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희망의 사람들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니카라과 사회봉사단체 ‘레마르’

(사진/니카라과 수도 마나과 인구 70여만명 가운데 3만여명이 거리의 어린이들이다. 허름한 판자집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말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의 밤거리. 이미 버스가 끊어졌을 늦은 시각인데도 거리엔 소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마나과시 중심대 로 중 하나인 센트로 아메리카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도 대여섯의 여자아 이들이 소녀 특유의 재잘거림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 있다.

‘뭐하는 얘들일까. 집엔 어떻게 가려고 저러고 있을까.’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제 10살이 갓 넘었을 것 같은 그 ‘아 이’들이 무엇 때문에 거리로 나왔는지 곧 드러난다. 바로 매춘이다. 소 녀들은 지나가는 자가용에 손을 흔들고, 자가용의 남자가 그중 한 소녀를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마 모텔로 향하는 길이리라.


매춘부 20% 차지하는 10대 초반 소녀들

버스정류장에서 좀 떨어진 곳의 10살 남짓의 두 소녀에게 말을 걸자 그들 은 자신들이 자매라고 소개한다.

“저는 14살이고, 제 동생은 13살이에요. 집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어머닌 일이 없어요. 우리들의 수입으로 가정생활을 꾸려가죠.”

도저히 14살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거짓말’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 다. 10코르도바(1코르도바는 약 1백원)에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한 이들이 말을 계속 이어간다.

“손님은 1주일에 3~4명 정도예요. 한 8백~1천2백코르도바 정도를 벌어요 . 이 일을 시작한 지는 2년이 조금 넘었구요.”

소녀의 말에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갓 10살을 넘었을 나이인데 벌써 2년 이나 매춘부 노릇을 했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매춘을 시작했단 말인가. 하 지만 소녀 매춘의 보편화 정도는, 이런 어린 매춘부들이 마나과 밤거리 전체 매춘부의 20%가 넘는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소녀 매춘은 니카라과의 커다란 사회문제인 ‘거리의 아이들’(En La C alle)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소녀매춘을 포함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죄 ’가 있다면 ‘가난하다’는 것이죠.”

마나과 시내에 있는 사회봉사단체 ‘레마르’(Remar)의 총무 호세 마리아 가르시아 히롤(29)의 말이다.

중남미의 니카라과는 그의 말마따나 정말 가난한 나라다. 지난 79년 독재 자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리고 산디니스타혁명이 성공했을 때,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었었다. 독재의 청산으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철저한 봉쇄정책과 기업철수는 경제를 날로 어렵 게 만들었다. 외국 기업의 철수와 투자 봉쇄는 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 앗았고, 또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 반군과의 오랜 내전도 경제의 어 려움을 가중시켰다. 많은 사람은 이런 경제적 어려움이 지난 90년 산디니 스타 정부가 정권을 잃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대선에서 산디니스타의 다니엘 오르테가 후보를 물리치고 대 통령에 당선된 자유연맹의 아르놀도 알레망도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경제 문제 해결임을 공식화하고 있다. 어찌 됐건 어른들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 는 니카라과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어린이들을 돈벌이를 위해 거리로 몰아 낸 것이다.

스페인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세계 곳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레마르는 어려운 가계 탓에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의 구제사업과 함께 이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도록 노력하는 단체다. 레마르는 스페인말로 ‘나아가다’, ‘저어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리서 생존경쟁 체험… 쓰레기더미를 일터로

(사진/`레마르'는 거리의 아이들이 가진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 ‘En La Calle’는 원래 스페인어로 ‘거리에서’라는 뜻을 가진 단어 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거리의 아이들’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됩 니다. 가난 때문에, 부모의 학대에 못 이겨서, 혹은 80년대 내내 계속된 내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에 게 거리는 단순히 놀이공간이 아니고, 유일한 수입원이고, 생존경쟁을 체 험적으로 체득하는 곳입니다.”

레마르는 이런 ‘거리의 아이들’이 전체 인구 70만명인 마나과에서 3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상당수가 거리로 내몰리 고 있다는 말이다.

‘거리의 아이들’이 생존해나가는 방법도 다양하다. 히롤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밤거리가 여자아이들의 생활공간이라면 낮은 주로 남자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곳이 됩니다. 마나과 호수 근처 쓰레기처리장도 어린이 들이 생존을 꾸려가는 대표적인 현장 중 하나죠. 70만 마나과인들의 생활 폐기물이 모이는 이곳에는 언제나 수많은 소떼가 개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쓰레기처리장에서는 또 기다란 쇠꼬챙이 하나 씩을 잡은 아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더미에서 나온 재활 용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 대열에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빠지지는 않는 거죠.”

이곳만이 아니다. 마나과 시내의 도로 곳곳이 모두 이 ‘거리의 아이들’ 의 삶의 공간이 되고 있다. 어느 거리에서건 비닐로 포장된 냉수, 과자류 , 온갖 잡화물, 표범의 새끼부터 시작해서 원숭이, 너구리, 개, 앵무새 등 각종 동물이나 조류 등을 손에 든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 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차량들 사이사이를 흡사 곡예사와 같이 움직 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판다. 또 양동이에 비눗물을 가득 채우 고 손잡이가 달린 고무걸레로 차유리를 닦아주고 청소비를 요구하는 아이 들도 많다. 실업률이 극도로 높은 니카라과에서 이런 일들만이 어른의 방 해를 받지 않는 어린이들의 ‘고유사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네살배기 아이가 구걸로 돈을 벌기도 한다.

거리의 환경이 어린아이들에게 좋을 리가 결코 없다. 그래서 이들은 몇푼 의 돈벌이를 하는 대신 마약과 폭력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실제로 마나 과 시내 ‘죽음의 골목’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본드와 마약성 물질에 취한 채 길바닥에 누워 인사불성이 돼 누워 있다. 폐허가 된 이 거리의 건물에는 또 상습적인 본드 흡입으로 코 밑 부위가 시커멓게 변한 10살 아이가 어둠침침한 건물 구석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일부는 어렵사리 번 잔돈푼을 길거리 노름으로 날리는 아이들도 많다. 또 절도, 폭력도 빈번하다. 거리의 소녀 들의 경우 강간사건의 희생이 되는 경우도 많다.


매일 8백명분 점심 제공하며 기술교육도

“이들에게 왜 본드를 하는가 하고 물어보십시오. ‘배고픔을 잊는 데 본 드가 밥값보다 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이들이 단돈 몇푼에 몸과 마음을 다 망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도움이 절실합 니다.”

히롤의 말에 힘이 들어간다. 아마 레마르의 갱생치료를 받고 ‘사회에 돌 아오기’ 이전에 그 자신도 거리의 아이로 마약에 중독돼 방황했던 생생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니카라과에 레마르가 생긴 것은 지난 92년 6명의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 해서입니다. 우리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학대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니카라과에서는 특히 어린이들의 소 외가 심각합니다. 특히 소녀들의 매춘 문제는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하 지만 아직 우리들의 활동이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데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히롤의 겸손한 말과는 달리 레마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결코 작지 않 다. 레마르는 매일 8백명분의 점심식사를 거리의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 으며, 매일 오후 거리의 아이들이 몰려 있는 대표적 장소인 쓰레기처리장 을 방문해 이들의 질병을 치료해주고 있다. 이때 매춘소녀들도 이 방문진 료소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은 본부 사 무실에 마련된 의료실로 데려와 치료를 해준다. 또 농장과 갱생원, 기술 학교, 고아원 등 총 7개의 부설 건물을 가지고 있다. 기술학교에서는 자 동차정비, 목공, 용접 등 남자아이들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술을 주 로 가르치는 곳이라면, 고아원은 매춘소녀와 관련된 곳이다. 이곳에 수용 된 어린이들 대부분이 매춘소녀가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또 갱생원 에서는 마약이나 알코올중독 아이들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들을 하 고 있다.

레마르가 현재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일은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이다. 육체의 상처 못지 않게 영혼의 상처도 큰 ‘거리의 아이 들’을 위해 ‘정신의 치유장소’를 만들어줄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본 몇몇의 매춘소녀도 미래는 현재와 다를 것이라는 꿈을 가지 고 있었고, 그 매개고리를 ‘공부’로 여기고 있었다. 이들에게 “삶을 바꾸고 싶지 않느냐”고 묻으면 거의 일치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예! 우리들의 미래는 현재와는 달랐으면 좋겠어요.”

거리의 아이들도 대부분이 장차 좋은 직장을 갖기를, 어느 한 분야의 전 문가가 되기를 원하며, 계속해서 공부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14살에 첫아이를 가졌고 지금은 두 아이의 어머니인 이전의 소녀매춘부 자밀렛(19)은 현재 낮에는 시장에서 허드렛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초등학 교 5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13살짜리 밤의 아이 마리아도 지금 무엇 이 제일 하고 싶으냐는 어찌 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질문에 배시시 웃 으며 ‘공부’라고 말한다. 공부한 뒤에는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얼른 나 온 대답이 “학교 선생님”이다.

“현재 학교건물 설계도를 가지고 여러 군데에서 기금모집을 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레마르의 운영자금이 농업농장과 기술학원에서 나오는 소량의 물품을 판 돈말고는 주로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큰돈이 들어 가는 학교건설 계획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읍니다.”


학교 건립으로 아이들 상처 치유한다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은 결코 니카라과의 치부일 수 없다. 이들을 사회 의 곪은 상처라고 비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들은 다만 내전으로, 미국 의 경제봉쇄로, 또 어른들의 불합리한 경제운영으로 고통받는 희생자일 뿐이다. ‘거리의 아이들’을 볼 때 이들을 단지 문제아로 바라볼 것인지 , 아니면 상처받았지만 그래도 내일의 니카라과의 모습을 바꿀 ‘희망’ 으로 볼 것인지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거리의 아이들’이 마 음의 상처를 고쳐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레마르의 학교 건 립계획이, 그 계획만으로도 큰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니카라과 마나과=노영수/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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