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1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더욱 솟구치는 총파업 물결

(사진/연휴를 지내면 약해지리라 예상됐던 노동계의 파업열기가 해를 넘겨서도 더욱 확산되고 있어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날치기노동법으로 인해 빚어진 대한민국 수립 이후 최초의 전국적 총파업 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예상 밖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번 총파업은 중산층과 사회단체, 지식인까지를 아우르는 전국민적인 저 항으로 이어지고 있어 정부 당국의 강경대응 여부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임금협상과 단체협약 체결은 물론 대선국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파업열기 예상 뒤엎고 연휴 이후에도 가열

지난해 12월26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신한국당의 날치기에 대한 즉 각적인 반발로 시작된 총파업은 일부 언론의 예상과는 달리 그 열기와 참 여도가 뜻밖에 커 정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새해 연휴 이후에는 열기가 식을 것이라고 예상하던 정부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주노총 산하의 대규모 사업장과 공공부문 사업장의 파업 열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노총이 1월11일 이후 총파업 재개를 선언해놓고 있는 상태라 정부 당국의 대응정도에 따라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정치투쟁의 성격을 띤 이번 총파업이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날치기 통과라는 형식이 중산층을 포함한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부정적으 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1천2백만 노동자와 2천5백만 봉급생활자들의 노동 환경과 생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처리했다는 데 대한 부정적인 국민여론은 좀처럼 수 그러들지 않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데서 ‘폭거’나 ‘쿠데 타’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고,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위원장 현승종)에 참여했던 전문위원들마저 더이상 들러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노개위를 떠나고 있다. 날치기 처리 당일부터 바로 총파업을 시작한 점, 2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불법’이라는 멍에를 무릅쓰고 파업을 지속하고 있는 점, 또 노동운동조직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는 전 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위원장 권영길)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총·위원장 박인상)의 연대투쟁이 현실화하고 있는 점 등은 이런 분노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 이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변 호사 등 양심적 지식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넥타이 부대라 불리는 사무직노동자들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근거로 ‘제2의 6월 항쟁’ 같은 전국민적 저항운동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진단을 내리는 이들까지 있다.

그러나 날치기라는 형식의 문제보다 더욱 큰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노동 법이 담고 있는 자본편향적인 내용이다. 먼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연 합(UN), 경제협력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기준과 규범을 준 수하여 노동탄압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자는 노동법 개정의 초기 목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과거 군사독 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킨 뒤 만들어놓은 독소조항도 대부분 그대로 유지 됐다는 것이다. 국민대 이광택 교수(법학)는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개정내용은 가장 핵심적인 과제인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단 일노조 강제조항의 폐지(복수노조의 허용), 제3자개입금지조항의 폐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금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한 것이 없다 ”며 “참여와 협력을 기치로 내세웠던 신노사관계 구상은 이제 허구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서울대 김세균 교수(정치학)도 “민 주노조운동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내용의 이번 노동관계법의 개악 안 날치기 통과로 김영삼 정권의 수구반동화는 이제 더이상 돌이킬 수 없 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노동자를 속였다”

국제기준과 규범에 미치지 못하는 점과 함께 변형근로시간제와 정리해고 제의 도입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악화시키는 내용도 날치기노 동법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 로시간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변형근로시 간제로 노동자들은 졸지에 그동안 지급받던 연장근로수당을 빼앗기게 됐 다. 사업장에 따라서는 평균 20만~40만원까지 임금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 석도 잇따르고 있다. “선진국에서 변형근로시간은 임금저하 없이 근로시 간의 단축과 연계해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법은 근로시간의 단 축에 관한 아무런 계획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오로지 시간외근로수당의 삭 감만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농업을 제외한 전 산업 평균근로 시간이 주당 47.7시간(제조업은 49.2시간, 95년 말 현재)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수준이기 때문에 변형근로시간의 부활이 아니라 법정 상한 근로 시간인 44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게 이 광택 교수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재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정리 해고제도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에 기름을 끼얹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장 에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식의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경영행태 를 부추겨 고용불안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노총쪽은 개악된 20여개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노동법을 시행해 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날치기노동법을 정부의 일정대로 3 월1일부터 그대로 시행한다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법개정의 목표와는 달리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이 떨어지고 상실감이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실 제 날치기 이후 일부 기업들에서 사용자가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 하고 탈퇴하지 않으면 정리해고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어 노동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 또 노조 전임자의 인사는 사전에 노사합의에 따라야 하는데도 일방적으로 전임자 수를 축소시키고 노조사 무실을 폐쇄하는 등의 노조 무시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날치기노동법의 해악이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행도 되기 전에 이 정도면 본격적으 로 시행에 들어갈 때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인 목표로 총파업을 벌이는 것이 불법이라는 정부의 논 리도 궁색해지고 있다. 이번 파업은 근로관계, 근로조건에 밀접하게 관련 이 있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정치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는 등식 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지난해 겨울 프랑스 공공부문 5백만 노동자 는 쥐페 총리의 ‘연금제도를 개정하겠다’는 말 한마디에 즉각 파업을 시작해 프랑스의 모든 교통수단을 끊었다. 1920년 독일에서 바이마르공화 국을 무너뜨리려는 군사쿠데타를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막은 이래 민주 적 기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총파업은 정당한 것으로 돼 있다.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나라들은 모두 그런 법해석을 따른다. 날치기노동법 중 ‘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나 ‘파업시 대체 근로 허용’ 조항 등은 헌법파괴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이번 파업은 사실상 헌법 수호 차원 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법학자는 이번 파업이 민주질 서를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시각을 보였다.

노동계 정치세력화와 노동계 통합 논의 활발

한편 총파업은 노동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양대 노동단체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위상에 변화가 예상된다. 조합원 수(한국노총 1백20만여명, 민주노총 50만여명)에서는 한국노총이 앞서지 만, 지난해 말부터 실제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총쪽이다. 투 쟁력과 조직력의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87년 노 동자대투쟁 이후 10년 동안 이뤄진 민주노조운동의 경험 덕분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복수노조 허용을 전면 유예한 것이 민주노총에 치명 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정작 민주노총쪽은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민주노총의 김유선 정책국장은 “이런 내용의 법을 두고 합법화가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부의 무리수가 파업에 더 큰 명분을 줬고 투쟁의 방향도 명확하게 해줬다”고 밝혔다. ‘절름발 이 합법화’가 가져올 수 있는 조직 내부의 이견을 정부의 날치기 처리가 정리시켰다는 것이다. 총파업을 통해 민주노총은 명확한 사회적 실체를 가진 조직으로 국민들 앞에 각인되게 됐다.

또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노동계 통합에 대한 논 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은 “이번 총파 업은, 노동자들이 높은 수준에서 전국적 단결을 이뤄내야 정치세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개별 기업 단위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 문제 등 정치세력화의 논의가 활발해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어쨌든 총파업의 파장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업의 파고가 더 높아지고 국민여론이 더욱 악화되면 정부가 한발 물러설 가능 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애초 의도했던 것이 노동운 동 탄압을 통한 공안정국 조성과 보수적인 분위기 확산이라는 점으로 미 뤄볼 때 강경대응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정부·여당 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번 날치기는 김영삼 정권의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노동계는 이번 총파업을 임금협상과 단체협약과 연계시키고 대선 에까지 연계시키는 전략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전국적인 총파업투쟁이 끝나더라도 개별사업장 단위에서는 노동법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날치기노동법의 철회나 개정 없이는 등을 돌린 노동자들의 마음 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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