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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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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은 북-미 외교통로를 통해 해법을 찾기는 했으나 남북관계는 더욱 뒤틀리고 말았다.)
잠수함사건으로 얼어붙었던 한반도가 북한의 ‘깊은 유감’ 표명으로 겉 으로는 해빙 무드를 맞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남북 사이의 실질적인 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대화’가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 9 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조문파동’으로 지속돼온 남북교착 국면은 대북한 쌀지원을 위한 베이징 실무접촉으로 풀리는 듯했으나 ‘인공기게 양사건’ 등으로 오히려 불신의 골만 더욱 깊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95년 9월에 돌출했던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은 북-미 외교통로를 통해 해법을 찾기는 했으나 남북관계는 더욱 뒤틀리고 말았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북정책 아닌 동북아시아 정책”
이들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남북 대화채널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한 원인을 북한에만 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한국 정부 가 94년 7월에 한국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만들었다는 ‘종합적 통일정책 ’의 실천계획인 대북 경수로지원, 남북경협, 이산가족문제, 탈북자 처리 , 당국간 대화 등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화의 상대 방인 한국도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 문제점으로는 우선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보이게 만들 실효적인 정책수단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된다. 곧 북한이 미국 등 주변 강대국에 매달리지 않고 남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렛대 를 한국이 갖지 않고 있다는 현실과 직결된다. 정부의 한 정책 당국자도 “대북정책에서 우리의 최대 무기는 미·일 등 주변국과의 공조체제를 다 지는 것뿐”이라면서 “사실 이들 주변국과의 공조체제가 깨질 경우 정치 ·경제·군사적으로 북한을 한국에 유리하도록 유인할 만한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한 “관련 전문가들 은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의 경제회생에 절대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주 장하고 있으나 이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면서 “사실 미국, 일본의 자 본이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북한에 집중적으로 부어진다면 우리 자본은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구나 대북한 경수로 제공 등에서 우리가 최대 투자가이면서도 실질적인 협상주도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는 사실 등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고 앞의 당국자는 덧붙였다.
또한 남북문제가 이제는 명확하게 국제적인 문제로 고착된 사실도 우리의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문제가 이제는 미국,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4강의 이해 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들과도 힘겨운 견제와 균형을 맞추지 않 을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다른 정책 당국자도 “이제 대북정책이라 는 표현 자체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동북아시아정책 등의 포괄적 인 정책용어가 더 정확할 것 같다”면서 이는 “대북정책을 짜는 데서 가 장 크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주변 4강의 대한반도 정책변화”이기 때문이 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이 북한 달래기를 통해 세계적 수준에서 핵비확 산조약 체제를 유지하고 ‘북한붕괴’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나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몰두하면 할수록 남북관계가 멀어지는 현실은 대북정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 내 내부적 혹은 국민적으로 합의된 대북·통일정책 기조가 없다” 는 지적도 눈길을 끈다. 이 점은 통일원 등 정부 관계 당국이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 가장 어렵고 곤혹스런 부분이기도 하다. 통일 원의 한 실무자는 “통일문제에 관한 한 국민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계층별로 마치 스펙트럼처럼 의견이 나눠지기 때문에 특정계층의 입장만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통일정책은 다 분히 원칙론을 따르거나 최고 통치권자의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따라서 통일정책에 관한 국민적인 합의 를 도출해내는 것이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수행하는 데 가장 시급한 과제 라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
통일정책, DJ와 경쟁하듯 비쳐
또한 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처음부터 너무 ‘큰 건’에 집착하 고 있어 남북대화를 꼬이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많다. 즉 민간 차원의 북한 주민 접촉, 방문, 남북경협 등 작은 교류협력부터 시작해 물꼬를 틀 생각은 하지 않고 곧바로 크게는 ‘남북정상회담’ 아니면 ‘당국간 회담 ’을 지나치게 요구해 북한이 수용할 수 없게 만드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 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이다. 95년 초 당시 대북 한 쌀지원 교섭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도 “오히려 느긋해야 할 쪽은 쌀을 주는 우리인데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시간을 갖고 제대로 준비했더라면 인공기 게양사건 등 돌발사건 없이 남북한 관계 복원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기회를 놓쳤다”고 매우 아쉬워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도 대남 담당 북한쪽 소식 통의 말을 빌려 “남한쪽이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너무 당국간 대화에 집착하고 있는 것같다”면서 “더구나 북한은 남한이 정상회담이나 당국 간 대화에 집착하면 할수록 이를 회피하거나 쌀 무상지원 등 다소 수용하 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해 대화를 지연시킴으로써 현 상황을 지속시키고 체체와 정권수호를 위한 방책 마련에 몰두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 는 따라서 남북한 당국 사이의 크고작은 대화가 간헐적으로 진행돼 왔으 면서도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쌍방의 입장 차이 때문으 로 봤다.
다른 관계 소식통은 “이처럼 한국 정부가 당국간 대화에 집착하는 것은 정책결정이 ‘위로부터의 결정’(Top-Down)방식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관련 정책 실무자들은 작은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는 교류협력방안들을 올려도 실질적인 정책집행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정책이 정치적인 성과로 포장될 수 있는, 북한이 다소 부담스러운 제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의 일관성이 없었다고 평가받는 것은 북한을 중심에 둔 정책이기 보다는 한 국 내 정치적인 여론에 관심을 둔 ‘대국민정책’이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이는 언론보도에 지나치게 민감한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스타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또한 대북정책마저도 김 대통령이 오랜 국내 정치에서 익힌 ‘감의 정치 ’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남 협상꾼들이 수십년 동 안 다양한 정권을 상대해오면서 한국의 ‘수’를 훤히 읽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쪽의 전문가들도 접근하기가 버거운 대북정책을 ‘느 낌’으로 다룬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더구나 김 대통 령이 국민회의의 김대중씨와 통일정책을 둘러싸고 경쟁하듯이 비치고 있 다는 것도 대북정책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대중씨의 발언에 대해 심 리적인 압박을 느껴 북한이나 통일문제에 대해 너무 자주 발언해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비칠 뿐만 아니라 정책 당국자들의 운신의 폭까지 좁히고 있다는 평가다.
대선 앞두고 ‘무리수’둘 가능성도
마지막으로 정부안에 대북전략과 정책추진기관, 실무협상팀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대북정책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특히 대북관련 부서 가운데 특정 사안에 따라 대통령의 의지에 가까운 쪽 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나머지는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이 잦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북정책의 난맥상으로 인해 최근에 김영삼 정권은 문민정부임 에도 “남북한 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이 남북 사 이에 체결되었던 노태우 정권 때보다 대북관계가 더욱 악화됐다는 비난까 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이렇게 남북관계가 갈 데까지 간 데는 북한쪽 의 책임도 크다.
그래서 남북관계에서 올해가 특히 중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 대통령선거 를 앞둔 올해는 김영삼 정부가 남북대화를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했다는 부담 때문에 대북정책에 있어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크고 북한도 이 를 최대한 활용해 진정한 남북대화보다는 반짝이는 실리에 집착할 수 있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건주의’에 머물러 차기정권에 부담을 넘겨 또다른 긴장과 불신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에 현 정부는 오히려 긴 안목에서 호흡을 길게 하는 대북정책의 선례를 남기는 것이 한결 더 중요하다는 충고가 나오고 있다.
임을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