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도정일/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한국의 절망/ 불감증의 나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인도 총독이 되고 후일 옥스포드대학 총장을 지내기 도 한 조지 나다니엘 커즌(1859-1925)은 1894년에 낸 그의 동아시아 여행 기 <극동의 제 문제>(이 책은 최근 <100년전의 여행, 100년후의 교훈>이 라는 제목으로 국역되어 나왔다)에서 일본의 미래는 밝고 조선의 앞날은 어둡다고 썼다. 조선의 장래가 암담한 까닭은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이 중 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끼어 이들이 ‘함부로 차는 축구공’ 같은 꼴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인 자신에게 연유하는 이유도 많다는 것 이 그의 관찰 내용이다. 그가 본 조선의 관청은 백성을 수탈하는 데 여념 없고 관리들은 부패하고 양반은 일을 하지 않으며 백성들은 근면해야 할 수백가지 이유가 있음에도 게으름을 피운다. 신이 아무리 자비롭다고 한 들 이런 나라와 민족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100년전의 조선, 100년후의 한국

커즌의 관찰 중에 극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본 조선인의 ‘둔감증’이라 는 부분이다. 그 둔감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선인의 도덕적 둔감성이고 또 하나는 위기상황 앞에서의 불감증이다. “조선은 과거 일 본에 문명, 과학, 종교, 예술 등을 전수해주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자신 은 이 모든 것의 흔적을 상실했다. 조선인들은 체력적으로는 용맹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둔감하다”고 커즌은 쓰고 있다. 조선의 지배계층은 ‘어느 선 이상을 넘으면 어떤 종류의 행동에도 꿈쩍하지 않는 불감증’을 갖고 있고 백성들은 ‘외국과의 교류 결핍, 개인의 사생활을 인정하지도 장려 하지도 않는 정부 형태, 특권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처해 있는 기막힌 수준의 빈곤 등으로 인해 무력하고 유약하며 무관심에 빠지’게 되었고 ‘경쟁과 위기 상황에서도 무신경’하다.

백년전 한 제국주의자의 렌즈에 잡힌 조선과 지금의 한국 사이에는 물론 많은 차이가 있다. 외국과의 교류 결핍은 더이상 현실이 아니고 보편적 빈곤 역시, 적어도 먹고 사는 수준에서는, 지금의 한국 현실은 아니다. 커즌이 말한 조선인의 둔감증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20세기말의 한국인 들은 이의를 제기할 많은 근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선인의 둔감성과 불감증이라는 그의 관찰은 판단 근거에 다소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현대 한국의 초상에 여전히 어울리는 적실성을 갖고 있다. 도 덕성의 허약은 여전히 현대 한국의 위기이며, 바뀌는 국제환경 속에서의 변화와 적응의 필요성에 대한 시끄러운 구호들에도 우리 사회는 ‘꿈쩍하 지 않는’ 불감증을 갖고 있다.

이 둔감성과 불감증은 지금의 한국이 여전히 ‘창의성을 죽이는 사회’라 는 사실로 가장 잘 요약된다. 창의성을 위한 교육이라는 개혁 구호가 요 란한 가운데서도 각급 학교의 공교육 내용과 방법은 철저하게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 상상력이 숨쉴 수 없게 하는 교육, 획일화된 규격 교육의 굴레에 묶여 있다. 대학 입학 희망자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세움으로써 천차만별의 개인적 능력들을 한 칼로 재단하는 잔인하고 우둔한 사회, 경 쟁력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일류병’을 벗어나지 못한 서열사회, 학벌과 연고와 미신과 권위주의와 세습제도가 조선시대를 무색케 하는 봉건사회- -이것이 여전히 현대 한국의 초상이다. 창의성만이 21세기의 생존력이라 고 말하면서도 창의성을 위한 환경 개조에는 사실상 꿈쩍도 하지 않는 것 이 지금의 우리 사회이다.

현대 한국인은 게으르지 않고 변화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그러나 커즌이 다시 돌아와 지금의 한국을 보았다면 그는 이 민감성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불감증에 주목했을 것이다. ‘조선인은 청결하지 않으면서도 흰옷을 고집하는 민족’이라고 그는 꼬집었는데, 같은 어법으로 그는 “ 현대 한국인은 변화에 극히 민감하면서도 변화를 위한 능력을 키우는 문 제에는 극히 둔감하다”고 관찰할 것이 틀림 없다. 창의성을 키우는 첫번 째 조건은 질곡의 제거이다. 지금처럼 상상력에 재갈을 물리고 창조력을 죽이는 교육적 사회적 질곡은 그대로 두고 창의성을 키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을 보지 않는 것이 현대 한국의 불감증이며 이 불 감증은 창조적 인간을 죽인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하다.


21세기에 한국은 있을까

기술개발과 경영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밑바닥에는 기초 과학 이 있어야 하고 기초 과학에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경영에는 무엇 을 ‘어떻게’ 경영하는가라는 기술 수준 말고도 무엇을 ‘왜’ 특정의 방식으로 경영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공철학적 상상력과 비전이 있어야 한 다. 창의성은 단순한 손재주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망각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돈은 좀 있지만 문화적 도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늘 남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시류에 떠밀리고 양철 냄비처럼 시끄러우면서 도 자기 것은 없는 공허한 거품의 민족으로 남을 것이다. 21세기에 한국 은 있을까?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