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1월16일 제 141호 한겨레21

한국의 절망/ 국제협상, 왜 판판이 깨지나

(사진/OECD 회원국으로 본격 활동하는 등 국제사회지위는 높아졌지만 질적 향상은 더디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10월25일 공로명 전 외무장관이 OECD 가입협정성에 서명하는 모습.)

“세계 11대 경제대국의 협상력이 겨우 그 정도냐.”

한-미 자동차협정, 섬유협정, 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등 미국과의 협상 에서 한국이 ‘판판이 깨지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터져나오는 시민들의 아쉬움 섞인 한탄이다. 특히 ‘경제적 빈사상태’라는 북한이 지난 93년 핵협상 이후 보여준 뛰어난 협상력과 비교할 때 이런 아쉬움은 더욱 강력 해진다. 왜 우리의 협상력은 이렇게 빈약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두 나라의 협상 능력은 국력 차이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차이 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 미국과의 관계에 적용할 때, 미국이 한국에 가할 제재수단은 매우 강력하지만 한국이 미국에 취할 보복수단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력 차이에 의해 이미 두 나라는 대등한 관계일 수 없다 . 만일 팽팽한 힘의 균형이 있을 때 ‘5’에서 타결될 일이라고 할 때, 한-미협상에서는 이미 미국쪽에 가까운 ‘2~5’ 사이로 타결지역이 결정 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협상력이라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타협점을 ‘5’에 가깝게 끌고 오는 능력을 말한다. 잘 훈련된 협상전문가, 국익에 충실한 정치 분위기 라면 가능성을 점쳐볼 수도 있는 일이다. 많은 외교전문가들은 북한이 보 여준 ‘놀라운 협상능력’도 이런 요인으로 설명한다. 한 가지 더 든다면 북한은 동북아를 안정시키려는 미국의 외교전략을 고도로 역이용하고 있 다는 점이다. 북한은 “우리가 잘못되면 우리도 다치지만 너희의 외교전 략, 너희의 국익도 결코 무사하지 않다”는 ‘협박’을 적절히 미국에 확 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북한의 ‘자립경제’는 미국의 추가 경제제재 로 큰 타격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한의 빈약한 협상력은 이런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는 미국을 ‘협박’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과연 남한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남한 진출 미 국기업을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미국이 무리 한 경제개방 요구를 계속하면, 미국의 동북아 구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위협할 수 있을까. 현재 남한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에 비춰볼 때 이럴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남한의 협상력은 북한에 비해 구조적으 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협상전문가 자체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세종연구소 유석진 박사(정치학)는 “한-미협정에서 드러나는 부서간 갈등이 한국의 협상력 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외무부·통상부·재경원 등이 협상의 주도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런 부서간 갈등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챙겨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또 있다. 남한의 경우 외교문제가 국 내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회의 김근태 의원은 따라서 “미국 등이 경제문제를 공략할 경우라도 국내 정치의 어떤 부분 에 취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 하고 있다. 대선이 연말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치권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 목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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