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희옥/한신대 교수·중국학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한국의 절망/ 중국 짝사랑, 환상을 버리자

“중국에 대한 짝사랑을 그만둬라.”

21세기 동아시아 판짜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한국의 대중국 정책도 변 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미국의 틀에 갇힌 경직성’도 문제지만, 그 변화의 모습이 중국이 남북관계에서 우리편일 것이라는 ‘중국에 대한 짝사랑’이어서도 곤란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이중적인 한반도 전략

현대 중국의 당면과제는 개혁개방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대전환기’ 에서 살아남는 ‘세계화(全球化)’전략이다. 이를 향한 중국의 외교전략 은 ‘때에 이르기 전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것은 아편전쟁 이후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화’가 깨지 면서 출구 없는 방황을 겪은 중국인의 밑바닥 정서를 반영한 외교적 지혜 다. 따라서 현재 중국은 몸을 낮추고 ‘총과 돈을 지닌 중국’을 향한 우 회로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미 세계로 나가는 길목으로서의 아 시아의 중요성을 크게 주목하면서 자국이 아·태지역의 중심이 되는 부채 형(扇形)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아세안지역포럼에 대한 적 극적인 참여, 중-러 관계의 개선, 인도와 베트남과의 복교, 북한의 반대 를 무릅쓴 한-중 수교…. 여기에 아·태지역경제권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성급한 제도화론에 반대하면서 역내 국가에 이해기반을 넓혀나가는 일련 의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종합국력론’과 ‘입아론’(立亞論)에 근거한 대외전략은 한반 도에서도 이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한반도 분단구조에서 중국이 반 사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통일적이고, 한반도 통일과정이 현 실적으로 가시화될 때 중국이 ‘건설적’인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통일친화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의 이런 모습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았는가? 혹시 ‘ 짝사랑’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우리는 중국이 세계질서에 중요한 행위자 로 등장한 이상 중국의 한반도정책은 친북노선을 버리고 균형적인 한-중 관계를 수립할 것이라는 낙관적 예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 로 중국에게 한반도는 외교적 우선순위가 높은 핵심지역은 아니다. 중국 은 한반도를 줄곧 대미정책이나 동아시아정책 속에서 이해해왔기 때문이 다. 다만 한편으론 서방의 사회주의 압박전략 속에서 북한의 현저한 위기 가 중국에게 미칠 정치적 부담을 경계하고 있으면서, 또한편으론 한반도 에서의 규정력 약화를 우려해 최근 ‘북한껴안기’와 한반도의 전략적 중 요성을 재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과 대등한 동반자관계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중국이 정치적 수사(rhetoric)로서 이를 수용한다고 해도, 현실적인 외교적 불균 형은 여전히 남게 된다. 더구나 한-중 경제협력을 과도하게 정치관계로 전환하려는 공세적인 대중국정책이나 최근 조선족문제를 낳게 된 무원칙 한 천민자본주의의 중국수출은 우리의 중국 입지를 좁히는 악재로 작용하 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폭발적인 교류에도 불구하고 한-중간의 정서적 불화는 심화되었고, 정치적 동맹으로 중국을 묶어세우는 데 실패한 것이 다.


중국의 건설적 구실 강제해야

여기서 대중정책의 긴 호흡과 원칙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그동안 한국의 대중정책은 그야말로 ‘짝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북한을 ‘기피인물’ 로 만들기 위해 중국에 쏟아부었던 셈이었다. 그 결과 통일문제를 주체적 으로 장악하지 못하고 4자회담이나 조건을 건 북한지원 등 ‘제안경쟁’ 에 의존해왔다. 또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을 강제하지 못하고 중국의 활동공간만을 넓혀 주었던 셈이다. 따라서 향후 대중정책은 남북한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않는 한 중국의 구실은 ‘중립 적’인 것이 최대의 수준이라는 현실인식 속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엄청난 분단비용을 줄여나가고 민족이익을 극대화하는 틀에서 중 국의 건설적인 구실을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중국이 비록 내밀하게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해도, 남북한이 실제적으로 통일을 움직여 간다면 중국이 이 과정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오히려 통일한국의 징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경우 기존의 미온적인(不熱不冷) 태도에서 적극적인 통일지원세력으로 변화할 개연성이 크다. 이것은 통일한국이 동 아시아에서 중-일경쟁을 완충하고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조정하는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통일과 중국을 하나의 고리로 파악해야 하 는 이유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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