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소설만큼 재미있는 3김의 협력과 배반 37년사

한국정치사에서 세 김씨는‘협력과 배반’‘단결과 분열’로 점철된 일대 파노라마를 그려왔다. 주연은 37년 동안 동지와 적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 동의 적 앞에서는 협력과 화해로 생존하고, 그 적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피나는 경쟁과 대결을 벌여온 YS와 DJ였다. 그리고 JP는 이런 ‘양김 대 결’의 조연이었다.

양김의 경우 공동의 적이 나서 정치생명을 위협할 경우 아낌없이 서로에 게 협조했으며 평화시 양인의 이해가 갈리는 대목에선 결사의 대결을 벌 여왔다.

68년 5월 신민당 원내총무 지명전과 69년 11월8일 열린 신민당 대통령후 보 지명전은 양김 대결사의 첫장을 여는 대형 이벤트였다. 결과는 YS와 D J가 승리와 패배를 한번씩 주고받는 것으로 끝났다.

79년 5월30일 전당대회는 공동의 적을 향해 두 사람의 협력이 당시 박정 희 정권에 일침을 가했던 행사였다. YS가 이철승 당시 대표최고위원을 누 르고 당권을 장악하는 데 DJ가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협력관계는 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무주공산의 대권 앞 에서 졸지에 철저한 대결관계로 돌아섰다. 이들의 대결은 5�17 비상계엄 확대를 통한 신군부 등장의 빌미만 제공한채 양인의 패배로 끝났다.

이들은 다시 나타난 공동의 적 앞에서 새로운 협력을 모색한다. 83년 ‘8 �15 공동 성명’을 통해 80년 분열을 사죄하고 민주화를 향한 협력을 다 짐하고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 85년 12�12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러나 87년 6월항쟁의 성과물 앞에서 다시금 대결로 돌아선다.

90년 1월20일 YS와 JP의 협력과 경쟁이 시작됐다. 구국의 결단이라는 3당 합당을 통해 한배를 탄 것이다. 그야말로 오월동주였다. 그리고 YS와 DJ 는 여당과 야당으로 갈라져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공동의 적 앞에서 적 절히 협력했다.

90년 10월 당시 평민당 총재인 DJ의 단식농성장에서 있었던 두 김씨의 ‘ 대선 이전 지자세 실시’ 밀약은 그 대표적 실례다. 당내 계파간의 역학 관계로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던 YS는 이 일을 계기로 여권 내 주도권을 확 보하게 됐다. 이어 91년 4월1일 대구에서 열린 ‘나라를 위한 기도회’에 서 두김은 “공안통치 타파, 내각제 개헌 반대” 등 5개항에 전격 합의해 노태우 정권의 내각제 개헌 의도를 깨고 양인의 정국주도권을 회복했다.

92년 대선으로 양인의 대결은 끝나는 듯했다. YS는 DJ를 정치적으로 끝장 내려 부단히 애썼고 DJ는 YS의 입지를 흔드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번 한보사태로 YS가 치명상을 입고 그 여파가 다른 김씨들에게도 미치 자 지난 4월1일 정상회담을 통해 도전세력의 제압을 위한 제한적 협력의 길을 가고 있다. JP는 이번에도 역시 종속변수였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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