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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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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횡행하고 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한보청문회는 거짓말이 대 중의 감시 속에서도 버젓이 자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가는 온갖 거짓말들. 거짓말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은 무 력하기 짝이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 속은 알 수 없다는 평범한 격언이 딱 맞다. 거짓말은 그 마음 속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또 아리를 틀고 있을 테니까.
“사람은 8분에 한번씩 거짓말”
얼마 전 외신은 한가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전했다. “사람은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 미국의 한 대학이 20명의 몸에 소형 녹음기를 부 착해, 이들이 하루 종일 쏟아낸 말의 진위를 일일이 추적한 계산 결과다. 하루로 치면 사람은 2백번 가까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실로 사람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의 사전적 정의는 단순하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 하는 말. 속임수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러나 현실의 거짓말은 그런 그물로 온 전히 담아낼 수 없다. 사실로 알고 한 말도 나중에 거짓말이 될 수 있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거짓말은 말 자체가 아 니라, 그것이 엮어내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 참말을 했을 때, 자 기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피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 니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난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혹은 자신을 높 이기 위해,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속이는 즐거움에 탐닉하는 이들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속사정은 거짓말 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거짓말은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 능 력을 이용해 영화를 찍고,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린다. 정치판을 만들고 , 경제생활을 하고, 사회관계를 맺는 데도 거짓말은 빠지지 않는다. 거짓 말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학자들은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 하는 아이들의 초기언어에서도 거짓말의 원형을 발견한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면, 삶이 나아졌을 거라 고 장담할 수 없다. 기분이 나쁘면 절대로 웃을 수 없는 사람을 상상해보 라. 때로는 정직함이 더 야만적이고 잔인할 수 있다. 참말만을 하는 사람 들이 모인 세상은,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못지않게 고통스러 울 수도 있다. 그런 곳에선 모든 인간관계는 삭막해지고, 급기야 무너질 가능성이 적지않다. 거짓말은 진실의 윤활유라는 역설은 이런 까닭에 가 능하다.
사실 속는 편이 더 편할 때도 있다. 행사를 주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손 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믿는 편이 더 좋다. 농담에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농담에 재능이 있다고 믿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마 찬가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모두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성직자들도 무해한 거짓말은 관대하게 받아들여져야 마땅하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밝히려는 모든 노력은 미덕이 아닐 수도 있다.
거짓말은 오늘날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대중의 관심을 끈다. 이유는 자명 하다.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공개적인 거짓말의 경우 들통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요즘만큼 정치가들이 거짓말을 하고도 틀통나기 쉬운 적은 없 었다.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사람의 모습은 통쾌 하기도 하다.
거짓말 추궁, 약해지는 집요함
그러나 거짓말을 추궁하는 사람들의 집요함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닉슨 은 거짓말로 물러났지만, 그 이후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권력의 자리에 서 순순히 물러난 통치자는 없다. 정치인이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이제 별것 아닌 일이 돼가고 있다. 윤리니 정직 성이니, 진실성이니 하는 거짓말의 천적들은 이제 공적인 생활에서 선언 이상의 힘을 갖지 못한다. 그것들이 사적인 생활에서도 이미 별로 중요하 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신뢰받지는 못하지만, 일종의 용인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에 맞는 정부가 나타나고, 삶의 총체적 표현인 문화도 여 기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거짓말에 대한 사람들의 민감성이 끊임없이 줄 어들고 있는 것이다. 거짓은 이제 영원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가.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