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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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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당한 기록적인 참패는 한 국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데도 유효한 사건이었다. 직장인들의 술자리에 서는 “한국 축구의 위상이 요즘 우리 수출경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진국에게는 기술력에 밀리고 후발 경쟁국들에게는 가격 경쟁이 밀려 고전하는 현실과 흡사하다는 비교다. 한국 축구의 패배는 일시적인 방심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국 축구의 구조적 허약성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정신력 체력 투 지 등 낡은 패러다임을 앞세운 축구로는 더이상의 발전이 없을 뿐 아니라 더욱 강력한 정신력 체력 투지에게도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질적인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공동개최, 월드컵 3회 연속 본선진출 등으로 외견상 선진축구의 문턱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문턱’이란 것이 지금까지 좁 혀온 거리의 총합보다 사실 훨씬 뛰어넘기 어려운 지력(전략 전술)과 기 술과 저변의 차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고도성장의 외형을 뒤덮은 거품에 취해 미래의 문제를 도외시했다. 침체가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창 조적 인력과 장기적 전망의 부재, 취약한 기술력으로는 더이상의 도약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시키고 있다.
한국이 현재 당면한 위기의 본질은 축구나 수출경제처럼 문제점을 알면서 도 눈앞의 이익(승부)에 급급한 나머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준비를 해오지 못한 데 있었던 것이 아닐까.
21세기를 향해 항진하는 ‘한국호’의 표류를 예고하는 경보음의 진원지 는 경제만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 선진국 진입관문이라 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화려한 쇼윈도 뒤에서는 계층, 지역 간의 분열음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치판은 제로섬 게임 같은 권력쟁탈전을 거듭하고, 만연되다시피 한 이기주의와 불신 풍조, 부정부 패가 우리 사회의 기반을 좀먹고 있다.
“이미 일류국가가 되고 있는 나라와 비교하는 경우, 현재의 우리처럼 일 차집단 위주의 행동, 권력형 부정 및 단기적인 눈가림, 거짓이 심한 나라 는 없다. 미봉적인 대책은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이미 한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한국인은 다시 한번 질적인 탈바꿈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 재의 한국인으로서는 일류국가를 이룩하기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박동서 서울대 명예교수).
박 교수만이 아니다. 21세기초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한 많은 장밋빛 청 사진에도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끊이지 않는다.
미래학자들은 정보화사회로 대표되는 21세기 문명을 창조적 지력과 기술 력이 국가-지역의 우열을 결정짓는 시대로 전망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창조적 인력의 양성과 첨단 과학기술의 확보를 위해 교육제도를 검토하는 것을 국가의 우선과제로 설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가.
이원영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10월 21세기국가발 전연구원 개원 기념토론회에서 “한국은 현재 세계최고 수준의 핵심기술 도, 과학기술의 넓은 저변도 갖고 있지 못하다. 지금과 같은 우수인력 부 족, 기초연구투자 부실로는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고 말하고 과학기술정 책의 획기적 결단을 호소했다.
그러나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방위비를 단번에 12% 이상 증액하는 결 단은 있어도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뒷걸음질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과학기술연구개발에 대한 정부부담률은 해마다 감소해 지난 94년에는 16% 로 30∼45% 이상인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 기업들의 연구 개발비용도 다른 나라의 기업에 비해 낮기는 마찬가지다.
창조력 질식시키는 암기식 교육
교육제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숱한 보고서들이 한국의 암기식 교육 이 미래의 핵심적 자질인 창조력과 상상력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지 만 입시교육의 틀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일류’ ‘이류’를 따진들 세계 5백대 안에 드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사교육비는 이제 국가예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20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 엄청난 국민적 에너지가 오로지 일류대 배지를 향해 퍼부어지고 있다. <대학을 없애야 우리가 산다>의 저자인 이항규 박사는 “현재의 교육제도 로는 선진국은커녕 오히려 퇴보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단언한 다. 그러나 교육개혁의 방향도 결국 입시제도의 테두리를 혁파하지는 못 하고 있다. 이 박사는 문제를 이런 장기적 과제를 강력히 추진해갈 비전 과 철학의 부재에서 찾는다. 철학이 없는 개혁은 학연, 지연에 따른 기득 권적 이해다툼과 경직된 관료주의, 권력 쟁취 위주의 정치논리 등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의 주요 나라들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21세기의 문명사적 변화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맞이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여기서 뒤 처지는 나라는 향후 그것을 만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미래학자 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총체적 국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21세기형 종 속관계를 새롭게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변화가 전면적이고 초국경적이라는 데 있다.
독일의 경우를 보자.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향후 20∼25년 사이에 세 계는 지난 1백년보다 훨씬 강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그 변화에 미리 대처하는 방법으로 독일국민에게 “생각을 바꾸기 위한 준비 ”를 제안했다. “낡은 습관과 자산은 검토하고, 사회와 경제의 많은 부 문에 새로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그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 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21세기를 주도해갈 초강대국의 독일에게도 미래전략의 제1요건은 ‘발상 의 전환’이다. 그리고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힐” 방안으로 국 민적 토론과 노력분담이 제시되고 있다. 독일은 콜의 지휘 아래 교육과 경제 및 조세 복지 노동 환경 분야에서 착실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 다(도서출판 밀알의 <21세기의 도전과 전략>).
우리에게도 목표와 전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대통령 직속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는 2020년에 세계 열강의 선진 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한국의 과제와 전망을 담은 방대한 보고서를 내 놓았다. 거의 모든 정부출연 연구소와 관련 민간연구소들이 내놓은 보고 서들은 대통령 집무실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남을 만할 것이다. 그 보고 서들이 한결같이 지향하는 한국의 목표는 ‘건실한 경제를 바탕으로 한 복지사회, 문화국가’이다. 그리고 한국이 자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우 선권을 주어야 할 과제로는 지속적인 민주주의의 확대, 경제경쟁력 확보 를 위한 창조적 인력 양성과 기술력의 배양, 인간중심의 가치관 정립 등 이 제시됐다.
30년 군부정치를 끝내고 문민시대를 연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 ‘신한 국 창조’의 꿈을 역설하고 개혁의 3대 과제로 부정부패의 척결, 경제 도 약, 국가기강의 확립 등을 설정했다.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하나 회 숙정, 쿠데타세력의 단죄 등 많은 면에서 가시적 조처들을 실행했고, 세계사적 조류에 발맞춰 ‘세계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토론과 설득 대신 날치기를 택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4년이 지난 지금, ‘신한국의 꿈’은 한낱 우스개로 희화화되고 있다. 개혁의 실종을 단언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 장기적인 접근은 굴절되기 일쑤고 단기적인 대안도 실효성 있게 추진되 고 있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향 한 비전으로 제시된 목표들이 근시안적 정략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현실은 미래 전망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96년 세밑 국민들을 경악시킨 정부 여당의 안기부법 개정안과 노동관계법 안 등의 새벽 기습처리는 그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바라는 것과 준비해야 할 것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집권 자들은 민주적 토론과 설득 대신 날치기 방식을 선택했다.
안기부법상의 찬양고무,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은 수사상 필요가 없어서 폐지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상 양심 언론의 자유라는 더 큰 가치의 수 호 필요성 때문에 폐지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그 조항을 날치기를 해서라도 부활시키는 저의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 의 빈곤을 볼 뿐이다. 노사의 공존공영이라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표방했 던 노동관계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유례없는 악법으 로 하루아침에 탈바꿈했고, 총파업이라는 노-정간의 갈등으로 이어져 국 가적 분열을 야기했다.
97년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독일과 일본과 미국이, 중국을 비롯 우리와 비슷한 위치의 중진국들이 미 래를 향해 차근차근 자신들의 발걸음을 내디딜 동안 우리는 또한차례 광 란과도 같은 권력게임을 망연히 지켜봐야 할 것인가. 그러는 사이에 21세 기를 향한 우리의 미래는 낡은 정치가들의 책상서랍 속에서 먼지를 뒤집 어쓰고 있어야 할지 모른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