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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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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부 교사들의 창의력 수업을 위한 노력도 보수적인 교육현장의 분위기와 입시라는 벽 앞에서 왜소해지고 만다.)
새롭게 불붙은 창의력 이데올로기
우리 사회에서 창의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리게 되는 건 학교교실이다. 창의력이 한껏 길러지고 싹을 틔워야 할 그곳이 엉뚱하게 도 자생적인 뿌리를 내리려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이 주목받고 있다. 유아교육에서도 ‘문제는 창의~력’이라는 말이 예전보다 훨씬 학부모들의 피부에 와닿는다. 창의력의 개념에 대해 역사문화아카데미 원장 강치원 교수(강원대 사학)는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기린이 목이 긴 이유는 획득형질이 유전된 게 아니라 돌연변이가 자연환경에 더 적응하면서 살아남은 데 있다. 창의력이란 이 돌연변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통해 나온 “<쥬라기 공원> 한편의 수익금이 1년 동안 자동차 1백50만대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7천여억원과 맞먹는다” 는 발언은 최근 일기 시작하는 창의력 이데올로기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창의력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 차원이 아닌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게 만 드는 존재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상·하부구조 어느 한쪽에 묶여질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에 창의력은 또한 몇몇 우수한 이들만 지 녀도 되는 것이 아닌 각자 나름의 것을 가져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 기도 하다. 이는 교육이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보자. 일제시대 이래 우리 교육의 목표는 정권의 이 데올로기를 확장시켜 표준화되고 규범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건 안기부법이 날치기 통과된 지금의 문민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육 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름’은 일탈이고 반역이었고, 그래서 순치되거나 제거당해야만 했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않아서 ‘인내’를 키우고, 하기 싫은 것은 억지로 해서 ‘끈기’를 키웠 다. 여기에 과도한 경쟁구조가 덧입혀지면 낙오의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어느 학습기 광고에서 “어떻게 하긴, 그냥 열심히 하 는 거지”라는 말을 내뱉는 안경낀 무표정한 학생 같은 맹목적인 인간상 들이 양산됐던 것이다.
미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얼마 전 수능시험을 치른 권아무개(18·여)양은 “한국의 선생님들은 우 리들의 머리를 lock한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아는 신이고 자기 명령에만 따르라고 한다. 그룹발표도 실험도 토의도 웃음도 없는 수업은 정말 고역 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교육연구소의 황인성 사무국장은 “최근 EQ가 부각되는 등 사회 전반 에서 창의력을 강조하는 게 사실이고 교과서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초 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입시라는 절대적 가치 아래 모든 게 무시돼 버리 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창의력과 입시라는 이 모순적(?) 함수관계를 풀기 위해 미적분 공식을 몽땅 동원한 교육부가 모범답안으로 제시한 게 수능시험이다.
수능과 학력고사는 근본적으로 다른가
“교과서 바깥에서 나온다. 통합교과로 창의력을 살리고 있다. 논술시험 을 통해 수험생의 독창적 사고력을 측정한다.”
하지만 선다형이라는 틀을 깨지 못한 수능시험은 과거의 예비고사, 학력 고사처럼 여전히 주관을 상실한 객관형 인간을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또 지난해 논술시험을 치른 한 1류대학 응시자 답안지 1/3이 거의 똑같았다. 논술시험을 앞두고 30~40종의 논술참고서, 예상문제와 모범답안, 논술 쪽 집게 과외가 범람하는 곳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입시만을 놓고 보더라도 통합교과 형식의 수능과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교 사들은 예전 방식과 꼭같은 수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통합은 아 이들이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도무지 시대변화와는 초연하게 독야청청 한 곳이 교육현장이다.
때론 일부 교사들이 창의력 수업을 하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지만 보수적 인 교육현장의 분위기와 입시라는 두개의 레비아탄 앞에 그들은 너무도 왜소할 수밖에 없다. 서울 신원중 김은영(40·여) 교사는 “방과 뒤 활동 을 하려 해도 점수화되지 않으면, 인생의 이점과 연결되지 않으면 상급기 관의 제재나 학부모의 항의에 앞서 우선 학생들이 원치 않는다”고 한숨 을 내쉬었다.
이처럼 창의력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요즘 사회에선 얼토 당토 않게 창의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베토벤의 <전원>과 베를리오 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으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원하는 도구로 마음껏 그려보면서 자란(프랑스의 교육사례) 이들과, 크레용으로 억지 그 림일기만 그리고 자란 이들 중 누구에게서 창의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빈곤한 창의력을 포장하고 기만하기 위해 편법과 요령만 커나가고 있다. 최근 문화계 일각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표절은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 채용을 담당하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김인영 부장은 “우리 사 회가 그동안 어셈블리 초기 산업사회의 단계에서 사원들에게 요구했던 건 성실성이었다. 그러나 양보다 질이 우선되는 지금 소프트화, 디자인화 등 을 비롯해 모든 분야에 서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요즘 신입사원 응시생들 이 과거에 비해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대중문화의 이미테이션을 통한 ‘튐’에만 열중할 뿐 깊이있는 창의력을 발견하기 어 려운 게 아쉽다”면서 구직난 속의 구인난을 설명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튀어서 어려운 취업전쟁을 뚫고 들어가도 회사에서 또한 차례 창의력이 말살되기는 마찬가지다. 상명하복과 권위와 전통을 강조하 는 군대문화 요소가 만연한 우리의 기업문화는 규격화된 한 인간에 마지 막 ‘품’자를 찍는 창의력 말살의 결정판이다. 여기에 분단구조와 검열, 금지, 토론부재 문화 등의 사회분위기가 우리의 머리 위를 비닐하우스처 럼 어두침침하게 덮어 씌우고 있다. 최근엔 안기부법 개정으로 비닐하우 스 위에 유령거죽 같은 검은 그물까지 덧씌웠다. 죽을 때까지 한껏 머리 기지개 한번 켜 보지 못한 채 최후를 맞는 이가 한국에선 거의 태반이다.
입시제도의 완전 논술화를 통한 근본적 개혁을 제기하는 강치원 교수는 “독일에선 오후 1시30분이 되면 모든 수업이 끝난다. 이후 아이들은 도 서관에 가서 백과사전을 찾고 자료를 뒤적여 조사를 한 뒤 다음날 자신의 자료를 토대로 토론식 수업을 벌여나간다. 물론 우리 같은 참고서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창의력과 논리력을 기르기 위해선 이처럼 원전을 읽 고 토론하는 수업과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처럼 다이제스트와 요약 본만 넘쳐나는 세태에서 창의력을 기대할 순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논어 위정편 한 대목을 우리 창의력과 논리력에 빗대 이야기했다. “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원 리를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생각하게 하는 선생님이 좋아요”
백번을 양보해 근대화 과정에 놓인 후발 국가에게 주입식을 통한 인간계 몽이 필요악이었다 하더라도 전 국민의 머리에 족쇄를 채우는 한심한 광 경을 누구를 위해 언제까지 되풀이해야만 하는 걸까?
역사문화아카데미에서 지난 11월 실시한 제1회 전국 고교생 논술·토론 광장에서 수상한 양정원(서문여고2·17)양은 이렇게 말했다.
“가끔 어떤 선생님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끊임없이 사고하게 끔 해주시는 분이 있어요. ‘콜라병이 외국문화의 상징처럼 보이는 이유 는 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사하게끔 하기 도 하죠. 그런데 그런 선생님들도 때론 ‘이런 게 애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수업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힘이 되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때 우린 숨을 쉴 수 있거던요”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