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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정 종식”vs “총선 재실시” 막다른 대치

쿠데타 뒤 한달째 시민 불복종 시위…군부는 주변국과 수습책 골몰
등록 2021-02-27 09:20 수정 2021-02-28 00:26
2021년 2월24일 미얀마 양곤에서 나흘 전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 도중 군경의 실탄 발포로 숨진 청년의 장례식에서 시민들이 희생자 주검을 둘러싼 채 애도하고 있다. 미얀마 전역에서 한 달째 민주화 시위가 이어졌는데 지금까지 4명이 군경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AP 연합뉴스

2021년 2월24일 미얀마 양곤에서 나흘 전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 도중 군경의 실탄 발포로 숨진 청년의 장례식에서 시민들이 희생자 주검을 둘러싼 채 애도하고 있다. 미얀마 전역에서 한 달째 민주화 시위가 이어졌는데 지금까지 4명이 군경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AP 연합뉴스

미얀마 쿠데타 이후 시민사회와 군부의 팽팽한 대립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군부 쿠데타가 아직 ‘절반의 성공’에 그치면서, 양쪽이 정권의 향방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2021년 2월1일,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운동을 주도해온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총선 결과에 불복해 전격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러나 대다수 민간 정당과 시민사회는 군의 헌정 파괴에 강력히 저항하면서 시위와 시민불복종 운동을 이어간다. 2월22일에는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총파업이 벌어지고 시민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미얀마 시민들은 이날 시위를 ‘22222 혁명’이라고 불렀다. 2021년 2월22일에서 따온 말이다.

실패한 ‘8888 봉기’와 다른 ‘22222 혁명’ 결의

미얀마 시민사회는 앞서 1988년 8월8일 시작된 전국적인 군부독재 반대 시위(8888 민주화운동)가 군대의 무력 진압으로 한 달여 만에 최소 3천 명이 숨진 채 끝난 참상을 뼈아프게 새기고 있다. 미얀마 최대 도시이자 옛 수도인 양곤의 시민들은 등 외신에 “우리는 군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우리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가기를 원한다”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군부의) 강경진압을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라는 말들을 쏟아냈다. 두려움 속에서도 ‘8888 봉기’ 이후 33년 만에 다시 찾아온 ‘22222 혁명’이 또다시 실패로 끝나게 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묻어난다.

공무원까지 파업에 적극 가담하면서 철도 운행뿐 아니라 병원과 은행 업무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군부 최고 실권자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월23일 군정 최고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 회의에서 “미얀마 전체 병원 1262곳 중 357곳이 문을 닫았고 문을 연 병원도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의료진은 공무원법으로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굴복하지 않을 태세다. 미얀마 학생 단체는 2월25일 양곤의 상업 중심가에서 군부의 공인 교과서를 불태우는 시위를 예고했다. 한 대학생(25)은 <로이터> 통신에 “군부 쿠데타 이후 우리 삶에 희망이 사라졌고 꿈이 죽었다. 우리는 군부독재를 지지하는 교육 시스템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흰색 의사 가운에서 따온 ‘화이트 코트 혁명’을 외치는 의료진을 비롯해 상당수 전문직 종사자와 공무원도 시민불복종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양곤대학의 문을 봉쇄하고 학생들의 시위 진출을 막는 것으로 대응했다.

군부는 시위대에 일상 복귀를 촉구하지만 좀체 힘이 실리지 않는 모양새다. 선거 불복 쿠데타가 뜻밖에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면서 당황한 기색마저 엿보인다. 그렇다고 손에 자국민의 피를 묻힌 전과를 되풀이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8888 봉기 때와 달리, 지금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지 상황이 거의 실시간으로 바깥에 알려진다.

군부는 시위 주동자와 반체제 인사를 무더기로 체포하고 때때로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타이에 본부를 둔 미얀마 망명자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2월24일 현재 미얀마에서 민주화 시위와 관련해 최소 728명이 체포돼 기소되거나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고 언론을 전면 통제하기엔 역부족이다. 더욱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2015년 총선에서 대승하고 2020년 총선에서 또다시 싹쓸이에 가까운 압승을 거둔 것은 미얀마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에겐 엄청난 자신감을, 군부엔 무시할 수 없는 압박감을 준다.

의사, 공무원도 파업 적극 가담

군부는 쿠데타 명분으로 내세운 ‘부정선거 무효화, 총선 재실시’를 거듭 주장하며 나라 안팎에서 사태의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지에선 군부가 구성한 새총선위원회가 2월24일 각 정당에 26일 모이자며 초청장을 보냈으나, 의회 의석을 가진 주요 정당들이 이를 거부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미얀마의 정치적 망명자들이 발행하는 온라인 매체 <이라와디>는 “군부의 회합 초청장에는 구체적인 회의 안건이 명시되지 않았으며 참석 여부만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미얀마 군부는 인접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과 쿠데타 사태를 수습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미얀마는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하나다. 2월24일, 미얀마 군정이 임명한 예비역 대령 출신의 운나 마웅 르윈 외교장관은 타이 방콕에서 타이·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3자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회담 뒤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화상 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는 미얀마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군부와 (쿠데타 이전의) 문민정부 양쪽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면서 “유혈 사태와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모두가 폭력에 의존하지 말고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미얀마 군부가 주장하는 새 총선을 아세안이 참관한 가운데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으나, 안팎의 비판과 반발이 커지자 외교부가 이를 공식 부인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앞서 2월19일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미얀마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아세안 국가들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은 미얀마와 총연장 2200㎞ 길이의 국경을 맞댄 접경국이다. 중국에 미얀마는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에 해당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이 그동안 미얀마와 군사협력을 강화해온데다, 이번 ‘미얀마 쿠데타 배후설’까지 나도는데도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지 않고 모호한 태도로 상황을 지켜보는 이유다.

“자유선거 치러져도 결과 무시될 수 있어” 우려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가 외부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 한다며 반발한다. 2월24일 <이라와디>는 “아세안의 책임(의 대상)은 미얀마의 군 장성들이 아니라 미얀마 국민에게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 매체는 “미얀마 군사정권이 선거를 실시하면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을 것임을 역사가 보여준다”며 “설령 자유선거가 치러지더라도 결과가 무시될 수 있다. 미얀마 주변국들과 국제사회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주요 7개국(G7), 유럽연합(EU) 등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난 결의와 경고를 잇달아 내며 군부 퇴진을 압박한다. 미국은 미얀마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비롯해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인사 12명을 미국 내 자산 동결, 입국 금지 등 제재 명단에 올렸다. 2월24일(현지시각)엔 미국의 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도 미얀마 군부의 플랫폼 이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명분으로 삼은 ‘부정선거’ 주장을 확산하는 데 페이스북을 적극 활용해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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