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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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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예측 가능’에 대비하라

미, 한국에 중국 등 전 지구적 안보협력 요구 가능성
등록 2021-01-25 14:41 수정 2021-01-29 01:44
2021년 1월20일(현지시각) 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 헬기 ‘마린원’을 타고 백악관을 떠나기 전, 한 군사보좌관이 핵가방을 헬기로 옮기고 있다. 핵가방은 미국 대통령이 핵공격을 결정할 때 필요한 장비를 담은 가방이다. AFP 연합뉴스

2021년 1월20일(현지시각) 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 헬기 ‘마린원’을 타고 백악관을 떠나기 전, 한 군사보좌관이 핵가방을 헬기로 옮기고 있다. 핵가방은 미국 대통령이 핵공격을 결정할 때 필요한 장비를 담은 가방이다. AFP 연합뉴스

일찍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러 사건이 지나가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년을 겪은 국제사회는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이 가져올 변화에 높은 기대를 갖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웠던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해, 바이든 대통령 본인과 그가 임명한 주요 정책 담당자들은 미국의 외교안보 방향에 충분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한다.

오바마 때와 달리 안정적 정책 추진 제한적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국제사회로의 복귀, 다자주의 외교 중시, 기후변화 협약과 이란 핵협상 복원 등 주요 과제를 이야기했다. 그와 더불어 바이든 정부는 중국 문제를 외교안보의 우선순위로 올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설계했던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신설한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으로 임명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 정책에 얼마나 주안점을 두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현실적으로도 중국 정책은 다른 정책보다 임기 초반에 추진하는 편이 순조로울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이든 정부가 맞닥뜨릴 미국 국내 정치적 현실 문제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비교해 어려운 정치적 환경에 놓였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할 때 집권 민주당이 상원 전체 100석 중 58석으로 안정적 과반을 차지했던 것과 달리, 바이든 정부는 2020년 선거에서 간신히 상원 다수당이 됐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배제할 수 있는 절대다수 당이 되지 못했다. 현재 상원 의석수로 바이든 정부가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은 내각 등 주요 직책의 임명에 상원 인준을 수월하게 얻어낼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또 상·하원 모두에서 진보적 의제를 추진하려는 당내 세력이 캐스팅보트(결정표)를 쥐고 바이든 정부에 진보적 의제 추진과 진보적 인사 기용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통합을 위한 국내 정치 의제의 중도적 설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의 성패는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을 얼마나 빨리 통제할지에 달려 있다. 2020년 선거 기간 바이든과 민주당은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기에 집권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 연방 대통령이 코로나19에 직접 대응할 정책적 수단은 많지 않다.

외교안보 우선순위는 중국

1월6일 연방 의사당 폭동 사태로 시작된 트럼프 탄핵도 변수다. 바이든 정부는 임기 초기에 트럼프 집권 중 이뤄졌던 여러 대외정책을 복원하려 할 텐데, 상원 구성이나 전임 대통령 탄핵 문제 등 임기 초기 정치적 환경이 대외정책의 복원 과정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공화당의 반대가 강하게 예상되는 정책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본 것처럼 미국 국민의 의견이 반분된 상황에서, 당파적 갈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의제를 추진하는 것은 통합을 목표로 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 문제는 바이든 정부에 정책 목적이나 정책 추진의 현실성을 고려했을 때 임기 초반 추진하기에 적합한 주제다. 미-중 갈등은 트럼프 정부의 중국에 대한 특이한 인식에 기인한다기보다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 축적돼온 대중국 인식에 기인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현재 양국 문제는 특정 현안에 대한 인식 차이가 아니라 양국의 서로 다른 정치체제에서 비롯한 것이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해결 방안이 제시되기 어렵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중국과의 체제 차이로 인해 더는 중국과 같이 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런 인식에 민주당과 공화당이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의 군비 증강에 의구심을 품고 미국은 국방 분야에서 정책을 준비해왔고 바이든 정부에서 속도를 더 낼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초반 미국은 대중국 연합전선을 정치·군사적으로 구축하려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이 추진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반중국 연대에 대한 정치적 지지,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군사 전략에의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에게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아시아 동맹국 방치와 더불어 한국의 소극적인 안보협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한·미·일 안보협력 문제에 한국이 귀책사유가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최근 몇 년 새 한-일 관계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한국 사법부의 판단 이후 악화돼왔다. 물론 미국도 한국 행정부가 사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한-일 역사 문제와 별개로 안보협력 부분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사 문제는 원칙 차원에서 접근하지만, 그 밖의 현안은 실질적 차원에서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투 트랙’과 비슷하다.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한·미·일 안보협력과 군사훈련을 포함한 역내 안보협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지속한다고 미국이 계속 인식하면, 그것은 한국이 한-일 역사 문제를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우리를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국가로 바라볼 것이다. 동맹의 역할을 한반도 내로 한정하려는 우리 생각과, 미국의 전 지구적 전략 일부로서 한-미 동맹을 보려는 미국의 시각이 차이를 보이게 된다. 우리는 지정학적 고민을 깊이 할 수밖에 없다.

북 핵협상, 이란 수준 합의 가능할 수도

바이든 정부는 이제 막 4년이라는 시간의 첫발을 뗐다. 임기가 1년 반이 채 남지 않은 우리 정부와는 시간을 보는 입장이 매우 다르다.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 역시 차이가 난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이란과의 핵협상을 했기 때문에 북한과도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중간 수준의 합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우리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핵무기를 만들지 않은 이란과의 핵협상조차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북한이 순순히 협상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이란 수준의 핵협정을 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시간 내에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기에 이러한 차이를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욱더 긴밀한 외교 당국 간 협의가 요구된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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