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미얀마 시민의 춤을 멈추지 마라

민주주의민족동맹 총선 79.5% 싹쓸이 → 군부 쿠데타 → 반대시위,
군부와 시민사회 대치 팽팽하게 이어져
등록 2021-02-19 16:53 수정 2021-02-20 02:20
2021년 2월18일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 양곤에서 시민 수만 명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1년 2월18일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 양곤에서 시민 수만 명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얀마의 쿠데타 정국이 심상치 않다. 민간 정부를 뒤집고 권력을 장악한 군부와 이에 반발하는 시민사회의 대치가 팽팽하게 이어지면서 일촉즉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헌법 개정하려면 ‘재적 의원 75% 이상 찬성’

2021년 2월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했다. 석 달 전인 2020년 11월 총선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구심인 아웅산 수치(75)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선거 결과에 불복해서다. 미얀마는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 제도를 채택하지만 군부 입김이 절대적이다. 의회 전체 의석 664명 중 군부 몫이 25%(166석)다. 1962년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미얀마의 정치와 경제 권력 대부분을 장악한 군부가 ‘합법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 군부에 민주주의민족동맹은 예상보다 훨씬 큰 걸림돌이다.

a출직 의원의 79.5%(396석)를 휩쓸며, 단독정부 구성이 가능한 의석 과반(333석)을 크게 웃도는 대승을 거둬 민정 2기를 예약한 상태였다. 앞서 2015년 민주주의민족동맹은 군부가 수치의 대통령 출마를 원천봉쇄한 조건부 민주화로 치러진 선거에서 압승해 반세기 만에 민간이 주도하는 정부(민정 1기)를 구성했다. 수치는 ‘국가 고문’이란 직책을 신설해 막후 지도자 구실을 해왔다.

미얀마 군부에 이번 총선 결과는, 문민정부 체제가 확고히 정착하면 군부의 50여 년 기득권이 급격히 위축되고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이란 위기감을 한층 부채질한다. 특히 아웅산 수치의 대통령 출마를 가로막고 군부의 정치적 지분을 보장한 헌법 규정을 바꾸는 개헌은 군부로선 상상하기 싫은 악몽이다. 현행 헌법은 의회의 개헌 정족수를 ‘재적 의원 75% 이상 찬성’으로 규정해, 군부의 동의 없는 개헌은 불가능하도록 못박아놨다. 그러나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총선에서 싹쓸이에 가까운 지지를 받는 현실은 군부에 엄청난 압박일 수밖에 없다.

군부는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일찌감치 선거 불복 방침을 내비쳤다. 1월27일에는 선거관리위원회를 겨냥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헌법과 현행법에 따라 우리는 조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불과 닷새 뒤 전격적인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향후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새 총선 실시 계획도 공표했다. 군부는 “부정 선거에 대한 항의가 계속 묵살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선거 부정의 증거는 내놓지 못한다.

시민들의 기발한 평화시위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 양곤, 군부가 새 수도로 삼은 네피도, 제2의 도시 만달레이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은 쿠데타에 거세게 반발하며 항의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이어간다. 국가 공무원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현지 신문 <미얀마 타임스> 등의 보도를 보면, 국영병원 의료진의 파업을 시작으로 국영은행과 국영철도(MR) 직원, 각급 학교 교사, 민간항공청 관제사와 직원, 주요 부처 공무원들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며 시위에 합류했다.

시민들은 기발한 평화시위 전술을 선보이며 연대와 믿음을 돋운다. 저녁마다 집 발코니에서 냄비와 깡통을 두드리며 민중가요를 합창한다. 2월18일 양곤에서는 시민들이 자동차를 도로에 멈춰 세워두는 ‘고장 난 차량’ 시위를 이틀째 이어갔다. 도심 도로와 교차로, 도시 외곽 교량 등에 차량이 고장 난 것처럼 앞부분 후드를 들어 올린 뒤 방치해 군의 이동을 방해하는 방식이다.

앞서 2월16일 양곤에선 자신들을 ‘Z세대 MM’이라고 지칭한 청년 음악가들이 바이올린, 첼로, 트롬본, 드럼 등을 들고나와 ‘혁명’이라는 제목의 자작 시위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거리 공연을 펼쳤다. 일부는 음악에 맞춰 춤추거나 구호를 외쳤다. 한 무용수는 외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춤추는 것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발산하고 충동적 행동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sHgjvU3lmsA)

미얀마 군부는 아직 무력 진압에 나서진 않았다. 그러나 시위 중단을 거듭 종용하고, 저녁 8시부터 통행금지를 시행하며 다음 행동의 명분을 쌓아가는 모양새다. 쿠데타 직후 아웅산 수치를 다시 가택연금한 데 이어, 2월15일에는 양곤에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 병력을 투입하고 인터넷도 수시로 차단한다. 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의원들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체포하고, 시위대에 물대포·고무탄·새총을 쏘거나 곤봉을 휘두르는 등 폭력 대응도 거칠어지고 있다. 몇몇 도시에선 군대가 실탄을 발포해 사상자가 나왔다는 소식도 흘러나온다. 미얀마는 1988년 8월8일 전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8888 민주화운동)가 군부의 잔혹한 무력 진압으로 한 달여 만에 수천 명이 숨지는 비극으로 끝난 뼈아픈 역사가 있다.

미얀마에 찾아온 민주화의 봄을 군부가 되돌리려는 것에 국제사회의 경고도 잇따른다. 2월16일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 톰 앤드루스는 긴급 성명을 내어 “더 큰 규모의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앞서 2월14일 미얀마 주재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서방국가 대사관들은 공동성명에서 “미얀마 국민의 민주주의, 자유, 평화, 번영의 추구를 지지한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며 미얀마 군부를 압박했다.

8888의 비극 재현되지 않기를

아직 미얀마 군부가 순순히 물러설 조짐은 전혀 없다. 2월17일 현직 장성인 정보부 차관은 “정부는 시위 가담 공무원들에게 업무에 복귀할 시간을 주고 있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얀마 내각의 정보부는 한국의 국정홍보처에 해당한다. 미얀마 관영 매체는 이날 “(군부가 새로 구성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가행정위원회가 시위대에 대한 법적 조치와 언론에 ‘진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군부가 강경 진압과 미디어 선전 등 쿠데타를 완결 짓는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이미 저지른 쿠데타의 명분과 좀체 위축되지 않는 시민 사이에서 다음 수순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반면 시위대는 두려움을 딛고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과 열망이 충만한 분위기다. 군부로선 비상사태 1년을 단축 또는 철회하고 체면도 살리는 정치적 타협점을 찾을지, 강경 태세를 밀어붙이고 기득권을 확보할지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그런 미얀마 군부의 행보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