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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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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본격적인 전기물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90년대 들어 일기 시작 한 인문학 열기가 세기말로 이어지면서 인류문명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도 퍼져가는 양상이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어떤 인물들을 뒤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우선 문학 분야에서는 도서출판 책세상이 ‘위대한 작가들’시리즈를 내 기 시작했다. 동서양 각 언어권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에 대한 전 기 중 ‘정본’으로 꼽히는 책을 엄선했다. 마리아 라이나 릴케의 전기 ` 릴케-영혼의 모험가'를 첫권으로 냈다. 토머스 만, 횔덜린, 플로베르, 카 프카, 헤밍웨이 등도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다.
평전 대중화에 공헌한 원작 3백권 출간
민음사는 20세기가 과학의 시대였던 점에 착안해, 과학철학자 전기물을 기획했다. 지난해 인류학자 제인 구달과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전기를 냈고 올해 다윈 뉴턴 등의 전기를 발간할 예정이다.
또 시공사는 영국 하퍼콜린스사의 유명한 전기물 ‘마스터즈 시리즈’의 번역 출판을 준비중이다. 니체 프로이트 융 라캉 소쉬르 등 20세기 문명 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본격 전기물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것은 한길사가 최근 1차분 10권을 한 꺼번에 출간한 ‘한길 로로로’시리즈.
한길사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부터 출간을 예고한 이 전기물 시 리즈는 독일 로볼트출판사의 ‘로로로 평전시리즈’를 번역한 것이다. 로 로로 시리즈는 1958년 독일 작가 쿠르트 쿠젠베르크에 의해 첫권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6백여권이 간행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독일어권 대학생들의 필수 소장서로 꼽히는 로로로 평전은 지금까지 독일어권에서 만 2천만부가 팔려나가면서 본격 전기물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마릴린 먼로 등 고대 철학자에서부터 20세 기 영화배우에 이르기까지 인류문화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망라하고 있 으며, 지금도 매달 1권씩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되고 있다고 한다. 한길사 는 이 가운데 3백권을 선정해 매 계절마다 10권씩 시리즈 출간을 이어갈 계획이다.
로로로 시리즈는 텍스트 자체의 객관적 가치뿐 아니라 국내에 처음 소개 되는 희귀 사진자료를 다양하게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책 뒷부분의 연보와 증언록, 관련자료, 참고 문헌과 저서 목록 등은 본문과 함께 해당 인물의 시대적 변모와 당대의 사회상황, 관련 인물들과의 지적 교류관계를 재구성해 보는 데 도움을 주며, 전문연구자들에게는 희귀한 연구 자료를 찾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차분에 소개된 인물들은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아도르노를 시작으로 붓다 니체 로자 룩셈부르크 하이데거 도스토예프스키 T.S.엘리엇 앨프리 드 히치콕 뭉크 하이젠베르크 등으로 이 가운데 발터 비멜이 쓴 하이데거 평전은 하이데거 3대 입문서로 꼽힌다.
이 밖에도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와 각종 단행본 전기물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다. 출판관계자들은 전기물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말까지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길사의 로로로 시리즈도 2004년에나 가서야 완간될 예정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진지한 관심이 없 다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치열한 ‘반추’로 새 인물의 길 연다
훌륭한 전기는 인물의 행적을 쫓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의 풍경을 섬세하 게 포착하고 그것이 당대의 시대상황과 정신풍토와 어떻게 조응하며 자신 의 사상과 행동으로 나타났는지를 재구성해 낸다. 그렇게 되살아난 인물 은 단지 업적으로서의 사후 평가를 넘어 자기 시대를 고뇌와 열정으로 껴 안은(또는 뛰어넘은)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뛰어난 전기문학이 매 시대마다 새롭게 쓰여지고 그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안에서 인간과 시대에 대한 감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기문학은 이처럼 치열한 ‘반추’를 통해 새로운 인물이 오는 길을 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물이 활발한 서구나 일본에 비해 국 내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본격적인 전기물이 등장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사고 있다.
왜일까. 우리의 파란많은 20세기를 가꾸고 이끈 인물들에 대한 성찰적인 평전의 출현을 기다리기엔 아직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 까.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