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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김진경/교육평론가 |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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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부엉이 둥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날개를 펴면 중 학생이던 내 덩치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 거대한 새가 어스름녘의 하늘을 향해 갑자기 날아올라 나는 기겁을 했는데 아버지는 매우 좋아하셨다. 아 버지는 싱글벙글하시면서 ‘부엉이의 산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부 엉이는 제 둥지에 토끼며 족제비 같은 짐승들을 많이 잡아다 놓는다. 그 런데 부엉이는 숫자를 셋까지밖에 세지 못하기 때문에 부엉이가 집을 비 웠을 때 세 마리만 남겨놓고 다 가져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부엉이 둥지 를 발견하면 수시로 잡아놓은 짐승들을 들고 올 수 있으니 횡재를 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파당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숫자를 셋까지밖에 셀 줄 모르는 게 어찌 부엉이뿐이겠는가. 역사적으로 보아도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놓고 보아도 열 중에 셋까지밖에 못 세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아 보인다.
구한말 우리 사회 내에서 가장 힘이 있었던 양반관료세력은 숫자를 셋까 지밖에 세지 못했다. 파당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마당에 파당의 이익이 지 켜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셋까지 세고 “음, 모든 것이 다 있군!”하고 만족하는 부엉이보다 나을 게 뭐가 있는가. 이완용은 이 숫자를 셋까지밖 에 세지 못한 양반관료세력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이들이 자기 파당의 이 익에만 눈이 어두워 더 큰 것을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36 년간 둥지를 들킨 부엉이처럼 열 중의 일곱은 빼앗기는 식민지의 삶을 감 수해야만 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서는 또 어떠했던가. 통일된 민족국가를 만드는가 분단되는가의 기로에서 힘을 가진 정치세력들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외 면한 채 자기 파당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부엉이의 산수’에 골몰하였 다. 그 당연한 결과로 분단이 되었고 우리 민족은 다시 50년이 넘게 둥지 를 들킨 부엉이의 삶을 감수해야만 했다.
신한국당이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12월26일 새벽 노동관계법 개정안과 안 기부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기습 통과시켰다. 노동관계법의 일반적 원칙까 지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대자본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안이기 때문에, 생산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도 언제 대책없이 해고되어 생활이 위협당할지 알 수 없는 안이기 때문에 노동계와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게다가 그러한 위협에 최소한이나마 대응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합법화마 저 3년 유예하여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하니 아무 방어수단 없이 당하 기만 해야 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법안들이 성안되고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은 더욱 분노를 살 만 한 것이다.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에 노동형태와 노사관계 양태를 변화시 킬 필요가 있다면 먼저 정치권은 정경유착의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자금 부터 투명화 합리화해야 할 것이며, 재벌부터 개혁을 통해 투명화 합리화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임금 구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과도한 주거비 용 문제,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 등을 과감한 사회개혁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이제까지 부당하게 제약당해온 노동자들의 방어장치인 단결권을 정상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정리해고제니 변형근로제니 하는 것들이 적정 수준에서 협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정치개혁, 재벌의 개혁문제를 회피했고, 미온적인 사회개혁마저 의지의 결여로 실패케 했다. 그러한 상태에서 노사개혁위원 회를 구성해 단결권 보장을 포함하여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를 노사 양 쪽과 공익위원들에게 협의토록 하였다. 그리고는 노개위의 합의사항과 공 익위원안 자체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부안을 만들었고 야당의 반발이 있자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날치기 통과의 촌 극을 연출했다. 대선에서의 파당적 이익에 집착하여 수구 공안세력, 재벌 과 손을 잡고 국민적 합의를 외면한 것이다. 전형적인 부엉이의 산수라 아니할 수 없다.
김 대통령은 어떻게 남고자 하는가
지금은 구한말이나 해방공간에 비견될 수 있는 세계사적 대격변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큰 주체를 형성하고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 가에 따라 앞으로 상당기간의 우리 운명이 좌우된다. 문민이나 개혁은 이 큰 주체의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파당의 이익에 집착하는 ‘부엉이 의 산수’를 장식하기 위해 있는 말이 아니다. 정치가 ‘부엉이의 산수’ 에 머물러 있으면 국민들이라도 ‘부엉이의 산수’에서 벗어나 큰 주체를 형성하고 전환기를 뚫고 나갈 힘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자구책이 아니 고는 도무지 둥지를 들킨 부엉이의 삶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국민들이 ‘부엉이의 산수’에서 벗어나는 길을 북돋우기는 커녕 막기 위
해 시대착오적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 대통
령으로 역사에 남고자 하는 것인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