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청와대 입성 꿈꾸는 ‘왕손’

이홍구 대표는 1934년 중소사업가인 부친 이봉훈(90년 사망)씨와 모친 주 인임(78년 사망)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주 이씨 영산군파인 그의 집 안은 조선조 성종의 13남인 영산군의 후손으로 이 대표는 영산군파의 15 대 종손이다. 그의 본적지는 진관외동이지만 모친이 친정인 경기도 장단 에서 출산을 준비하다가 개성으로 나와 해산하는 바람에 출생지는 개성이 다.

부친이 41년 서울 종로로 이사하면서 재동국민학교에 입학했다. 47년에는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으며 53년 부산에 피난해 있다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에 입학했다. 그와 경기 49회 동창생으로는 이회창 신 한국당 고문과 이세중 전 대한변협회장, 최광수 전 외무부 장관 등이 있 다.

그는 이듬해인 54년 미국 에모리대로 유학을 떠났으나 결핵을 앓아 2년간 휴학했다. 유학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34살인 68년에 귀국함으로써 군대 를 가지 않았다.

59년 에모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예일대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했으며 60년에 정치학과로 전과했다. 63년에 예일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 친 그는 에모리대 정치학 조교수로 취임했고 다음해에는 웨스턴리버스대 학교로 전임했다. 68년 예일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한 그는 곧바로 귀국해 서울대와 고려대, 육사 등에 출강한다.

69년 서울대 교양과정부 조교수가 된 그는 이현경 여사와 결혼을 했다. 7 0년에는 장녀 소영씨가, 71년에는 차녀 민영씨가 출생했다. 또 71년에는 서울대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로 전임했다.

73~74년은 미국에서 우드로 윌슨 연구소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연구위원 을 지냈다. 74년에 장남 현우씨가 출생했다. 75년 서울대 부교수로 승진 했으나 76년 이현경 여사와 사별했다.

78년에는 박한옥 여사와 재혼했으며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장이 됐다. 80 년에는 서울대 교수로 승진했다. 83년 한국공산권연구협의회 회장을 지낸 데 이어 85년 한국정치학회 회장으로 뽑혔다.

정치학 교수의 길을 걷던 그는 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통일원 장 관으로 발탁돼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90년 3월까지 장관을 지낸 뒤 12월에는 대통령 정치담당특보에 임명됐고 91년 2월 주영 대사로 나가 김 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인 93년 4월까지 영국에 머물렀다.

김영삼 정권 아래서 그는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93년 6월~94년 5 월) 21세기위원장(93년 9월~94년 5월)을 지냈다.

94년 5월 이회창 총리가 김 대통령과의 불화 끝에 퇴임하고 이영덕 통일 부총리가 총리로 발탁되면서 그는 통일 부총리로 임명됐다. 이어 94년 12 월부터 95년 12월까지 국무총리를 지냈다.

총선 직전인 96년 1월 신한국당에 입당해 선대위 고문을 맡으면서 정치인 으로 변신한 그는 선거가 끝난 뒤 5월7일 당 대표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한용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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