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초선의원 시각/김민석/국회의원 국민회의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어서 빨리 정권을 바꾸자

한국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느 낌은 희망보다는 염증에 가깝다. 정치에 대해 희망을 품어볼 수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87년 6·27 이후, 또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 얼마 동안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정치발전과 민주화에 대해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87년의 희망은 야권단일화의 실패로, 김영삼 정권 초기의 희망은 김 대통령의 독선과 국정운영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총체적 난국으로, 결 국 실망과 배신감으로 끝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 국민이 갖 는 정치적 절망과 무력감은 바로 이러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의 국회는 ‘통법부’

지난번 총선거를 치르면서, 또 몇개월간의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어온 얘기는 “정치, 다 그런 거지, 이젠 지긋지긋해요”와 “젊은 사 람들이 새롭게 좀 잘해봐요”였다. 국민들은 정치적 냉소에 빠져 있으면 서도 또한편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라도 보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 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느끼는 염증의 실체는 ‘낡은 것’에 대한 지긋지 긋함이다. 정권교체 한번 없이 기득권층의 집권이 수십년간 연장되면서 유지되어온 부패구조, 지역차별과 갈등으로 점철된 정치구도, 여러 가지 정치적 관행- 즉 몸싸움과 날치기, 정치적 부정비리- 등이 모두 그 ‘낡 은 것’들이다.

1년도 채 못 되는 국회경험으로 말하기엔 다소 성급하다고 할 수도 있겠 지만, 현재의 국회는 통법부라는 비난을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게 되어 있 다. 우선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 대통령제로 성공한 미 국 대통령들의 자세와는 너무나 다르다. 다수당의 의사는 국회 심의가 시 작되기도 전에 이미 당정협의를 통해 고정되어 버린다. 정부는 수많은 법 률안과 예산·결산안을 처리 시한을 코앞에 두고 국회에 들이민다. 아무 리 야당의 방해를 핑계삼아도 국회법 자체를 무시한 날치기 통과 앞에선 어떠한 반대도 소용이 없다. 이래서는 통법부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다. 현대정치는 정당정치이다. 정당에 속해 있는 한 정치인은 자기가 속한 정 당 내에서 자신의 의사를 개진하고, 일단 큰 틀과 흐름이 정해지면 원칙 적 이견이 없는 한 당론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중대한 원칙적 차이가 있다면 개인적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현재 한국의 정당구조는 의사결정에 참여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문 제점을 가지고 있다. 좀더 광범한 의견수렴방식을 찾아야 한다.

희망의 정치는 근사한 이론이나 미사여구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우리 국 민은 이미 몇차례의 정치적 경험을 통해 한순간에 모든 정치적 불만을 해 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적 희망을 만드는 일은 현재의 정치구조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97대선은 정치구조 변화의 출발점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수십년간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여에서 야로의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여에서 야로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뿌 리깊은 부정부패 구조를 한번 흔들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수평적 정권 교체 없이 지역차별의 구조는 깨지지 않고, 지역차별의 구조를 깨서 탕평 적 인사를 펼치지 않는 한 지역적 정치구도는 계속된다.

97년 대선도 그저 그런 것이 아니냐는 얘기에는 사실상, 대선의 의미를 축소시켜 후보 개인의 얼굴에만 관심을 갖게 하여 정권교체의 의미를 희 석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누가 후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세 력이 정권을 잡느냐이다. 수십년의 여당집권을 깨고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든 ‘낡은 것’을 깨고 희망의 정치를 완성시키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출발이 될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일시적 격변이 아 니라 꾸준한 정치적 개혁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구조 변화의 출발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97년 대선의 의미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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