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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곳곳의 ‘트’미네이터

등록 2020-10-10 07:47 수정 2020-10-11 00:14
AFP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은 새로운 고민을 안겨준다. 놀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방역 전문가들의 경고를 대놓고 외면해왔으니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상한 건 확진 이후 상황이다. 입원 사흘 만에 확진자 가운데 부활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백악관에 실어다준 마린원을 향해 거수경례하는 영상을 장엄한 배경음악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다. 입원 당시엔 “I’ll be back”이란 문구를 올렸는데, 영상은 병원에서 돌아온 환자가 아닌, 전쟁터에서 귀환한 ‘트’미네이터를 비추는 느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 말라”고도 썼는데, 내가 아는 상식은 다 헛것이었나 싶을 정도이다.

어느 학자는 코로나19를 우습게 알다 확진자가 된 각국 정상들에게 ‘타조 동맹’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동맹 회원이 한 명 더 늘게 됐다. 하지만 이들이 머리만 모래 속에 처박는 타조처럼 멍청해서 확진자가 된 건 아니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밥 우드워드와의 대화에서 이미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결국 오늘의 이 상황은 위험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방역이 아닌 경제를 선택한 결과이다. 타조 동맹의 일원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했는데, 돈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이들은 타조라기보다는 오직 실질(material)만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 극단적 실용주의자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은 이렇게 봐야 한다. 확진에도 업무 복귀를 강행한 것은 건강이나 안전보다 선거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상의 영웅적 연출은 코로나19 책임론을 거부할 논리를 자기 지지층에 제공하기 위한 용도이다. 대선 불복을 시사하는 것도 민주당 지지층의 우편투표 참여 방해와 투표 의지 상실을 의도하는 거로 볼 수 있다. 구체적 이득 앞에서 방역이나 민주주의적 전통 수호, 엘리트의 사회적 책임 등은 그저 허울 좋은 얘기일 뿐이다. 이 세계관은 민주주의 확대에 힘입어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참여자들에 의해 세계 각국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유행에선 한국 정치도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최근 현안인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대다수 정치 고관여자들은 이 사건을 남북 혹은 북-미 간, 아니면 청와대와 여야 사이의 이해관계를 본질로 대하고 있다. 정부 대응을 비판하기 위해 ‘세월호 7시간’을 갖다붙이거나, 월북자는 사살된 사례도 있다고 주장하거나, 유족에게 보상금을 노리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들 트럼프를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론 트럼프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처럼 살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잘 씻는 게 아니라, 정파적 이해관계가 아닌 인간의 삶을 판단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희생자 아들 편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답장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상의 메시지가 담기면 좋겠다. 유족을 직접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 그 자리에서 ‘월북’으로 결론을 내린 근거와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다소 늦었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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