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커스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
|---|
(사진/당무회의에서 머리를 맞댄 비주류 3인방. 국민경선제가 무시되면서 주류쪽과의 대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오는 5월19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회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비주류 는 전면적인 전당대회 보이콧 등도 고려하는 등 주류의 일방적인 전당대 회 주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다. 주류와 비주류의 한치도 양보 없는 대격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 주류와 비주류는 현재 단순한 노선차이를 넘어 감정적으로도 극 도로 격앙돼 있다. 주류는 비주류에 대해 `비논리적인 김대중 불가론을 제기하고 있다며 공격하고 있고, 비주류는 주류에 대해 맹목적인 김대중 추수론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 부총재, 주류쪽이 불한당 같은 짓 했다
주류와 비주류는 이미 지난 4월2일 당무회의에서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 리를 건넜다. 비주류가 제안한 미국식 예비선거제 형식의 `국민경선제가 수적 우위를 내세운 주류에 의해 철저히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감정도 상했다. 비주류의 김근태 부총재는 주류쪽 일부 인사들의 언 행에 대해 ‘불한당 같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주류가 앞으로 국민경선제 도입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중앙위 소집 을 요구하거나 직접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서명운동을 통해 당헌개정안을 전당대회에 상정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주류가 중앙위원이나 대의원의 대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당헌개정 가능성 여부를 떠나 비주류가 선택할 길은 전당대회에 참여하거 나 아예 전면 보이콧하는 것이다. 김상현 지도위의장과 정대철 부총재, 김근태 부총재 등 비주류 3인방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갈린다는 데 있다. 3인의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비주류의 공식입장은 결정된 바 없다. 다만 김 의장과 정 부총재는 참여하는 쪽에 기울어 있고, 김근태 부총재는 참여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상현 의장은 전당대회에 비주류 3인방이 모두 총재와 대통령후보로 참 여하자는 입장이다. 김대중 총재가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도 록 막은 뒤 비주류 중에서 최대득표한 사람을 2차투표에서 밀어주자는 것 이다. 당내 지지기반으로 볼 때 김 의장 자신을 2차투표에서 밀어달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의장은 자신이 선출되면 총재와 대통령후보를 모두 사퇴한 뒤 국민경선제 형식으로 후보를 다시 선출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 부총재는 비주류 3인의 역할분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후보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인 자신이 나가고 총재후보는 후농(김상현 의장 아호)이 맡자는 것이다. 김근태 부총재는 재야 및 개혁지향의 대의원들을 끌어들이는 지원 구실을 해 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전당대회 참여론은 위험부담이 크다. 현실적으로 김대중 총재를 이길 가능성이 적은 데다 만약 전당대회에 참여할 경우 비주류가 비장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는 제3의 후보론을 포기해야 한다. 투표에 참여해 낙 선한 뒤 다른 후보를 내세울 것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 다.
비주류에서 전당대회 보이콧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 당대회 보이콧은 최후에 선택할 방안이기 때문에 비주류는 상황을 보고 있다. 김 부총재는 “일단 5월 전당대회 무렵까지 대의원들을 상대로 국 민경선제 도입의 필요성을 홍보한 뒤 여론 등을 고려해 결정할 생각”이 라고 말했다.
5월 전당대회 반쪽대회로 전락할 판
비주류가 보이콧 하는 경우 국민회의 전당대회는 볼썽 사나운 `반쪽 전당 대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김대중 총재가 주류쪽의 잔치판을 통해 설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다 해도 두고두고 정당성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주 류가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도 바로 전당대회 보이콧 움직임이다.
현재 주류는 조만간 전당대회 준비를 위해 여의도 당사 근처에 별도의 사 무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비주류는 3월31일 서울 정동에 국민경선제 추진 위 사무실을 정식으로 열고 대의원 포섭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한판 격돌을 위한 힘쌓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 5월 전당대회는 일 찌감치 포연에 싸이기 시작했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