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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은 ‘브렉시트’를 내다봤나?

영국과 EU 사이 ‘사람과 재화의 자유 이동 시대’ 저물다

제1346호
등록 : 2021-01-08 10:30 수정 : 2021-01-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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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전면 발효된 2021년의 첫 월요일인 1월4일, 대형 화물트럭 한 대가 영국과 유럽 본토를 잇는 해저 유로터널의 영국 쪽 항구인 도버의 국경통과소를 향해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새해 첫날,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완전히 갈라섰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가 2020년 12월31일 밤 11시(이하 현지시각) 전면 발효됐다. 2016년 6월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선택한 지 4년6개월,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다. 2017년 3월 브렉시트 협상을 개시한 이래 영국에선 총리가 두 번 바뀌고 브렉시트 시한을 세 차례나 늦추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브렉시트 전도사’를 자임한 보리스 존슨 총리는 2021년 신년사에서 “(브렉시트 발효는) 경이로운 순간”이라며 “영국은 자유를 손에 넣었다. 일을 다르게, 더 잘할 수 있게 됐다”고 자축했다. 반면 브렉시트에 ‘반대표’가 더 많았던 스코틀랜드의 니컬라 스터전 자치정부 수석장관은 “유럽이여, 스코틀랜드는 곧 돌아온다. 불을 켜두시라”라는 트위터 메시지를 날렸다.

영국, EEC 가입 47년 만에 결별

<BBC> 방송의 유럽 담당 에디터는 “브뤼셀(유럽연합의 수도, 벨기에 수도)에선 브렉시트 과정이 완전히 끝난 것에 대한 안도감이 느껴졌지만, 브렉시트에 대해선 여전히 유감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존슨 총리의 아버지 스탠리(80)는 프랑스 <RTL>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유럽인으로 남겠다”며 프랑스 시민권을 신청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렉시트 첫날, 사람과 물류의 이동에 큰 혼잡은 없었다. 국경통과소에선 대형 화물트럭이 별다른 지체 없이 평상시처럼 오갔다. 이날 밤 그랜트 섑스 영국 교통부 장관은 트위터에 “은행 휴무일인 까닭에 국경 통행량이 줄었지만, 수백 대의 화물트럭이 (영국해협의) 해저터널을 건너고 있다. (통행에) 차질이 없어 좋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미처 통관 서류를 구비하지 못한 일부 트럭이 유럽 본토에 들어가지 못하고 회차하는 사례도 잇달았다. 운전자들은 불과 하루 전까지도 EU 회원국끼리 ‘통행의 자유’가 보장되던 것과는 달라진 상황을 체감했다.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2021년 주식시장이 첫 개장을 한 1월4일 하루에만 거의 60억유로(약 8조원) 상당의 EU 주식이 런던에서 빠져나갔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유로존 최대 은행 산탄데르를 비롯해 도이체방크, 글로벌 에너지 기업 토탈 같은 우량 기업들의 주식 거래도 런던 증시가 아닌 마드리드, 프랑크푸르트, 파리로 옮겨갔다. 이른바 ‘브렉시트 효과’다. 이전까지 유럽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주식거래에 익숙한 영국의 투자자들에겐 당혹스러울 만큼 갑작스러운 변화다. 다만 EU와 영국은 미래관계 협상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상품 교역은 이전처럼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브렉시트가 EU와 영국 사이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사람과 재화, 서비스의 자유 이동’(솅겐조약)이 더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 일상에도 한동안 변화와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영국 시민은 솅겐조약 가입국에 대한 무비자 여행 기간이 180일로 제한된다. 회사 주재원,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 국외 장기 체류자는 주재국의 체류 비자를 받아야 한다.

무제한 반입이 가능하던 면세 상품은 외국 여행자에 한해 제한된 분량만 허용된다. EU 회원국에서 누리던 무료 의료보장, 휴대전화 무료 로밍 서비스 등 일상의 편의도 옛이야기가 됐다. 반대로, 영국에 머무는 EU 시민들도 2021년 6월30일까지만 기존 체류 자격이 인정된다. 이후엔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거나 체류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런던 주식시장에서 60억유로어치 빠져나가
EU의 전신은 1957년 출범한 EEC다. 프랑스, 독일(당시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국이 긴밀한 경제협력과 단일시장 형성에 합의한 경제블록이다. 이후 1992년 마스트리흐트조약(유럽공동체 EC 창설)과 2009년 리스본조약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경제공동체를 넘어 사회·문화·정치적 통합까지 지향하는 공동체로 발전했다.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려는 거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는 처음부터 썩 매끄럽지 않았다. 마치 ‘한-일 관계’처럼 역사적, 지리적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인 영국과 프랑스의 신경전이 불씨였다. 1961년 영국은 EEC에 가입 신청을 했으나,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1963년과 1967년 연거푸 퇴짜를 놨다. “(영국이 합류하면) 유럽에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은 드골이 퇴임한 뒤인 1973년에야 EEC에 합류할 수 있었다. EU와 영국이 브렉시트 합의 초안에 타결한 2019년 10월, <프랑스24> 방송은 “드골은 영국이 ‘유럽’의 일원이 되기를 진지하게 원한다면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폐기해야 할 것이란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이 기사에는 ‘샤를 드골은 브렉시트를 내다봤나?’라는 제목이 달렸다.

체류 땐 비자 필요 등 시민 삶도 변화
유럽 본토에 대한 영국의 모호한 ‘거리두기’도 양자 관계에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낳았다. 영국은 EEC에 가입한 지 불과 2년 만인 1975년에 EEC 탈퇴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다. 당시엔 ‘잔류’ 의견이 67%로 ‘탈퇴’ 의견을 압도했다. 그러나 1979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취임하면서 ‘유럽 회의주의’에 불을 지폈다. 그는 EEC 예산에 대한 영국의 재정 분담 재검토를 역설하며 “나는 내 돈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1988년에는 EU의 수도 벨기에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유럽이 단일시장 완성보다 초국가적 연방주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대처 총리 재임 기간(1979~1990) 내내 ‘유럽 통합’을 둘러싼 유럽 본토와 영국의 관계는 께름칙했다. 이 시기, 영국은 미국과 함께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심이자 전도사로 활약하며 여전히 ‘특별한 관계’를 과시했다.

영국과 EU의 불편한 동거는 처음부터 줄곧 파국의 씨앗을 내장하고 있었다. 1992년 EEC는 마스트리흐트조약으로 유럽공동체(EC)를 창설하면서 한 단계 높은 정치·경제적 통합 모델을 꿈꿨다. 특히 회원국 공동의 단일 통화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엄청난 실험이자 모험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단일 통화’에 반대하며 이 조항에 대한 자국의 예외 조처(옵트아웃)를 관철했다. 영국은 EU 회원국 시절에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에 가입하지 않고 계속 자국 통화인 파운드를 사용했다.

한편 영국에선 2020년 말부터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위세를 떨치면서, 1월5일엔 하루 신규 확진자가 사상 처음 6만 명을 넘어섰다. 영국 연방을 구성하는 4개의 홈 네이션 중 수도 런던을 포함해 최대인 잉글랜드에선 6일부터 또다시 봉쇄 조처가 발효됐다. 2020년 3월과 11월에 이어, 세 번째다. 영국 시민들은 새롭게 창궐하는 바이러스와 브렉시트에 따른 급격한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힘겨운 과제 속에 새해를 시작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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