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도서관은 첨단 문화시설

(사진/"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니다." `도서관운동연구회'는 정보가 민주적으로 공유되는 도서관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새해 도서관을 찾는 이혜연(27)씨의 발걸음은 무겁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도서관 사서직 관장제’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 다. 도서관의 전문화를 위해 도입된 이 제도의 핵심은, 새해부터 도서관 장에 사서직 출신을 임명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 정부가 상당수 도서관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행정직 공무원을 들어앉혔다. 남산도 서관만 해도 행정직 공무원이 새 관장에 임명됐다.“공무원의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도서관장 자리가 이용된 느낌입니다. 도서관을 아는 사람에게 도서관을 맡기자는 사서직 관장제의 취지가 사라진 거죠.”

그의 실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부터 제도상 행정직 공무원이 도 서관장을 맡을 수 없게 되자“정부가 관장의 직급을 낮춰 권한을 축소하 려 한다”는 것이다. 현재 도서관장의 직급은 도서관의 열람석수로 정해 진다. 이 때문에 좌석수가 많은 큰 공공도서관은 2급 공무원이 관장을 맡 고 있지만, 지방의 작은 공공도서관은 3~4급 공무원이 관장을 맡는다. 한 데 정부가 사서를 관장에 임명하면서 직급을 일률적으로 낮추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5~6급의 사서를 관장에 임명하고, 관장의 권한도 줄이 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서직 관장의 활동범위는 크게 줄어들 겁니다.”

사서직 관장제에 대한 이씨의 이런 관심은, 이 제도만이 도서관의 전문화 와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 한 이씨는 한 전문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면서 우리 도서관이 안고 있는 문 제에 눈을 떴다. “지금 우리 국민이 일인당 보유하고 있는 공공장서수는 0.3권에 불과합니다. 일년에 국가가 국민들의 독서를 위해 지불하고 있는 비용도 100원 정도입니다. 이러니 집 주변의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 들은 극소수입니다. 게다가 도서관 하면 먼저 입시생들이 공부하는 독서 실을 떠올립니다. 도서관이 정보를 교류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말은 환상이죠.”

하지만 이런 현실 앞에서 사서 이씨는 무력했다. 도서관에 투자하는 게 당장 표나는 사업이 아니다 보니, 감히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뿐아니라 전 문도서관에서도 사서직을 뽑을 때 정식채용이 아닌 계약직이나 아르바이 트직을 선호합니다. 자연히 사서들은 자료입력과 같은 단순한 업무 밖에 는 할 수 없게 됩니다. 대학에선 ‘어떻게 하면 인류의 문화유산을 잘 보 존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 혜택을 전할까’를 고민하다, 막상 직장에선 ‘ 컴퓨터에 입력한 자료가 다운되지나 않을까’를 걱정하는 상황이죠.”

이씨는 결국 지난 95년 2월, 주변에서 같은 고민을 하던 동료 사서 5명과 ‘도서관운동연구회’를 창립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도서 관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구회는 이때부터 도서관의 민주화와 전문화를 이루는 방안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펼치 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94년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이 만들어지 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새 법에 따라 도서관이 교육부 산하에서 문화부 산하로 들어감으로써. 도서관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앞으로 2년 동안 도서관 시설과 장서, 사서 인력을 현실에 맞게 늘리고, 97년부터는 사서직 관장을 둔다는 것이 변신의 핵심이었다.

“요즘 전자도서관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하다못해 책이 5백권 정도인 기업도서관마저도 전산화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도서관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 우선은 도서관의 권위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두어 누구나 친근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 니다. 열람석 위주의 관리에서 벗어나 정보가 민주적으로 공유되도록 도 서관을 운영해야 하는 거죠. 사서직 관장제는 그런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그녀는 지금 대학 때 읽었던 <도서관 통론>이 맨 앞장에서 가르치던 문구 를 기억한다. “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다.”

이상엽/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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