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 부부의 ‘작은 세상’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나를 부르지 말아다오"

대학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학생들의 삐삐 소리에 방해를 받곤 한다 . 물론 삐삐가 울린 학생은 무안해서 씩 웃긴 하지만. 예전에 여성문화예 술기획에서 연극 기획을 할 때 관객들에게 “입장하시기 전에 삐삐는 꺼 주세요”하고 당부했던 일이 생각난다. 자신은 무심코 사용하지만 집중을 요하는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삐삐는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고픈 사람들에게 아주 필요한 물건인 듯싶다. 예를 들어 아무개가 불현듯 보고 싶어졌을 때, 과연 그가 어디 있는지 파악이 안 될 때, 삐삐 한번이면 곧 그 사람과 연락이 되고 바로 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아마 많은 미혼의 젊은이들이 삐삐를 일 상용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렇기 때문에 불 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은데 삐삐가 울린다면 과 연 그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삐삐를 쳤건만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상대방이 따지기라도 한다면?

하지만 이제 삐삐는 꼭 젊은이들만의 애용품은 아니다. 항상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삐삐도 모자라서 핸드폰을 들고 다 닐 정도가 되었다. 요즘은 거리든 전동차 안이든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 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들은 걸으면서 전화를 하고 달리는 차 안 에서 전화를 받는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소리에 질려 집 밖에서나 마 전화소리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는 내가 보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만 한 현상이다.

삐삐가 없는 나는 나처럼 삐삐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 남편으로부 터 얼마 전 불평 아닌 불평을 들어야 했다. 한국영화연구소에 가 있는 나 를 남편은 용케 찾아내서는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 때문에(그게 대부분 은 나를 찾는 전화인데)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성화를 댔던 것이다. 내용 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기까지 전화를 해서 나는 찾는 남편의 애정(?)을 놀렸지만 나는 사실 그 전화를 받고 등이 오싹했던 것이다. 그것은 남편 이 자기가 내 전화받는 비서도 아닌데 나중에 메모 전하지 않았다고 투덜 대지 말고 집에서 전화를 받든지 아니면 남들처럼 삐삐라도 하나 사든지 하라고 요구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남편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내가 누군가의 그물망(설령 그가 남편이라고 하더라도)에 언제든지 걸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그 전화로 내가 삐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역설적 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걸을 때, 전동차 안에서 원고의 가닥을 잡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갑자기 삐삐가 울린다면 그것처럼 당혹스러운 일도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이 바쁘게만 돌아갈 때 그 속도감을 때로는 거스르고 때로는 늦추는 것도 살아가는 즐거움일 수 있다는 생각 이 든다. 그것이 불편을 가져올지라도.

변재란/ 영화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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