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북한 처녀들이 팔리고 있다

(사진/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인 도문. 다리 건너 북한동포들에게 식량이 넉넉한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3만위안(약 3백만원)이래야.”

지난 3월 초 중국 흑룡강 밀산의 한 조선족 마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 인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이날 화제는 단연 ‘조선 처녀 몸값’ 이야기였 다. “3만위안이면 조선(북한) 처녀를 살 수 있다”니, 특히 노총각 시동 생을 둔 몇몇 아주머니들로서는 귀가 번쩍 틔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어캐 조선 처녀를 살 수 있다는 게야.”

“연변으로 넘어온 못먹어 배고픈 조선 처녀들을 브로커들이 돈을 받고 넘긴다지.”

“추위에 두만강이 언 지난 겨울에 특히 조선 처녀들이 많이 넘어왔다지. ”

“굶주림을 피할 수만 있다면…” 국경을 넘는 처녀들

이들이 북한 식량난이 어렵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특 히 올 들어서는 조-중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북한에 대한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 처녀들이 돈을 받고 팔 린다는 소문까지 나온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한 박씨 아주머니(38)는 이미 몇몇 집에서는 ‘끈’을 대 기 위해 수소문을 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또 연변에서는 아가씨 가격이 훨씬 ‘눅다’(싸다)며 연변으로 직접 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전한다. 박 씨는 남편을 한국에 보내고 자신도 산업연수로 한국땅을 밟기 위해 노력 하는 중이다.

최근 흑룡강성과 요녕성 등지에서는 이렇게 ‘북한 처녀들이 팔리고 있다 ’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요녕성의 중심지 심 양에 사는 조선족 최아무개(45·여)씨도 얼마 전 조-중 국경인 길림성 도 문에서 온 친지에게서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말쯤 북조선 처녀가 몰래 두만강을 건너왔다지요. 비법(불법)으 로 말이야요. 너무 배가 고파 아무 집에나 무턱대고 들어갔답니다. 기래 그 집 조선족 사람이 밥도 주고 또 중간에서 결혼하는 데 다리를 놔줬다 지요. 이 처녀는 ‘아무 요구도 없고 나는 배불리 밥만 먹으면 된다’고 했답니다. 기래 다리를 저는 한족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지요. 그 아가씨 는 정말 훌륭하고 예쁘답디다. 믿어지지 않지만 친지가 두번 세번 확인해 줘서 알게 됐시오.”

동북 삼성에 있는 조선족 사회에서는 이 밖에도 북한 처녀들에 대한 이야 기가 분분하다. 소문은 “연변뿐만 아니라 요녕성 환인현·신빈현·관전 현 등 압록강 연안 지역에 북한 처녀가 상당수 넘어와 숨어 살고 있다” “이들은 단지 배가 고파 넘어오는 것이고 넘어온 뒤 결혼을 하기도 한다 ” “아니다. 전문적인 매매업자들이 몰래 빼내오는 데 워낙 비밀스러워 잘 드러나지 않는다”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소 문의 초점은 연변으로 쏠린다.

이런 ‘북한 처녀 매매’이야기가 조선족 신문 등 중국 언론에 보도된 적 은 없다. 황장엽 비서 망명 등으로 가뜩이나 긴장된 양국 관계에서 ‘처 녀 매매’ 문제처럼 지극히 민감한 사안은 보도하는데 금기 중의 금기이 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안타까운 ‘북한 처녀 매매’ 이야기는 결코 뜬 소문이 아니다.

국경 밀무역업자들이 ‘인신매매’ 주도

지난 4월3일 <한겨레> 특별취재반은 연변의 한 공원에서 바로 이 ‘북한 처녀’ 인신매매 현장을 잡았다. 특별취재반의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고 개 숙인 북한 처녀를 두고 브로커들이 상담하고 있는 내용이다.

특별취재반에 따르면 북한 여성들의 거래가격은 1만~5만위안(1백만~5백만 원)이다. 가격은 주로 국경으로부터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연변 일대라 면 1만~2만위안에 거래되지만, 흑룡강이나 요녕 등 먼곳이라면 3만~5만위 안으로 값이 뛴다는 것이다. 또 판매대상은 조선족 청년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한족이나 장애인, 노인들까지 구매자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북한 여성 매매’가 가능한 것일까. <한겨레> 특별 취재반은 ‘북한 여성 매매’에 관련된 브로커들은 주로 조-중 국경에서 밀무역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넘는 북한 처녀에게 먹고 입을 것을 대준 뒤 돈을 받고 팔거나, 심지어 북한에서 밀무역을 하고 나올 때 북한 여성을 몰래 빼내오기도 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변의 조선족 동포들에 따르면 북한 여성 매매가 처음부터 조직 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북한 처녀들도 여느 탈북자들과 마 찬가지로 극도로 심각해진 식량난 탓에 중국쪽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넘 어온 ‘단순 월경’이었다는 것이다. 연변의 전 언론인 김아무개씨는 그 한 예로 ‘금강원’ 등 북한식당에서 일했던 아가씨들이 몰래 국경을 넘 어 중국에 왔던 사례를 전한다.

지난 96년 봄 연변지역에서는 3명의 북한 아가씨들이 북한 ‘특무’(사회 안전부 요원)에게 잡혀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진 일이 있었다. 이들은 연 변지역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몇년 전 복무기한이 돼 돌아갔던 이들이다. 연변의 북한식당은 조선 처녀들이 합법적으로 중국에 들어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업장이다. 그러나 북으로 되돌아간 이들은 식량난이 극심해지 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다시 불법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또 김씨라고만 밝힌 한 조선족 할머니는 지난 96년 12월 북한 처녀 3명이 두만강을 두고 함경북도 회령과 맞보고 있는 삼합까지 왔다고 전한다. 이 들은 중국쪽에서 밥과 옷을 얻은 뒤 곧 돌아갔다고 한다.

이렇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넘어온 북한 처녀 중 일부가 처지를 딱하 게 여긴 조선족들의 소개로 농촌의 조선족 총각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연변 처녀는 남한으로 북한 처녀는 연변으로

‘한국 바람’에 ‘처녀의 씨’가 마른 조선족 사회에서 노총각들이 돈을 내서라도 북한 처녀를 사겠다고 나서게 된다. 조선족 사회의 처녀 부족현 상은 “노총각은 아이 하나 딸린 과부와 결혼해도 행운”(조선족 소설가 김학철씨)으로 여겨질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족 노총각 들은 “한국이 조선족 처녀를 다 데리고 가니 우리는 조선(북한)에서라도 아가씨를 데리고 와야 하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고 있는 실정 이다. 그리고 이렇게 ‘북한 처녀’를 소개하는 데 돈이 붙게 되자 밀무 역자들이 조직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 처녀와, 밀무역자들에 의해 국경 을 넘는 북한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인신매매’의 범위가 흑룡강과 요녕 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연변에는 이미 이런 탈북 처녀들을 잡으려는 북 한 특무들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미 연변은 조선족 처녀들이 결혼 해 살기엔 위험한 곳이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 문제와 관련한 조선족 사회의 관심은 ‘매매 자체’보다 오히려 과연 이런 북한 처녀 매매에 ‘국경수비대’가 관여하고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20세기의 신화>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소설가 김학철씨는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지금 연변에는 일본 친척들이 북한으로 가져온 차가 많이 들어와 있습 니다. 일본 차에 대한 단속이 엄청난 데도 이런 밀무역이 버젓이 자행되 는 것은 국경수비대가 관여됐을 가능성이 높음을 말해줍니다. 또 일반적 으로 북한 주민이 중국으로 넘어올 때 국경수비대에 돈을 찔러주는 경우 도 흔합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북한 처녀 매매’에도 국경수비대 가 관여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북한 처녀 매매’와 관련한 또하나의 문제는 이들의 결혼생활이 순탄할 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심양의 한 조선족 동포는 이들 처녀가 결혼 뒤에도 불안한 생활을 이어간다고 전한다.

밀입국 신분이라 혼인신고도 못해

“이런 과정을 거쳐 넘어온 조선 처녀들은 모두 신분상 불법입국자입니다 . 이들은 따라서 합법적인 혼인신고를 못한 채 지냅니다. 말하자면 ‘첩 살이’지요. 개중에는 관에 끈이 있는 조선족이나 한족 총각을 만나면 뒷 구멍으로 이들에 대한 공민증을 얻기도 한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그러나 그런 예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이 조선족 동포는 지난 96년 말 3명의 북한 처녀가 불법신분이 탄로나 북으로 잡혀가는 것도 보았다.

“흑룡강성과 요녕성 일대에서 조선 처녀들이 잡히면 일차적으로 심양에 임시수용됐다가 압록강변에 위치한 단동을 거쳐 조선으로 끌려갑니다. 지 난 겨울 끌려간 3명 중 한명은 이미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어 주변 사람 을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중국 땅덩이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사람이 결혼해 사는데 영원히 비밀이 지켜지기란 어려운 일이죠.”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들은 이제 날씨가 풀리면서 북한 처녀의 매매도 한풀 꺾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포근한 날씨에 두만강 얼음이 녹으면 서 탈북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맛을 안 국경 밀무 역자들이 한사람당 5만위안까지 받을 수 있는 ‘고수익 상품’을 쉽게 포 기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김보근 기자 심양=김무석 연변=리정수/ 조선족 동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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