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3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왜 기름값에 날개를 다는가

정부가 올리고 업계도 올리니 소비자들만 죽을 맛이다. 기름값 말이다. 지난 1월1일 유가가 자유화되면서 휘발유 등유 경유 등 석유제품값이 평 균 6.3% 올랐다. 이 가운데서도 소비자들은 특히 휘발유값 인상에 민감하 게 반응하고 있다.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은 1l당 종전 8백15원에서 이번에 업체에 따라 8백22~8백28원으로 올랐다. 지난 연말까지는 유공 LG 한화 쌍용 현대(이상 시장점유율순) 등 5개 정유사의 휘발유값이 정부 고시가 에 묶여 8백15원으로 똑같았으나 유가가 자유화되면서 업체별로 가격 차 이가 다소 생겼다.

휘발유값 1년 새 32.5% 인상

유공이 8백28원, LG 한화 현대가 8백27원, 쌍용이 8백22원이다. 8백27원 을 기준으로 할 때 이번 휘발유값 인상폭은 1.5%로 10.7%인 등유나 8.9% 인 경유와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그러나 휘발유값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 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동차 보급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휘발유 값 인상은 바로 피부에 와 닿는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수차례에 걸쳐 대 폭 오른 휘발유값이 해가 바뀌기가 무섭게 또 올랐으니 해도해도 너무한 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소비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휘발유값이 지난해 1월1일 1l당 6백24원이었으니 정확히 1 년 새 무려 2백3원 오른 것이다. 32.5%나 인상됐다(그래프 참조).

왜 이렇게 휘발유값이 오르는 것일까. 물론 올릴 때마다 정부와 업체들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댔다.

먼저 지난 1월1일의 인상부터 살펴보자. 유가 자유화. 말 그대로 기름값 을 업체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업체들 사이에 시장쟁탈전 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결정이 자유롭게 되면 가격 경 쟁이 불가피하게 되고 가격이 떨어지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유업계 는 가격자유화가 시작되자마자 거꾸로 가격을 올렸다.

“정유업계의 현실이 가격을 내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정유업체들은 그동안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유가 결정에서 수송비와 정제비 등을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아 적자가 누적돼 왔다. 앞으로 경영합리화 등을 통 해 가격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정유업 체 관계자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얘기다.

정유업계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정유업체들은 정유사 업 부문에서 95년 업체별로 4백억~6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역시 적지 않은 적자를 냈으나 연속 적자 기록을 피하기 위해 감가상각 방식을 바꿔 장부상으론 적자를 모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적자는 정부의 비현 실적 유가 책정 방식 외에 업체들의 공급 과잉과 주유소 쟁탈전에 따른 외상 매출 증대 및 과도한 광고·판촉 등 경영 잘못도 원인이다. 정유업 체들뿐 아니라 주유소들도 출혈경쟁의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93년 11월 6대 도시를 시작으로 주유소 거리제한이 단계적으로 풀리면서 주유 소 수가 급증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93년 말 6천2백12개였던 전 국 주유소 수는 지난해 11월 현재 8천9백6개에 이르고 있다. 정유업체들 과 주유소들이 가격자유화를 계기로 유가를 인상해 그동안의 손실을 보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금 높인다고 소비가 줄지는 않는다

통상산업부도 이번 휘발유값 인상 중 절반은 국제 원유가 인상과 환율 상 승에 따른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정유업체와 주유소 몫으로 분석하고 있 다. 정부의 비현실적 유가정책과 업계의 무책임한 경영이 소비자들의 부 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런 이유라면 앞으로 유가는 당분간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와 정유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통산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통제하에 있던 유가 현실화 요 인이 가격자유화가 되면서 분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인들 이 앞으로 3~6개월 정도 계속 유가에 반영된 뒤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급격한 유가 인상을 정부에서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물가안정 차원에서 그동안 유가 책정에서 현실 반영을 억제해왔다는 정부 지만 그러나 지난해 휘발유값 인상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정부가 휘발유 관련 세금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우리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은 게 아니라 세금을 넣고 있다 . 8백27원을 기준으로 교통세 4백14원, 교육세 62원, 부가가치세가 69원 으로 휘발유 1l에 세금이 모두 5백45원 붙는다. 휘발유값의 65.9%가 세금 인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휘발유 관련 세금을 대폭 올렸다. 1년 새 휘발유 1l에 부과되는 세금이 3백96원에서 5백45원으로 늘어났다. 우선 정부는 지난해 7월 휘발유에 교통세의 15%에 해당되는 교육세를 새로 부 과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 1l의 값이 6백41원에서 7백7원으로 10.3% 인상 됐다. 정부는 다시 지난해 12월14일 교통세를 종전 1l당 3백45원에서 4백 14원으로 올렸다. 교통세 인상으로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마저 따라 오르면 서 휘발유값는 1l당 7백27원에서 8백15원으로 올랐다.

정부는 휘발유 관련 세금을 올릴 때마다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고 교통난 과 환경오염을 줄이고 교통관련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서는 고유가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비산유국인 우리나라의 휘 발유값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싸다는 자료를 함께 제시하면서 말이다 .

그렇다면 휘발유 관련 세금의 대폭적 인상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뒀는가. 정부는 휘발유의 가격탄력성이 0.2라는 에너지연구원의 분석을 근거로 휘 발유 가격을 10% 올리면 수요가 2%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만 성공했다.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휘발유에 부과되는 교통세로만 95년 2조2천8백억원, 지난해는 3조6천억원 을 징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대했던 에너지 소비 억제는 적어도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 다. 지난해 7월1일 휘발유 가격이 10.3% 인상됐던 시점을 기준으로 살펴 보자. 값 인상을 앞두고 국내 휘발유 소비량이 급증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5월 5백40만9천배럴이던 휘발유 소비량이 가격 인상을 앞둔 6월 6 백36만7천배럴로 늘어났다. 그리고 가격이 인상된 7월에는 5백32만배럴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8월 들어 다시 5백55만7천배럴로 늘었고 9월엔 6백3 6만1천배럴로 가격 인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가격 인상이 일주일 정도는 영향을 미친다. 7월1일 가격 인상을 한다면 하루 이틀 전에 기름을 가득 채우니까 6월에는 소비가 늘고 당연히 7월에 는 줄어든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서울 중구 의 한 주유소 총무부장 김아무개(33)씨의 얘기다.

결국 휘발유 관련 세금 인상은 에너지 소비 억제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소비자들의 부담만 커지게 했다. 특히 휘발유 관련 세금은 간접세인 까닭 에 서민들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가중시켰다. 자동차를 생업수단으로 삼는 영세사업자들이나 부실한 대중교통수단 때문에 출퇴근을 승용차에 의존해 야 하는 자가운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휘발유값 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을지로에서 타일 도매상을 하는 이아무개(35)씨는 “일년 전에는 휘발유 를 가득 채우는 데 3만원이면 됐는데 지금은 4만원이 조금 더 나온다”며 “지난해 초와 비교할 때 기름값만 한달에 6만원 정도씩 더 들게 됐다” 고 말했다. 구리시에서 점포가 있는 을지로 3가까지 출퇴근을 하고 수시 로 거래처나 공사현장을 찾아가야 하는 그에게 승용차는 생계수단이다.

교통서비스는 후진국 기름값은 선진국

잇따른 휘발유값 인상 덕분에 이제 우리나라는 휘발유값 부문에선 단연 선진국 이 됐다. 96년 11월 기준으로 휘발유 1l당 미국은 2백77원, 대만 은 4백69원, 일본은 7백37원, 영국(96년 10월 기준)은 8백8원으로 8백27 원인 우리보다 싸다. 우리보다 비싼 곳은 1천7원인 프랑스와 8백97원인 독일 정도다.

그럼에도 정부의 고유가 정책 의지는 확고하다. 한승수 부총리는 신년사 에서 “경상수지 적자와 에너지 소비 억제를 위해 에너지 절약 시책을 강 도높게 추진하겠다”며 고유가 정책을 계속 밀고나갈 것임을 밝혔다. 이 런 분위기라면 지난해 도입이 추진되다 보류됐던 주행세와 환경세 부과 문제가 언제 또다시 제기될지 모른다.

에너지소비를 억제해 교통난을 해소하고 환경오염과 경상수지 적자를 축 소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다. 엄청난 세금을 매 기고 값을 올려 소비를 줄이겠다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대졸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취업세를 신설하고 입시지옥을 해소하기 위 해 입시세를 부과하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다. 기대했던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부작용만 나타나게 된다. 높은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은 자리에 걸 맞은 일을 하라는 것이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일을 내키는 대로 하 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안재승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