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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해리스는 기회주의자? 실용주의자?

여성의 뜨거운 지지 받는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 자메이카-인도 부모 아래 자라 다양한 문화 경험 뒤 검사 생활

제1338호
등록 : 2020-11-14 00:15 수정 : 2020-11-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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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의 작은 마을 툴라센드라푸람 주민들이 앞서 3일 미국 대선에서 첫 여성 부통령으로 당선한 카멀라 해리스의 사진을 들고 축하하고 있다. 이 마을은 해리스의 어머니 고향이다. AFP 연합뉴스

“제가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여성일지라도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모습을 지켜보는 어린 여성들은 우리나라가 가능성의 국가라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권력 2위 자리를 확보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는 11월7일 감동적인 승리 연설로 수많은 여성에게 희망을 전했다. 여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왜 이리 열광하는지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말을 상기하면 이해할 만하다. 패배 승복 연설에서 클린턴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아직도 깨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해낼 겁니다.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지 모릅니다.” 그렇다, 실제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4년 만에 해리스 당선자가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열었다.

많은 이가 카멀라 해리스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백인, 그것도 아시아인과 카리브해 흑인이기도 한 그의 배경은, 차별의 고통에 시달리는 전세계 이주민과 그 자녀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인종 통합 교육 받은 뒤 캐나다로 이주
카멀라 해리스는 성장기부터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의 만남과 서로 다른 세계의 뒤얽힘’ 속에 살았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인도와 ‘서인도’에서 각각 자란 해리스의 부모는 1962년 미국 인권운동의 중심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처음 만난다. 어머니 시아말라 고팔란은 인도 출신 생화학 전공자였고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진보적 경제학 전공 유학생이었다.

그해 가을 한 모임에서 도널드는 영국 지배자들이 사회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해 어떻게 소수의 식민지 흑인 엘리트를 키워 활용했는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식민지 고위 공무원 아버지 아래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란 시아말라는 자신의 경험과 전혀 다른 식민지 현실에 관심을 갖고 도널드에게 접근했다. 현재 스탠퍼드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도널드 해리스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후 계속 만나 대화했고, 그 뒤 일은 이제 익히 알려진 일이 됐다”고 말했다.

1964년 태어난 해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세계를 경험했다. 버클리 지역 교육청은 1967년부터 인종 통합 교육을 적극 추진했다. 흑인 밀집 지역 아동을 백인 거주지 학교로 배정하고, 백인 아이는 흑인 지역 학교로 배정하는 적극적 조처에 나섰다. 이 때문에 흑인 중산층이 모인 동네에 살던 해리스는 1970년부터 부유한 백인 동네에 있는 사우전드오크스 초등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와 함께 통학했던 한 친구는 학교까지 버스로 40분 정도 걸렸다고 기억한다.

통학 버스를 동원한 정책은 실패로 평가받지만, 해리스는 또 다른 세상에 눈뜨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인종 통합 교육 정책이 자신을 상원의원으로 만든 요소 중 일부라고 말한다.

1972년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함께 산 해리스는 12살 때인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사한다. 암 연구자인 어머니가 맥길대학 의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됐기 때문이다. 부모의 고향인 인도와 자메이카를 여행한 경험을 통해 이미 다른 세계를 접했던 해리스는 몬트리올에서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한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12살짜리 소녀로선) 햇빛 찬란한 캘리포니아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눈 쌓인 외국 도시로 갑자기 옮겨가는 게 고통스러웠다. 과장이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어머니는 해리스와 그의 여동생 마야가 프랑어를 빨리 익히게 하려고 프랑스어를 쓰는 학교에 입학시켰다. 해리스는 “나는 오리가 된 기분이었다고 농담하곤 했다. 프랑스어를 몰라 학교에서 온종일 ‘크와?’(뭐?)라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해리스는 곧 적응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왔다.

비백인 부모 아래서 다양한 세계를 접한 그의 삶은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아시아계 부통령, 흑인 부통령’에 꽤 잘 어울린다. 최근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가 들불처럼 번진 미국은 물론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차별과 배제가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세계적 상황에서도 그가 돋보이는 이유다.

1989년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대학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그의 이력은 엘리트의 ‘평범한’ 모습에 가까워진다. 1990년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 캘리포니아 앨러미다 카운티 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하고, 1994년엔 당시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장이던 윌리 브라운과 사귀면서 경력의 폭을 넓혔다.

몇 년 뒤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으로 옮긴 해리스는 10대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가 아니라 희생자 관점에서 대응하는 변화를 일궈냈다. 2004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 선거에서 재검표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졌다.

물론 그의 검사 경력에는 밝은 면 못지않게 어두운 면도 있다. 검사 선거 때 사형 반대를 공약한 그는 취임 직후 경찰을 사살한 20대 청년에게 사형 구형을 거부하면서 경찰과 사이가 틀어졌다. 하지만 2011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취임한 뒤에는 사형 폐지 반대로 돌아섰다. 일관성 없는 그의 태도는 은행에 대한 대응에서도 나타났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한 가구들에 마구잡이식 차압을 해 말썽이 된 뒤, 주요 은행들은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주는 데 동의했다. 이 합의 과정에서 해리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해, 캘리포니아 주민에게 더 많은 보상금을 챙겨주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2012년 캘리포니아 법무부가 원웨스트은행의 차압 과정에서 불법을 확인했다며 이 은행과 최고경영자 스티븐 므누신(현 재무장관)을 기소할 것을 건의했을 때는 이를 거부했다.

선거 뒤 시작될 ‘진짜 정치’
해리스의 이런 행태는 2017년 연방 상원의원이 되고 2019년 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뒤까지 계속 입길에 올랐다. 한편에서는 임신중지·마리화나 합법화, 총기 규제 강화 등을 주장하며 상원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가 사실은 정치적 기회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현실적 실용주의자로 옹호하기도 한다.

어느 쪽에 동의하든 과거 행태만으로 부통령으로서 앞날을 예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가 대선 승리 연설에서 인용한 존 루이스 의원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 선거 뒤 시작될 ‘진짜 정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동을 하고 유권자가 그에게 무엇을 얼마나 강하게 요구할지가 그의 부통령직과 미래 정치 인생을 결정할 것이다.

신기섭 <한겨레>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표지이야기-미 바이든 대통령 시대로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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