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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홍콩 보안법 7개월] 살아가기 위해, 국민 넘어 시민으로

보안법 아래 메모지는 떼어지고 언론사는 탄압받지만,
포기할 수 없는 홍콩 시민의 시민으로서 존엄

제1350호
등록 : 2021-02-12 22:58 수정 : 2021-02-1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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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23일 홍콩 조던 지역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봉쇄된 가운데, 한 여성이 가방을 들고 발길을 옮기고 있다. 홍콩에서 코로나19 방역은 권위주의적 통제의 명분이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REUTERS 연합뉴스

홍콩의 역사는 기구하다. 1842년 중국의 마지막 왕조국가인 청나라가 영국이 벌인 아편전쟁에 패배하면서, ‘동방의 진주’로 불리던 홍콩은 영국령 식민지로 전락(난징조약)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돼 홍콩특별행정구로 재편입되기까지 155년 동안 홍콩은 자본주의 대국 영국의 통치를 받으며, 중국 본토의 사회주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긴 세월이었다.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

중국은 본디 자국의 영토를 되찾은 것일 뿐이지만, 홍콩 시민의 정체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보다는 독립된 도시국가 성격의 홍콩인, 또는 세계시민에 더 가깝다.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대한 정치적 장악력을 높이려 고삐를 죌수록, 홍콩의 많은 시민은 불안감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2020년 7월부터 중국 정부가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발효하고 홍콩 시민사회가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과 대립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지 7개월. <한겨레21>은 현지 상황을 3개의 시선-전문가, 홍콩 시민, 한국의 연대 활동가-으로 짚어본다.

장면1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2020년 6월30일 밤 보안법 발효 시각부터 홍콩에선 정치적 의견과 요구를 쓴 펼침막이나 구호, 심지어 메모지까지 금지됐다. 시민들이 메모지에 의견을 써서 자유롭게 붙이는 토론 공간이던 음식점들은 경찰의 경고 속에 메모지들을 떼어내며 “압박이 있는 곳에 반항이 있다” 같은 마오쩌둥의 어록을 붙이기도 했다. 모든 메모지는 흰 종이로 대체됐다. 시민들 사이에선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봐야 해”라는,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의 구절이 유행했다. 나중엔 흰 종이도 보안법 위반이 됐고, ‘홍콩 힘내라’라는 구호도 금지됐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게시물이 등장하고, 게임음악 속에 홍콩 음악가가 모스부호로 구호를 넣었다 드러나 파장이 일기도 했다.

장면2 정권 아닌 시민에 충성하겠다
홍콩특별행정구에 충성한다는 선서와 서명이 모든 공무원에게 요구됐다. 2019년 송환법(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이 계속되자, 공무원들은 정부에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며 시민들을 지지하는 연대서명을 했고 노조도 만들었다. 충성 선서와 서명을 거부하면 해고될 수 있다. 공무원의 충성 대상은 정권이 아닌 시민이라며 서명을 거부하고 사직하는 공무원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커지던 2020년 초, 의료진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재현을 막기 위해 국경을 닫고 시민을 보호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말했다. “의사의 충성 대상은 시민뿐이다. 의사로서 본분을 다한다는 우리 선서는 정권이 아닌 환자를 보호하겠다는 선언이다.” 의료진은 눈물을 흘리며 파업했고, 이들에 대한 처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면3 교과서는 지워지고 교정을 떠나는 교사들
지금 홍콩의 청년활동가 다수는 2012년 중국식 애국교육 도입을 반대한, 당시 10대 청소년이던 사람들이다. ‘수업 거부’ 행동으로 정부의 계획 철회를 이끌어낸 활동가들은 최근 몇 년간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세대 활동가를 탄생시켰던 정부의 애국교육 도입 시도는, 이제 보안법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돌아오고 있다.

독립적 사고를 키우려 도입한 시사교양 과목을 통제하고, 언제든 민원이 들어오면 교육국이 검토한 뒤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에선 교사 자격 박탈과 해고가 이어지고, 교과서 내용 삭제와 수정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시민들이 ‘나는 홍콩인이다’라고 쓴 팻말을 든 그림과 1989년 천안문(톈안먼) 사건 내용이 대다수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학생들의 교복 시위를 불허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교실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교사와 학생에 대한 신고가 장려되고 대학들 자유게시판은 폐쇄되고 있다.

2021년 2월1일 홍콩의 대표적 반중국 매체 <핑궈일보> 창업주 지미 라이(오른쪽)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변론을 마친 뒤 교도소 호송차를 타고 법원을 떠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장면4 신문을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
2020년 8월7일 미국 정부는 홍콩 자치를 훼손했다며 중국 본토와 홍콩 관원 11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틀 뒤 중국도 11명의 미국인 제재 발표와 함께, 대표적 반정부 홍콩 언론 <핑궈(빈과)일보>(애플데일리) 건물에 경찰 수백 명이 진입해 수색했고 언론사 사주와 아들들, 임원을 체포했다. 73살의 <핑궈일보> 사주 지미 라이가 체포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뒤늦게 널리 회자됐다. “나는 빈손으로 중국 본토에서 홍콩에 왔다. 내가 여기서 얻은 모든 건 홍콩의 자유 덕분이다. 이제 내가 그 자유를 위해 싸움으로써 보답할 때가 온 것 같다.”

다음날 새벽 2시부터 <핑궈일보>를 사려고 기다리는 시민들이 곳곳에 긴 줄을 이뤘다. 평소 약 7만 부 찍던 신문은 시민들의 열기에 이날 55만 부를 찍었다. 한 달 뒤 홍콩 경찰은 언론 취재 기준을 새로 만들어, 정부가 인정하는 소수 언론 외에는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언론들은 “진짜와 가짜 기자의 구분 같은 건 없다”며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고 선언했고, 다시 두 달 뒤 경찰의 폭력 진상을 다룬 공영방송 프로그램 피디가 집에서 체포됐다.

2003년에는 보안법 시위로 시민사회 탄생
홍콩의 국가보안법은 2003년에도 홍콩 정부가 제정하려다가 시민 50만 명이 뛰쳐나와 항의해 철회된 바 있다. 홍콩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보안법을 막아내려 모인 시민과 단체들은 처음으로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홍콩 시민사회의 본격적인 탄생이었다. 당시 성공적으로 막아낸 보안법은, 이제 중국 정부가 훨씬 강한 버전으로 직접 만들어 도입했다.

국가 전복 행위를 처벌하는 법은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홍콩은 특히 몇 가지 점에서 논란과 우려가 크다. 홍콩의 헌법 격인 홍콩기본법에 따르면, 국가 안보와 관련한 조항의 추가는 홍콩 정부가 직접 하도록 규정됐다. 그런데 이번 보안법 조항은 중국 중앙정부가 만들었다. 홍콩 시민사회와 법조계가 자치권 침해와 법치 훼손을 우려하는 이유다. 국가 분열과 전복, 외국 세력과의 결탁을 규정하는 범위도 모호해 사실상 거의 모든 활동을 통제할 수 있고, 홍콩인뿐 아니라 외국인이 외국에서 하는 활동도 처벌 대상이 된다.

중국 정부가 2020년 홍콩에 보안법 도입을 강행한 배경은 홍콩 시위가 국내 정치와 대만 문제에 미칠 파급력의 차단, 미-중 관계에서 공세적 대응, 외국의 영향력 차단 등이다. 특히 홍콩 시위가 ‘주권 문제에 대한 외세의 개입과 선동’이라는 중국 정부의 규정은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을 단절시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앞서 2019년부터 시위 과정에서 송환법과 경찰 폭력에 대한 홍콩인의 저항에 공감하는 중국 본토인과 본토 출신 이주민이 늘어나던 참이었다. 그러나 주권과 외세 개입이라는 프레임, 그리고 보안법 도입은 이제 막 시작된 홍콩인과 중국 본토인 사이 유대감을 약화시키며 갈등을 낳았고, 본토에선 정부 방침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2021년 1월6일 홍콩 경찰이 범민주 진영 활동가 50여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꺼번에 체포하자, 입법회(의회) 민주파 의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민을 떠나기 전 ‘시위 기념’ 문신을 하며
이민 소식은 매일 들려온다. 난민을 받아주던 홍콩의 시민들이 이제 난민이 되고 망명을 신청한다. 해외로 나간 홍콩인들이 향후 어떤 역할을 할지는 계속 주목해야 한다. 홍콩 시위를 기념하는 문신을 해주는 업체에 따르면, 이민을 떠나기 전 일부러 찾아와 문신하는 이들이 있다. 몸에 새긴 낙인의 흔적으로 시대를 기억하고자 함이다.

해외에서 국제연대 활동은 계속되지만, 보안법의 ‘외국 세력과의 결탁’ 조항은 활동 공간을 크게 제약한다. 2020년에 미뤄져 2021년 치를 의회선거를 앞두고 민주파 의원들은 연이어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에 항의해 대부분 민주파 의원이 동반 사퇴했다. 거의 친정부 의원만 남은 의회에선 2022년 있을 행정장관 선거에서 민주파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법·조례 수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홍콩인은 여전히 홍콩에 남아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홍콩의 자유·번영·법치·민주주의에 대해 홍콩 반환 이래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다. 자랑스럽던 ‘메이드 인 홍콩’ 브랜드도 미국의 제재로 사라졌지만, 홍콩 땅에서 농사짓고 지역사회 운동을 하고 척박한 노동운동의 싹을 틔우며 살아갈 사람들이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국가의 이름으로 서술되는 역사에 최대한 저항하기 위해.

체포를 예감하며 <핑궈일보> 사주 지미 라이는 말했다. “30년 동안 우리 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자유도 민주도 지키지 않았기에 지금 젊은이들이 싸우게 되었다.” 1년 넘게 이어진 송환법 반대 시위를 거치며 홍콩 시민들은 구조적 문제, 이를테면 빈부 격차와 계층 불평등, 소수인종 차별 그리고 자본주의 독점으로 시야를 넓히며 토론을 벌였다. 이런 ‘각성’이 시작될 때 보안법이 가장 강력한 버전으로 돌아왔다. 홍콩에서 우리는, “매 순간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라”는 요구의 일상화 속에 국민을 넘어서는 ‘시민’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이들의 모습을 목도한다. 다음은 2020년 6월30일 밤 홍콩에서 보안법이 발효된 다음날,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많이 공유된 글이다.

“나는 내 SNS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나이다.

나는 과거에 쓴 글과 사진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진실한 삶의 역정이다.

나는 나의 관점과 입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나 자신의 성찰 결과일 때만 그것들을 포기할 것이다.

나는 남들에 의해 검열되지 않을 것이고, 자기검열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두려움이 일단 마음속에 침입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계속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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