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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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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포는 있으되 제대로 된 동포정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중국 조선족.)
지난해 11월2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는 조촐한 좌담회가 열렸다. 제정구 의원의 사회로 열린 이날 좌담회는 많은 이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참석 자도 국회입법분석관을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제는 자못 심각 했다. 동포정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마침 조선족 사기피해 문제가 불 거진 뒤여서 대화는 시종 진지했다. 제 의원은 좌담회의 결론을 이렇게 전한다. “21세기는 국경보다 민족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해외동포를 꼭 껴안아야 합니다. 세 계 곳곳에 퍼져 있는 동포는 한민족의 세계화를 실현하는 유력한 동반자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합니다. 동포는 있으되 , 제대로 된 정책은 없는 형국입니다.”
동포사회 분열에 정부도 책임
동포정책의 부재를 꾸짖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그런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거의 경고에 가깝다. 정책의 부재가 동포 의 이반을 초래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조선족 문제 는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진경 연변과학기술대 총장은 “동 포가 등을 돌릴 경우, 한국이 잃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라 고 잘라 말한다. “그것은 민족의 미래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그의 계산이 맞는지 곰곰이 따져보자. 우선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치자.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 즉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는 없고 한 국에만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각기 자본과 기술, 자원에서 한국을 능가하는 이들에게 없는 것이 과연 무엇일 까. 이런 대답은 어떤가? “4대 강국 모두에 고루 퍼져 있는 동포사회다. ”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질문을 던진 이종훈 국회입법분석관은 “한반도 를 둘러싼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우리의 해외동포는 5백 30만을 헤아립니다. 중국 2천2백만, 이스라엘 1천5백만, 이탈리아 5백50 만을 잇는 규모입니다. 남한 인구의 12%, 남북한 인구의 7% 가량이 해외 에 살고 있는 셈이죠. 이 가운데 94% 가량이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에 포 진해 있습니다. 해외동포에 관한 한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대국인 것입니 다.”
그렇다면 이번엔 거꾸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그런 동포의 존 재를 민족의 힘으로 전환해내고 있는가?” 이종훈 분석관의 답은 이렇다. “거대한 해외동포의 존재는 한민족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무 기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외교관이자, 외판원이고, 홍보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의 경우처럼 오히려 그들이 조국을 적대시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통 일을 포함하는 한민족의 장래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위태로워짐을 뜻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책의 부재는 우리와 조선족 사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이는 재미동포와 재일동포를 민족의 역량으로 `온전히 흡수하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들 동포사회를 냉전의 틀에서 접근했다. 이 러다 보니 이들이 남북대결을 좇아 쪼개지고 말았다. 재일동포는 민단과 조총련으로 갈리고, 재미동포는 친한단체와 친북단체로 찢긴 것이다. 사 실 해외동포는 어떤 식으로든 남북대결 상황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작용을 줄이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민족의 과 제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이용선 사무총장은 이 때문에 “동포사회의 분열에 대해선 정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권 붕괴로 세계적인 냉전이 풀린 지금에도 이런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분열상은 동포사회의 대가 이어지 면서 세대간의 갈등까지 겹쳐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로스앤젤 레스시 당국이 내놓은 소수민족 보고서가 이런 현실을 증언한다. “한인 들은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분열돼 있다. 반면 중국인들은 28개의 사회단체가 모인 중화인민박애협회가 자체의 갈등을 조정하고 화교의 권익을 지킨다.”
동포정책 주무부서도 어정쩡
동포정책의 부재는 동포에 대한 법적 규정조차 없는 현실에서도 잘 드러 난다. 우리의 법체계는 국적자와 외국인에게만 법적 의무와 권리를 부여 하고 있다. 따라서 국적자이면서 외국에 장기거주하거나, 외국 국적을 가 진 한민족에 대해서는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 헌법이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규정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외무부를 비롯한 몇몇 부서에서 전통적으로 ‘재외국민’이란 어정쩡한 용어로 동포를 틀 지울 뿐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국적자만을 가리키는지, 우리 국적을 갖 지 않은 사람도 포함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한마디로 정책의 대상이 모호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포정책의 주무부서가 외무부라고는 하지만, 관련 업 무는 교육부, 문화체육부, 법무부, 재무부, 병무청, 통일원 등에 분산돼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나눠먹기 행정의 전형”이라고까지 혹평한다 . 이 때문에 해외동포를 위한 한글학교 운영 같은, 이른바 민족교육의 경 우, 전체적인 동포정책의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교육부의 독립된 업무로 치부된다. 이런 상황에선 정책의 통일성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힘든 일 이다.
물론 정부 안에서 그동안 이런 동포정책의 부재 내지는 난맥상에 대한 논 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공화국 들어 해외이주법을 만들어 이민을 장 려하면서, 이들의 현지 적응을 부분적으로 지원한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민정책일 뿐 동포정책과는 거리과 멀다는 평가가 많다. 5공화국 들어선 교민청 설립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 산하에 교민청 을 두는 것이 동포관할권을 놓고 해당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촉발한 우여곡절이었다. 결국 80년 국보위의 지시로 검토되기 시 작한 교민청 설립안은 86년 백지화됐다.
김영삼 정부의 이른바 ‘신교포정책’은 이런 고민의 결정판을 이룬다. 정부가 동포사회의 현지 적응과 주류 사회 진출을 지원하고, 민족의 동질 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국 무총리실에 재외동포정책위원회를 두어 동포정책을 총괄토록 하고, 관련 업무를 전담할 기구로 재외동포재단을 세우겠다는 법안을 내놓기에 이른 다. 외무부 재외국민과 박상윤 과장은 “재외동포재단은 정부의 지원금과 민간기구 또는 동포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면서, 동포사회의 지역정 특성 과 역사적 배경에 맞는 다양한 지원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구상 역시 해외동포와 학계 일각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우선 정부가 내놓은 재단설립안은 예산이 턱없이 낮고, 사업내용 역시 그 동안 여러 부서에 퍼져 있던 업무를 확실히 물려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종훈 법무관은 “재단의 예산이 적어 실질적인 사업을 펼치는 데 어려 움이 예상되고, 결국 다른 정부 산하기관처럼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 고 지적한다. 다만 재단이 그동안 혼선을 빚어온 동포의 범위를 “대한민 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는 자와 외국의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취득하거나 외국의 국적을 취득한 자 등 그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에 거주 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자”라 규정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 다.
신교포법안 기껏 만들었지만…
하지만 미약하나마 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 법안조차 아직까 지 원점을 맴돌고 있다. 이미 지난해 7월 입법예고되고 국무회의 의결까 지 거친 이 법안은 아직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말의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때도, 이 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정 부의 신교포정책이 핵심사항에서 발 묶인 것이다. 지금처럼 여야의 대립 이 격화하고 있는 마당에 법안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 역시 무리다. 그만 큼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동포정책의 탄생은 멀어진 셈이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