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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공지영(34)씨가 장편소설 `착한 여자'를 펴냈다. 공씨는 신경숙 김 인숙씨 등과 더불어 30대 여성작가의 대표주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 `고등어' 등 펴내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가 돼 90년대 한국 문단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지난 94년 이후 3년간의 문학적 ‘침묵’끝에 내놓은 <착한 여자>는 ‘공지영 문학’의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88년 등단 이래 ‘80년대’와 ‘여성문제’라는 두 테마를 자기 문 학의 주축으로 삼아왔다. 작가 자신의 학생운동 체험을 바탕으로 한 80년 대 운동권의 열정과 고뇌가 온전히 녹아든 이 테마는 ‘후일담 문학’의 전형으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소외를 공격적으로 다룬 일련의 소 설들은 전투적 페미니즘의 일단으로 각각 분류됐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착한 여자'는 이전의 그의 소설과 확연히 구분지어질 수 있는, 작가의 내면적 변화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학인생 10년 가늠하는 이정표 구실
물론 `착한 여자'도 여성의 사회·경제적 자립, 남녀의 동등한 인간적 관 계 모색이란 공지영 문학의 큰 틀 속에 서 있다. 그러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이전의 작품들이 여성차별의 벽을 깨는 대안으로 은연중 여성의 남성화 내지 여성의 사회적 권력화- 남성중심의 사회제도에서 여 성의 홀로서기는 결국 남성이 향유하는 권력의 균점이란 의미에서- 를 제 시했다면, `착한 여자'는 여성성에 대한 긍정, 그리고 여성성 자체의 사 회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설과 차별성을 갖는다. 또 문학적으로도 여성 내면의 심리를 꿰뚫는 묘사와 총체성을 확 보해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인식, 더욱 단련된 문체 등은 이 작가가 인간 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소설을 써온 이래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주고 싶은 소설”이라는 말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착한 여자'는 이런 점에서 ‘공지영 문학 10년’의 전후를 가늠하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착한 여자'는 어떤 이야기일까.
`착한 여자'는 70~80년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상- 왜곡된 가부장인 아버지와 매맞고 살면서도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 사이 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공부는 잘했지만 형편상 대학진학을 못하고 취직 한 고졸 여성- 인 주인공 오정인의 서른네해의 삶을 그리고 있다. 말하자 면 오정인은 봉건사회의 유제와 산업화의 과도기 속에 있는 많은 한국 여 성들의 표상이다. 그녀는 현실에서의 탈출과 가정에서의 안락한 사랑, 행 복 따위를 갈구하지만 방탕한 남편한테서 끊임없는 멸시와 구타를 당한다 . 정인의 고향 친구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페미니스트 독신녀 미송과 정인 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찼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학생운동에 투신하는 이웃집 오빠 명수는 동시대 지식층 젊은이들의 고뇌를 상징한다 . 이들은 정인이 폭력적인 가정생활을 깨고 나오도록 돕고, 정인은 마침 내 이혼한다. 미송의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정인은 그곳에서 만난 운동권 출신의 소설가 남호영과 사랑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희망으로 부푼다. 그 러나 첫 남편과 남호영은 ‘속물’과 운동권이란 차이에도 왜곡된 여성관 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남성상을 대표한다. 결국 남호영에게도 버림받고 정인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이미 뱃속에 잉태돼 있던 새 생명의 태동을 느끼면서 다시 일어선다. 모든 것을 깡그리 상실한 절망의 벼랑에 서도 희망의 싹은 움틀 수 있다는 생명에의 외경이 그녀로 하여금 진실한 사랑의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보게 한 것이다. 정인은 이후 남편과 큰 아 이를 사고로 잃은 변호사 이인혜와 함께 ‘가족’을 이룬다. 두 사람은 남녀결합구조인 가족을 상실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랑과 상처를 서로 나 눠가지는 ‘가정’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가족을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완전탁아시설을 만들어 버려진 아이들을 키운다. 마침내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된” 정인이 외국서 귀국하는 명수 오빠를 마중하러 나가는 것 으로 소설을 끝난다. 두 사람의 재회는 홀로 일어선 여성성과 남녀가 더 불어 사는 삶에 동의한 남성성의 진정한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는 암시를 던진다.
`착한 여자'는 줄거리에서 보듯 전투적 페미니즘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성의 사회화,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는 진정한 힘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확인”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인용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은 곧 작 가 자신이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한다.
전투적 페미니즘 접고 따뜻한 여성상 구현
작가는 지난 96년 한해 동안 이혼 등 개인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 그는 이때를 한 산문에서 “죽음 같은 순간들”이라고 고통스럽게 토로 하고 있다. `착한 여자'라는 소설은 바로 그 ‘죽음 같은 순간들’과 싸 우며 쓰였고, 결국은 작가 자신의 체험적 결론이 투영돼 있다.
작가는 소설을 끝낸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대 여자라는 대립 이나 차별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남성중심 사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 큼 원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조금씩이라도 진전되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소설의 계기를 “어머니로서 내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며 “여자답다는 것, 여성적인 부드러운 힘과 생명을 출산 하는 창조성이라는 여성성의 본질이 진심으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공지영은 여성으로서 두번째 출생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가. `착한 여자' 의 ‘출산’은 공지영 문학의 제2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상, 하 2권 각 7천원. 한겨레신문사 펴냄.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