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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아메리카’와의 새로운 경쟁

트럼프식 통상마찰 불확실성 줄었지만 바이드노믹스의 ‘미국산 제품 우선주의’에 도전
등록 2020-11-14 16:00 수정 2020-11-17 00:42
2020년 11월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황소상 앞 거리에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보호장구를 쓴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0년 11월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황소상 앞 거리에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보호장구를 쓴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UPI 연합뉴스

“조 바이든 당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종언을 뜻하지만 트럼프주의(Trumpism)의 종언을 뜻할 것 같지는 않다.” 재닛 데일리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칼럼니스트가 한 말이다. 바이든은 자유주의적 좌파로 분류되며, 트럼프 시대에 펼쳐진 많은 경제정책을 무시할 수 없고 바이든 역시 트럼프 못지않게 여전히 대중영합적이고 또 오랫동안 그럴 것이라는 뜻이다.

미-중 갈등·분쟁 기조는 지속

바이든 당선 소식이 타전되자마자 일제히 쏟아져나온 ‘바이든 시대 한국·세계 경제 영향 분석’ 보고서들(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은 바이든 시대에 ‘기회’와 동시에 ‘위험’이 함께 출몰하는 광경을 전망한다. 미국 집권세력이 교체됐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바이드노믹스’(Bidenomics)가 가져올 파급경로와 파장을 선뜻 가늠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이드노믹스는 거시경제적으로는 거대 수입시장으로서 미국 경제의 향방(확장세 또는 하강세), 미시·산업적으로 바이든의 산업정책, 국제경제적으로 무역통상 정책과 환율·국제유가 동향을 통해 세계·한국 경제에 파급된다. 바이든도 트럼프에 이어 중국 첨단산업·기술 견제를 비롯한 탈중국 가속화, 미국산 제품 우선주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가치사슬 재편을 내걸고 있다. 트럼프를 잇는 ‘미국산 제품 우선주의’ 기조로 우리 국내 산업 기반이 위축될 우려가 있지만, 친환경·재생에너지 산업 투자와 첨단산업 부문 탈중국화와 중국 기업 제재·견제가 가속하면서 우리 기업에는 미국 시장 진출과 참여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기회 요인과 위험 요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바이든 시대의 세계·한국 경제는 중국의 맞대응이라는 변수까지 예측에 포함해야 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바이든의 중국 견제와 탈중국화 노선은, 트럼프 때에 견줘 일부 완화된 수준이 되리라는 예상도 나오지만 미-중 갈등·분쟁 기조 자체는 지속될 공산이 크다. 중국이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벌써 전세계 기업인과 경제 당국자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바이든은 글로벌 공급망 의존의 취약성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을 배제·견제하는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전략을 펼칠 것이고, 우방국에는 대중국 동맹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리라고 예상한다”며 “우리가 강점을 가진 자동차·반도체·의료장비 같은 분야에서 미국 공급망 재편 과정에 참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 재정지출 천명했지만

반도체·배터리·에너지 등 첨단 제조산업과 신기술 부문에서도 한국이 관련된 산업에 기회가 될 뿐 아니라 도전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바이든은 청정에너지(자율주행차·배터리·재생에너지 등) 확대와 그린 인프라에 4년간 2조달러를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국내 풍력·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업계와 전기차 배터리 산업 등이 사업 기회에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에서도 바이든은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요소로 고려해 미국 내 안정적 공급망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우리 반도체 기업의 대미 투자·기술·생산 협력이 확대되리라는 기대감이 인다. 하지만 바이든은 반도체·배터리도 ‘미국인에 의한 미국 내 제조’를 내걸어 우리 기업은 미국 경쟁기업으로부터 치열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바이든은 특히 미국 노동자가 제조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활용한다는 기조 아래 배터리에서 전기차 생산까지 친환경차 가치사슬망 전체에 걸쳐 ‘미국 내 산업 복원’을 외쳐왔다. 배터리 세계 1위인 국내 업체들은 바이든에게서 전폭적인 인프라 지원을 받을 미국 기업들과 미국 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게 될 것이다. 물론 경제·산업은 항상 수많은 변수가 얽히고설키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여 어떤 것도 예측일 뿐 미리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바이든의 산업정책이 적극적 재정지출을 전제하는 터라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투자·수출이 늘어나리라는 기대도 나온다. 바이든은 4천억달러의 정부 공공 조달을 통해 철강·시멘트·콘크리트·건축자재·장비 구매를 확대하고 인공지능과 양자·고성능 컴퓨팅, 5G·6G, 신소재, 반도체·바이오 기술 등에 3천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행’에선 불확실성도 크다. 코로나19 대응과 장기적 경기침체로 인한 재정 악화 조건에서 대규모 재정지출은 어려워지거나 우선순위가 재조정될 수 있다. 정부 구매 제품의 경우 미국 내 생산 부품이 50% 이상 포함돼야 한다는 ‘미국산 우선 구매법’, 일부 군사 물품은 100% 미국 안에서 생산돼야 한다는 ‘베리 수정안’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기업의 수혜 정도는 제약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산업연구원 쪽은 “바이든 시대에 우리 기업은 개별 기업 차원뿐 아니라 기업-통상-기술 부문을 통합한 전방위적이고 균형적인 산업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시대에 견줘 더욱 복잡하고 중층적인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시대에 이어 미국 내 생산품에 대한 요구가 여전히 확대되리라고 예상하는 터라, 우리 기업으로선 미국 현지로의 오프쇼어링(기업들이 서비스 분야 업무 일부를 인건비가 싼 국외로 이전하는 현상)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우리 국내 산업에 일부 공동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은 환경 의무를 지키지 못한 국가에 ‘탄소국경세’를 도입, 부과하겠다고 말해왔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처로,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드노믹스보다 ‘코로나19 재확산 위험’

세계경제 분석가들이 바이드노믹스 전망에서 공통으로 제출하는 의견은 국제 유가 상승과 달러 가치 하락이다. 셰일오일 개발 규제와 친환경 에너지 투자 확대로 원유 공급이 줄어 국제 유가가 중장기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막대한 통화·재정 화력이 투입돼 이미 달러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에서 바이든의 적극적인 미국 경기부양책으로 시장에 달러 공급이 넘쳐나 달러 가치가 하락(원화 가치 절상)할 공산이 크다. 우리 수출업체는 가격경쟁력을 위협받을 수 있다.

무역통상 쪽을 보면, ‘자신이 내일 무엇을 할지 본인조차 모른다’는 말로 대표되는 트럼프식 통상마찰 불확실성은 확연히 줄어들 공산이 크다. 국제무역 질서에 돌발변수가 생길 불확실성이 줄어 국제무역 물동량이 늘고 교역에 활력이 붙는다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와 세계·한국 경제가 당면한 주어진 조건은 미래의 바이드노믹스보다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코로나19 재확산 위험’인 것은 분명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표지이야기-미 바이든 대통령 시대로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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